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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 향상 음악회가 열렸다. 단원들끼리 소규모로 그룹을 이뤄 평소 연주하기 힘든 실내악곡에 도전하는 자리다. 무슨 곡을 연주하든, 연습을 얼마나 하든, 자율에 맡겨지기 때문에 개중에는 정말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는 그룹도 있고, 단순히 친목 도모 차원에서 도전하는 그룹도 있다.

향상 음악회 참가를 망설이다가, 마지막 기회이니 그냥 놓쳐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동아리 내의 업무 그룹 중 하나인 ‘정보국(주로 동아리 홈페이지와 서버 관련 일을 담당하지만, 평단원들이 할 일은 거의 없다)’ 향상 팀의 초대에 덜컥 응해버렸다.

곡은 전에 밝힌 바 있듯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라장조. 난 무엇이든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응하는 성격의 인간이 아니라서, 기왕 하기로 한 것이니만큼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장교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이번 한 주는 매일 학교에 나가 주로 바이올린 연습만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상블을 맞춘다는 것이, 내게는 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메트로놈을 켜놓고 혼자 연습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손가락 굴리는 걸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의지하여 ‘합주’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두 번이나 참여하고서도 아직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무튼 내 성실성과는 별개로, 정보국 팀은 사실 ‘친목 도모’라는 목표에 충실해서, 음악의 완성도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곡 자체도 난이도는 매우 쉬운 편에 속했고, 우리는 몇 차례 모이지도 않았다. 연주자 전원이 모인 것은 연주 전 날이 유일할 정도. 그런데 참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향상 음악회에는 ‘시상’이 있다. 보통 유포니아의 선배 두, 세분을 심사위원으로 모셔 연주 평가를 받는데, 연주가 다 끝나면 이 분들이 연주에 대한 평과 함께 좋은 연주를 한 팀들에게 시상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모신 분 중 한 분이, 바로 유포니아의 창립자인 윤혜준 선배였다. 사실 이 분에 대한 호칭이 지금도 조심스럽고 어색한데, 나는 1학년 때 이 분의 음악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윤혜준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자신이 창단했다는 ‘유포니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나는 연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유포니아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당시 나는 막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무렵이었으므로, 감히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지만, 대학생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에 품었던 동경은 아마 오늘의 내가 있게 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몇 년이 지나 다름 아닌 그 오케스트라에 내가 속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윤혜준 선배님을 비롯, 심사위원의 평가로 시상이 거행되었다. 사실 동아리 내부에서 서로 친목을 다지고 즐기며, ‘가능하다면’ 실력 향상도 꾀해보자는 자리인 만큼 상을 받는다는 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고, 별 의미도 없다. 하지만 애나 어른이나, 대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의미가 가벼운 것이든 중한 것이든, 상을 받아서 기분 좋아지지 않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도전 팀들 중에는 간혹 노골적으로 상 욕심을 드러내는 팀도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정보국 향상 팀이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금상은 대상 바로 아래 상이다. 심사위원의 평은, 음악적 완성도도 높고 팀워크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벼락치기 팀이나 다름없었던 정보국 팀이 ‘팀워크’를 논할 자격이나 되나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과 멤버들의 실력에 적절한 곡을 선정하여 무난한 연주를 해 낸 것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 물론 난 실력면에서 ‘프리 라이더’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윤혜준 선배님의 ‘앙상블에 대해 생각해 볼 것’들에 대하여 꽤 길게 언급 해 주셨는데, 다 새겨들을 만한 것들이었다. 과연 연주 그룹에 있어 ‘리더’는 존재하는지. 만일 리더가 존재한다면 항상 한 사람이 리더인지, 혹은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리더가 될 수 있는지. 연주에 무게 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과연 무게 중심은 항상 리더에게 위치하는지.

동양 사상에서 예(禮)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분별을 위해 존재하고, 악(樂)은 사람과 사람을 화합하게 만든다고 여긴다. 그런데 화합하는 방식에도 또한 예(禮)가 존재하는 것 같다. 예를 준수하여, 서로의 역할을 잘 분별하고 옳은 방식으로 기여를 해야만 진정 화합하는 악(樂)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번 향상에 참여함으로써 남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게 된다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던 것 같다.

2009/05/31 03:52 2009/05/31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