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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요시다 슈이치. 일본 소설 코너에서 자주 발견하는 이름이다. 권위와 대중성을 모두 갖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로 널리 홍보되는데, 몇 권의 책 서평을 읽어본 결과 상당히 기발하면서 반전이 있는 소설을 잘 쓰는 모양이다. 이번에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해 보았는데, 이 한 권으로 미루어 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지만, 솔직히 이런 작가에게까지 아쿠타가와 상을 시상해야 할 바에야 매년 수상자를 내지 않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요시다 슈이치 본인인이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확실히 연애소설은 두 번 다시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소설 대강의 플롯은 전체의 3분의 1도 읽기 전에 그려졌고, 전개는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이, 어떤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소재는 확실히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소재의 독특함이 결코 소설 자체의 독창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 한 것에 비해, 인간의 심리에 대한 고찰은 어딘가 작가 자신의 시각에 매몰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대체 어디가 ‘작가 자신과 작품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단 말인가?

소설의 전개도 뭔가 중간중간 잘라먹은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캐릭터들도 생동감이 떨어진다. 그 중에서도 와타나베란 캐릭터는 최악이다. 기자답게 집요함으로 꽉 찬 캐릭터로 그릴 것이 아니었다면, 아예 텅 비어서 완벽한 관찰자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소설 전반에 와타나베의 의식이 상당히 많이 흐르고 있는 것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 이건 뭔가 독자가 소설 속 사건과 배경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방해하면서도, 역으로 독자가 충실하게 따라갈 길은 깔아주지 않는 불친절함이다.

덧붙이자면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가 과연 여성, 여성의 심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이건 나로서도 뭐라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건 여성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

상상 속에서 그녀는 사내 남자직원에게 교제하자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 자기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그녀의 이야기로 변해갔다. 자기가 누군가와 사귀면, 상상 속의 그녀도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십 수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아니다. 무언가를 십 수 년간 계속 생각하는 것쯤은 인간에게는 간단한 일인 것이다.

2010/09/23 01:49 2010/09/23 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