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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때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를 일으키고 필요한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국가의 가용한 모든 인적 자원과 생산 수단이 동원된다. 이때 국민 개개인은 징병을 당함으로써 신체적 자유가 구속되고, 자본과 생산 수단이 국가에 의해 점유되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자유로운 경제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자유의 침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 시에는 언론의 자유, 정치적 행위의 자유 나아가서는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기게 된다. 가령 전쟁의 무익함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하거나, 청년들을 강제 징병하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는 때때로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제재를 받기도 한다.

전쟁 시에 개인들이 이런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국가 권력의 비대화를 용인하는 이유는, 전쟁이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사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일차원적인 이유는 적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다. 인간은 쳐부수고 싶은 적이 있을 때에는 그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이 상처 입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동물이다. 적개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며, 감정에 따라 분풀이를 하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증오심이 국가나 정당의 선전을 통해 마치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처럼 둔갑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 대표적인 수단은 이른바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 영국,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독일인 병사들을 더 많이 살해하고, 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강화 조약을 맺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영광스러운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자랑스러운 조국은 동시에 전쟁의 광기로부터 벗어나 합리성을 되찾을 것을 역설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거나 그들을 지위에서 끌어내리거나 심지어는 감옥에 처넣어버린 나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승리자들을 그토록 만족시켰던, 패자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이후에 더 큰 전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증오심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맹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만큼 통제하기 쉬운 대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추기는 이 수단은, 오늘날의 정당정치 체제에서도 대단히 유효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서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 그 권력은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은 권력의 주인인 지지자를 가장 두려워해야 하며,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즉 정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가장 만만하게 본다. 한편 국민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정책에만 늘 비난을 퍼붓는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적개심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적(敵)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공적인 경우에 그러하다. 국가 원로와 경제인과 엘리트들을 서민의 적으로 돌리거나, 노동자와 대학생을 자유주의의 적으로 돌리는 일은, 거의 언제나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다. 국민들이 어느 한 편견의 지지자가 되어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더 많이 증오하고 비난할수록, 정당은 실제 정책의 방향성이나 그것의 실천 여부와는 상관없이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단체든 자신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면 ‘정치적 화합’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는 한, 화합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방법은 국민들이 똑똑해지는 것이다. 관용은 분명 증오심보다는 격조가 있는, 추구할 만한 덕목이다. 그러나 관용의 정신은 단지 그것이 도덕적인 가치라는 이유만으로 추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감정이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유 때문에도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가치이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언론이 즐겨 언급하는 범주, 이를테면 ‘서민’, ‘학생’, ‘지역민’, ‘고용주’ 따위에 스스로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국민은 누구나 어떤 범주에라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다른 생각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 시민의 자격이다.

2011/07/19 00:15 2011/07/19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