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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 캠프에 놀러갔다. 도착한 게 새벽 1시 반. 여름 성수기라 이 ‘누추한’ 리조트에도 꽤 사람들이 많이 묵고 있는 듯, 지하 주차장에 주차 공간이 없었다. 이럴 때 마티즈의 ‘사이즈’가 빛을 발하지. 거대한 SUV 두 대 사이, 주차장 시멘트 기둥 뒤편 좁은 공간에 살며시 주차. 마티즈는 가능하다.

보통 캠프는 월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 아침 해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 캠프는 일정이 이상하게 잡혀서 금요일에 시작하여 다음 주 수요일에 끝난다. 주말이 낀 덕분에 내가 놀러갈 기회도 생겼지만. 그리고 교회 나가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일요일 오전 연습은 생략. 덕분에 부담 없는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늦게까지, 아니 이른 아침까지? 술 마시며 잘들 놀았다.

난 선물로 군납용 면세주 스카치 블루와 J&B를 사갔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깨어있을 줄 알았더라면 몇 병 더 들고 갔을 텐데.

술 못 먹겠다. 안주도 안 든 빈속에 소주와 설중매를 들이붓고 거기에 스카치를 스트레이트로 마셨으니 무리를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수개월 알코올 청정 상태였던 때문인지 아침에 꽤 힘들었다.

연습 부담이 없는 나는 늦게까지 자다가, 오후 생상스 연습 때 연습실로 내려가서 참관을 했다. 지휘자 선생님도 계시니까 다리도 꼬지 않고 나름 바른 자세로 관람. 여느 공연 볼 때보다도 진지하게 봤다.

오케스트라의 튜닝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자동차 마니아들이 엔진 시동 거는 소리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과 비슷하달까. 공연이 끝났을 때 느껴지는 벅찬 감동을 경험하기 위해서 만큼이나, 공연 시작 전 오케스트라 튜닝 순간의 설렘을 느끼기 위해 공연장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연습 때 튜닝은 훨씬 귀엽고 재밌다. 관악기들은 어쩔 때는 음이 잘 맞춰져서 튜닝에 몇 분씩 걸리기도 한다. 악장이 악기 별로 친절히 튜닝을 해 준다. 원래 오케스트라 튜닝 시에는 오보에로부터 A를 받아 관을 먼저 튜닝, 그다음에 현을 튜닝한다. 일일이 클라리넷, 트럼펫, 호른 등등을 지적해서 맞춰주거나 하지 않는다.

튜닝이 끝나면 연습 시작이다. 지휘자 선생님이 지휘봉을 들어 올리면(근데 지휘봉을 썼던가?) 단원들도 일제히 악기를 들어올린다. 그 일사 분란함이 좋다. 첫 타점을 찍기 전까지의 정적. 그 적막이 또한 무지 매력적이다.

음악을 만든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작업이다. 음악은 작곡가의 머릿속에 존재했다.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그저 악보에 적힌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참고’하여 작곡가의 머릿속에 들어있었을 그 음악을 가능한 한 재현 해 보는 것이다. 그 음악은 다시 지휘자의 머릿속에 있고, 오랜 기간 연습을 통해 단원들의 머리와 가슴에도 전달이 된다.

생상스 3번. 참 좋더라. 그 뛰어난 능력,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는 매우 낮은 생상스. 생상스는 5곡의 교향곡을 썼는데, 3번을 제외한 곡들은 거의 연주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인기가 있는 3번은 부제인 ‘오르간’만 봐도 알 수 있듯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있어야만 연주를 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그런 연주 환경이 거의 없다. 예당에도 파이프 오르간이 없어서 전자 오르간을 놓고 쓸 지경이니. 세종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왜 몰랐지. 아무튼 ‘오르간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과장이다 싶긴 해도 그만큼 오르간의 임팩트는 강하다. ‘오르간 필수’ 딱지가 붙었으니, 좀처럼 쉽게 공연이 될 수가 없지.

생상스 3번은 엄밀히 말하면 4악장 구성이 아니라 2파트 구성이다. 그러나 2파트가 각각 2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결국 4개의 부분이 일반적인 4악장짜리 교향곡의 각 악장과 비슷해서 그냥 각 부분을 악장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두 시간 정도에 전 악장 연습을 다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세컨드 바이올린 파트보를 받아 참고하며 들었다.

정말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억누를 길 없을 만큼 솟구쳤다.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어. OJT고 야근이고 뭐고 간에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부터 물색 해 봐야겠다. 여건상 내가 유포니아에서 다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러나 ‘기회’란 어느 정도 내가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준비해야지. 언제 어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연습 구경을 마치고 다시 차를 달려 충주의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저녁을 먹고 상쾌하게 샤워를 마치고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적당한 공연을 물색한다. 마침 이번 달에는 가족음악축제라는 기획 공연이 매주 주말마다 열린다. 코리안 심포니, 수원 시향 등 괜찮은 단체들의 연주를 단돈 15,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기회. 이걸 마다해서 되겠나. 토요일 프로그램은 시벨리우스 2번이 메인. 일요일 프로그램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가 메인이다. 어느 쪽도 다 듣고 싶지만, 이번에는 시벨리우스로 결정. 한 주를 즐겁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 스킨을 바꿨다. 커스터마이징을 안 해서 메뉴 구성이 엉망인데, 수정을 해야 하지만 귀찮아서……. 조만간 손을

2010/08/02 00:00 2010/08/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