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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공군 본부, 계룡시의 계룡대. 결국 본부까지 진출했다. 스물 다섯 평생에 안 가본 곳들을, 군 생활 하면서 다 다녀본다.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통역을 한다. 이런 나의 군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능력도 발휘하고, 여행도 하고, 돈도 버니 썩 괜찮다고 생각할까.

일요일 저녁, 출발 직전에는 잠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지간해서는 스트레스 따위는 받지 않는 나도, 주말마다 이어지는 격무에 한 달 간격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것은 부담이다. 아니, 나처럼 사람과 엮이기 싫어하는 성격으로는 매번의 파견이 곤혹스러움 그 자체라고 해야하나.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것을 추스르며 간신히 집을 나섰지만, 읽을 책 한 권 챙겨오는 것조차 잊었다. 단 며칠의 일정이라도 책 챙기는 것을 잊은 적은 없는데, 꽤나 정신이 없었나보다.

4인용 숙소를 잡아줬다. 중간중간 브리퍼라든가 다른 통역 장교가 들를 일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 혼자 쓴다. 인터넷이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점만 빼면, 널찍한 공간에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깨끗해서 마음에 든다.

지금은 공군 본부 항공정보과 사무실에서 이번 행사 기간 중에 있을 만찬 때 부장님이 써먹을, '우정, 술, 가을'을 주제로 한 '일본어 속담, 격언, 금언' 따위를 찾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속담집이라도 한 권 챙겨오는 건데.

본부는 본부다. 영관급들은 낙엽처럼 밟히고, 별들은 청명한 가을 밤하늘처럼 빽빽하다. 오직 다이아만이 정말 다이아처럼 귀하다. 신기해서 그런지 마주치는 영관급들마다 말을 걸어오곤 한다. 단 한 명의 별 이하 엄격한 위계 질서가 존재하는 비행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2010/10/25 15:03 2010/10/25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