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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Perez Rulfo(1917~1986)


인간이 간직한 영원의 신비, 꿈. 제아무리 현실과 닮은 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사실 꿈에는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정밀한 현실의 모사를 추구하지도, 현실 너머의 어떤 이상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꿈은 무한한 상징과 은유, 알레고리의 결합일 수도 있고 그저 무의미한 환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맥락 없이 피어오르는 이런 신기루는 사람을 홀리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꿈에 빠져들면 눈을 찌르는 아침의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침대 위에서 몸을 움츠린 채 그 맥락도 없는 이야기, 결말이 없이 무한히 표류하는 꿈의 자락을 붙잡고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것이다.

라틴 문학은 어쩐지 ‘꿈’과 비슷하다. 꿈이 아니라면, 확정된 시간과 공간을 점하는 ‘위계’가 뒤섞일 수 없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미 가상의 한 층위를 형성하지만, 아무리 환상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는 한 시간은 인과적 순서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원인 이전에 결과가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자아는 하나의 차원(次元)에 속해있다. 주인공은 깨어있거나, 꿈을 꾸고 있거나, 천국에 있거나 혹은 분열된 자아끼리의 다툼 중에 있다. 꿈에서는 이런 원칙이 무시된다. 다른 시간 속의 여러 공간이 중첩되며, 하나의 자아는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혹은 완전히 부재하기도 한다. 라틴 문학은 마치 논리적 인식 구조에 심각한 오류를 초래하는 이러한 꿈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꿈을 꿀 때와 마찬가지로 그 소설 안에서 모든 기호들을 해석할 수도 있고, 완전히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공적으로 쓰인 소설들은 꿈이 갖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매력, 즉 아침을 거부하고 꿈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줄거리



나는 이 소설의 꿈을 모사한 듯한 속성,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혹은 그렇게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을 언급 해 둔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하나의 혁명 소설로 분류될 수 있으며, 유일한 생산 수단인 토지를 독점하는 토호(土豪)와 민중들의 갈등, 저항, 그리고 혁명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소설의 내용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혁명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역시 ‘모호’하다. 이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2010/11/29 23:15 2010/11/29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