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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편지
운하가 햇빛을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실어 나르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깊이 생각해 보려무나. 참된 자유란 무엇인지, 자유로운 삶이란 대체 어떤 형태의 삶을 말하는 것인지를. 혹시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더 많은 자유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싶어 샅샅이 살펴보면, 종국에는 이전에 모르고 있던 새로운 빚 증서만이 손에 쥐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더냐.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했지,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존권을 부여받는다고.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은 여기에다 여러 가지 권리들을 덧붙였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좋은 권리들을 누리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도 따르는 게 이치 아니겠니. 어쩌면 우리가 탄생하는 그 순간, 우리의 인생에는 차압 딱지가 나붙는 것일지도 몰라.

사회라는 울타리가 언제나 우리의 좋은 것들을 지켜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란다. 이 울타리는 제도니 문화니 하는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어떤 때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욕구와 의문들을 반사회적이라 규정짓고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 버리곤 한단다. 너는 인간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도덕을 익히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 정의(正義)라는 것이 인간에게 내재된 본연의 속성이라면, 사람들은 대체로 옳은 판단을 내릴 것이고, 그 결정에 의심을 품을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들의 군집은 단순한 합산의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 괴물이 어떤 규범의 몽둥이를 폭력적으로 휘두르면, 나약한 개인은 그것에 맞고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

네가 어떤 사람과 마주할 때 느끼는 대화의 단절, 설득의 불가능함,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소통의 장벽은 단지 너와 그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대체로 자유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어떤 구속 속에 놓여있는지를 몰라. 혹 언제든 체면치레를 위해 교양 있는 척하려 애쓰는 가련한 인간들을 보거든 시험 해 보려무나. 그들을 가혹한 구속에서 조금이라도 해방시켜주려고 약간의 조언이라도 하려하면, 곧바로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지를 격앙된 태도로 역설하고 나설 것이다.

자연의 법칙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 야만의 상태에서라면,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나는 네가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머나먼 타국에 있다는 것이 흡족하구나. 대개 사람들의 지식이나 규범의식이란 그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면적보다 넓지 않단다. 네가 그 배타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고독은, 역시 우리가 감수해야만 하는 대가이겠지.
2008/06/10 15:26 2008/06/10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