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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8년 11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사촌 동생 루키우스1)의 죽음으로 나는 비통에 빠져있네. 그 아이의 죽음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나를 잘 아는 자네라면 지금 내 기분을 헤아려줄 수 있겠지. 타인의 훌륭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흐뭇함을 나는 오롯이 그 아이를 보면서 누릴 수 있었다네. 자네도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생각하네. 내가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네 역시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추고 진정으로 헌신적이었으며, 또 내 말에 따라 자네를 마음속으로부터 경애하던 친척2)이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느낄 테니.

자네의 여동생3) 얘기를 써줬으니 말이지만, 동생 퀸투스4)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마 누구보다도 자네 여동생이 잘 증언 해 줄 거라 생각하네. 동생이 약간 자네 여동생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형으로서 달래기도 하고, 연장자로서 충고도 해보고,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는 질책도 했지. 그 이후 동생도 나에게 자주 편지를 써 보내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데 모든 게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네.5)

편지가 뜸하다고 나를 책망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네. 폼포니아는 편지를 부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알려주지도 않고, 나도 에페이로스로 가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네. 게다가 자네가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아쿠틸리우스 건6)에 대해서는 자네가 출발하고, 내가 로마로 돌아온 직후에 자네 지시대로 일을 처리 해 두었네. 다만 일이 긴급을 다투는 사안도 아니었고, 자네도 충분히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보다도 페두카에우스7)가 자네에게 편지로 조언을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대체 며칠씩이나 아쿠틸리우스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여준 나인데-그가 말을 늘어놓을 때 어떠한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자네에게 그 불평들을 전달하는 게 세삼 귀찮을 리가 있겠나. 그의 불만을 들어주는 게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괴롭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편지가 적다고 나를 책망하는 자네야 말로 겨우 편지 한 통 보낸 게 다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자네가 나보다 편지를 쓸 여유도 있고, 편지를 맡길 인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아무개씨8)가 자네에게 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풀어줘야 한다고 쓴 거 말이네. 자네가 말하는 아무개씨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고, 그 일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그자는 뭔가 아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어.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해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줬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세게 나가야 할지는, 자네 결심에 달린 일이지. 그러니 자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 자세히 얘기 해 주게.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그냥 방치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자네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도 없다는 걸 내 몸소 증명 해 보일 테니.

타디우스 건9)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그와 얘기 나눠본 바로는 자네가 그에게 그 땅은 사용취득에 의해 취득한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써 보냈다던데. 하지만 그의 딸은 법적 후견을 받고 있네. 그런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는 사용취득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자네가 몰랐다니 놀랍군.

에페이로스에서 땅을 산 것에 만족하고 있다니 기쁘군. 또 자네도 써 보내줬듯이 내가 일전에 부탁한 투스쿨룸의 별장에 어룰릴만한 것을, 자네가 너무 번거롭지 않은 범위 안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네.10) 내가 온갖 번잡스러움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니까.

요즘은 매일 같이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네. 테렌티아11)는 관절통이 심해. 테렌티아가 자네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님을 얼마나 마음속 깊이 아끼는지는 잘 알걸세.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군. 귀여운 툴리오라12)도. 모쪼록 건강하게. 나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나 역시 자네를 형제처럼 아끼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 해 주게.


1) 루키우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 작은 아버지의 아들. 젊은 시절 키케로 형재와 함께 아테네에 유학하였음.
2)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가 아티쿠스의 여동생 폼포니아와 결혼하여 성립한 인척 관계를 말함.
3) 뒤에 언급되는 폼포니아.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의 처.
4)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3-43). B.C. 65년에 평민조영관, 62년에 법무관, 61년부터 59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역임.
5) 두 사람의 혼인은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사이를 긴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작 두 사람의 부부사이는 나빠서 결국 B.C. 44년 무렵에 이혼하였다.
6) 상세 불명
7) 섹투스 페두카에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구.
8) 67년도 법무관이었던 키케로의 친구 루키우스 루케이우스. 아티쿠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불명.
9) 난해한 부분으로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곤란함.
10) 투스쿨룸의 별장을 장식할 미술품을 아티쿠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일.
11) 키케로의 처. 부유한 명문가 출신.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음.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46년 경 키케로와 이혼한 후에도 두 명의 남자와 결혼하였고, 103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짐.
12) 키케로의 딸 툴리아(B.C.77-45)의 애칭.

2012/02/08 01:45 2012/02/08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