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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으로 돌아왔다. 별 차이는 없지만, 부대 안으로 복귀하는 것보다 부대 밖의 내 방으로 돌아오는 게 기분이 덜 나쁘군. 아무튼 이 방은 철저히 나만의 공간이니까, 안정감이 있다.

여름휴가가 끝났다. 휴가를 이틀 이상 붙여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흘간의 휴가였는데, 늘 말하지만 난 한 번 놀면 보통 6개월씩 놀기 때문에 겨우 나흘은 노는 것 같지도 않다.

지난 목요일에는 유포니아 캠프에 놀러갔다. 아는 얼굴들을 많이 보려면 금요일에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금요일 밤에는 리허설이 끝난 이후에 연주 참여자 전원이 홀에 빙 둘러앉아 촛불 하나씩 켜고서 각자 캠프 소감을 밝히는 이른바 ‘촛불의식’이라는 걸 하는데, 이게 끝나면 보통 새벽 3시쯤이라 놀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이번에도 술을 좀 풀었다. 지난번에는 위스키에 와인, 맥주, 혼성주까지 다양하게 준비해갔지만, 이번에는 칵테일 쪽에 집중을 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고 양도 적은 슈터 재료만 가져갔는데, 이번에 선보인 것은 Alice in Wonderland, Alice in Dallas, Desert Skies, B-52 등 네 종류. 바이올린 파트 전원에게 한잔씩 돌리고도 술이 상당히 많이 남아서, 그냥 데킬라며 살구 브랜디며 자유롭게 마셨는데, 그러다보니 언제 취했는지도 모르게 가버린 사람도 몇 나왔다.

나는 유포니아 연주회에 세 번밖에 서지 못 했는데, 캠프는 여섯 번이나 갔다. 이제 연주를 서기 위해 참여한 캠프 횟수와 그냥 놀러간 캠프 횟수가 같아져버렸다. 놀기도 열심히 놀지만 힘들게 연습도 하는 단원들에게는 좀 미안한 생각도 든다. 솔직히 ‘선배’라는 입장으로 ‘격려’를 구실삼아 가긴 하지만, 그냥 내가 좋아서 놀러가는 거니까. 원래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린 사람들과 놀고 싶어지는 법이다. 반면 선배를 상대해야 하는 후배 입장은 피곤하지.

아무튼 나는 말은 많이 하지 않고, 특히나 무슨 교훈적인 얘기나 훈계조의 얘기는 가능한 삼가고(잘 지켜졌는지는 모르겠다), 칵테일이나 열심히 만들어서 돌렸다. 잠은 거의 안 자고, 오전 연습을 참관했다. 저녁 리허설 점검을 위해서인지 전곡 전 악장을 다 통주(通奏)하고 연습도 했는데, 참관하는 입장에서는 즐거웠다.

오전 연습 때 집중력이 떨어져있다고 지휘자 선생님께 야단맞는 모습도 봤는데, 확실히 브람스는 좀 어수선한 감이 있었다. 브람스는 정말 앙상블이 좋아야 한다. 각각의 파트가 자기 몫만 충실히 할 게 아니라 다른 파트의 소리도 듣고 함께 합주할 수 있어야 교향곡의 인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게 브람스는 항상 버거운 상대이지. 하지만 방학 전부를 바쳐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하는 유포니아니까, 연주 때는 좋은 앙상블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일본으로 어학연수 갔던 동생이 돌아왔다. 두 달 동안 하코다테에만 처박혀있었다니, 안타깝다. 언제 다시 홋카이도를 가게 될지 모르는데 돈이 문젠가. 나라면 열차를 타고 홋카이도 일주라도 했을 텐데.

일요일에는 캠프 때 소모해버린 술도 보충할 겸 남대문을 찾았으나, 수입시장은 일요일에 휴장. 결국 또 교보문고로 향했다. 요즘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서점으로 떠나는지 교보문고는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책 몇 권 고르고 사무실에서 심심풀이로 읽을 뉴스위크 일어판도 구입했다.

나흘만 출근하면 연휴다.

2011/08/09 01:58 2011/08/09 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