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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기회만 있으면 약자를 약탈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제도라는 제어 장치가 있어야 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선거 제도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주의란 권력구조를 구성하는 절차적 방법론의 하나이다. 한 때는 그 절차의 확립 그 자체만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다. 당시에는 민주화가 목표였다. 민주화를 이룩하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그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은 1인 1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 땅의 민주화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끝나지 않은 것은 민주화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높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미완의 과정 속에서 경주하고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민주화 이후에 추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인 1표의 권리를 얻었지만, 아직 그걸 무엇을 위해 써야할지를 모른다.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권력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돈이 위력적인 것은, 보통 금력으로 인력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력으로도 지배할 수 있고, 이념으로도 지배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권력이란 다수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소수가 누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수가 소수에게 굴복하는 것은 분명 모순된 역학구조이다. 혁명가의 눈에는 이것이 필히 다수의 혁명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구조로 보였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소수의 권력자란 다수가 힘의 균형과 안배, 조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이 안에서 구조적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보았다.

선거라는 절차는, 소수의 권력자를 투표권을 가진 민중이 직접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직접 선택한다고 하는 이 전제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에 대한 완벽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민주 사회의 지도자는 기실 과거 그 어떤 왕이 지녔던 권력보다도 더 막강하고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다만 그 권력을 가지고도 통치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울 수 없는 것은, 그 권력에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선거철은 돌아오게 되고, 이를 통해 낡은 권력은 심판대에 오른다. 이 억제와 자정의 능력이야 말로 민주적 선거라는 절차가 지니는 가장 찬란한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고, 그것을 사용하게 한 다음, 잘못 사용하면 그 힘을 다시 뺏어오면 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정화 작용을 방해하는 수많은 눈가림식 장애들이 있다. 이를 테면 케케묵은 색깔론, 이념대립, 국가 위기론 따위 말이다. 권력의 오용을 목도하고도 끊임없이 그 부도덕한 권력이 재생산되도록 국민을 오판하게 하는 세력들을 우리는 한 번도 시원하게 청산하지 못 했다. 나는 이런 부도덕한 썩은 무리들이 현 정부나 여당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둘러싸고 있는 벌레 무리들은 정계, 재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헛소리에 호도되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화 그 다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이루어야 할 목표는 깨끗하고 정당한 권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다. 법률에 위배되고, 나아가 도덕률에 위배된 채 부도덕하게 부당 취득된 권력과 부를 시민들이 빼앗아 재분배하는 것은 결코 빨갱이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정치인이나 재벌은 양반 같은 신분 귀족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다. 이처럼 불법적인 권력 및 자본의 독점이 항구적인 상태로 고착되는 것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용인될 법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순환되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2012/02/17 01:15 2012/02/17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