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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편지

아침이면 해가 뜨는 것을, 저녁이면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깨닫고 있었다. 내 시간은 태양 주위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무한히 도는 그 반복적인 하루 속에 갇혀있음을. 잠시 등을 돌렸다가 언제나 같은 태양 앞으로 돌아갔다. 밤이면 하늘은 무수한 별들로 뒤덮이고, 거대한 천체들의 움직임은 우주를 가득 채우지만, 땅 위에 두 다리를 딛고 선 작은 존재의 가슴에 고독이 스미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기에. 오늘을 어제로 밀어 낼 새로운 시간이 새겨지지 않는 기나긴 하루 속에서, 사랑하지 않으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젊음이 잠식되고, 나는 조금씩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내가 웃어넘기지 못 할 일은 없다. 나의 실존을 의심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내가 경험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현실, 내가 영위하고 있는 단 한 번뿐인 삶 구석구석을 들쳐보려고 하면 무엇 하나 안개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가 없었다. 삶이, 어딘가 사실적이지 않다. 죽어도 죽을 것 같지 않은 느낌, 혹은 죽어도 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또는 이미 죽어있는 느낌. 그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는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기에조차 내게 이 세상은 너무나 공허하다.

그렇다면 내 최선의 것을 너에게 주겠다. 사랑 받지 못 하는 외로움이 아니라, 사랑 하지 않는 고독. 내겐 먼저 사랑할 대상이 없었고, 이제는 쏟아 부을 마음이 없어졌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말라버린 우물처럼 텅텅 소리를 내는 공동이 되어버렸다. 그 밑바닥에서 찾아낸 마지막 한 줌의 것을, 이제 자유롭게 날려 보낸다. 그 검불 같이 가벼운 생이 무한의 속도로 질주하여 단지 공기에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파편을 흩뿌리다가 이내 유성의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진다. 그 흔적이 내가 이 세상에서 흘린 단 한 방울의 눈물이며, 나의 모든 상상력을 다하여 만들어낸 유일한 감각이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텅 비어버린 나는, 너로부터 분리된다. 처음으로 나의 태양이 저무는 것을 바라본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거무스름한 산자락 위에서 최후의 빛이 명멸한다. 나는 등을 돌려 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하루로부터 떨어져 나와, 빛과 온기를 어제의 것으로 밀어내면서 어두우며 차가운 공간 속으로 멀어져간다.

2010/09/12 15:30 2010/09/12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