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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의 가을 정기 연주회를 향한 3개월의 여정이 시작됐다. 지난 번 향상 음악회가 끝난 자리에서, 가을 정기 연주회의 메인 곡이 발표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

지난 연주회 때 말러 1번을 연주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느껴진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대체로 특정 악장이나 초반에 어떤 음울함, 절망 같은 것이 짙게 배어있지만, 반드시 어느 순간 그것을 극복하고 환희를 향해 나아간다. 그 예정된 클라이맥스를 향해 고집스럽게 나아가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끝없이 오만하고 자신감에 넘쳤던 베토벤의 인생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반면 말러의 음악에서는 그런 확신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말러 1번은, 절망과 희망이 수차례 교차하며, 천국의 정경과 지옥의 참경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곡은 분명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며, 절망과 비애를 떨쳐내고 환희 속에서 마감한다. 그러나 그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번민과 부침 속에서, 연주자도 청중도 그 종국을 가늠할 수 없다. 이 나약하고 가냘픈 영혼이 끝내 구원을 얻게 될 것인지! 평생을 광기와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죄책감 속에서 좇기 듯 살아야 했던 말러의 음악이, 의지와 확신으로 넘쳐났던 베토벤의 음악과 달리 회의와 번민, 갈등으로 가득하면서 그러나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한 줄기 희망을 그러안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베토벤의 음악은 기분이 좋다. 그리고 명쾌하다. 그의 음악에는 우리 모두를 이끌고 가는 어떤 힘이 있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 유포니아에서 얻은 두 번의 연주 기회에 말러를 만나고 또 베토벤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베토벤 7번은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오프닝 곡이자 가장 중요한 메인 곡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다. 이 곡은, 드라마의 마지막 편에서 S 오케스트라의 멤버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터닝 포인트로 삼고 연주하는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대학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연주회이니, 내게도 끝이자 시작인 곡이 될 것이다.

연습은 오후 2시부터 시작하여 거의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첫 연습임에도 불구하고 전 악장을 모두 연주했다. 나는 제2 바이올린인데, 박자 세기가 어렵다. 그러나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음치이며 박치인 내가 지난 3년 9개월 동안 바이올린을 연습하며 그나마 음정은 그럭저럭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박자와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때인 듯하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기말고사 이후 본격적으로 연습이 시작될 때에 나는 대학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집트 여행을 다녀오느라 연습에 많이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행 전에라도 미리미리 연습을 해 두어야겠다.

오늘, 비록 첫 연습이라 호흡은 엉망이었지만, 그나마 소리가 좀 맞았던 2악장을 연주할 때에는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이 생생한 감동을 가지고, 연주회 날까지 연습에 매진하겠다.

2009/06/07 03:28 2009/06/07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