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천안함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되었다. 나는 상식적 판단을 존중하는 사람이라 근거 없는 음모론은 믿지 않는다. 나는 천안함을 두 번이나 견학했다. 처참하게 두 동강 난 천안함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어뢰에 의해 폭침되었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결론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하지만 그 주장을 믿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건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이 정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본부에서는 천안함 결의 대회를 하였다. 구호는 “천안함 폭침, 반드시 복수한다.”였다. 이들이 말하는 복수라는 건 무엇일까. 언제고 앙갚음을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재차 도발이 있을 시에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의미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가슴에 증오심을 품은 채 살아가겠다는 뜻일까?

한편 이 날은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어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에서 북한 지역을 둘러보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한미 양국의 정상은 포옹하며 우의를 과시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의와 힘이 모두 우리에게 있음을 으스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적잖이 안심도 하였고 또 뿌듯해도 하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다. 비참하다. 오늘 한국에 모인 여러 정상들이 대표하는 그 나라들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우리처럼 분단의 비극을 현재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렇게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세계인들 앞에서 같은 민족을 주적이요 악이라 손가락질해야 하다니. 한반도 위에 펼쳐진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첫 번째 치욕이고, 국가가 두 동강 나서 반세기 넘도록 통일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치욕이다.

그토록 주창하는 ‘높은 국격’이라는 것은 어디 있는가? 경제 수치가 우리의 국격을 말해주는가?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희롱하는 연예인들이 우리의 국격을 높여주는가? 분명 대한민국에는 감탄할 만한 점들이 아주 많지만, 세계의 정상들은 뒤돌아서서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의 집 형제 다툼에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 안보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갖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우리가 한쪽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미워하며 한쪽을 절대적 선으로 믿고 추종하는 것 외에는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이 모순적 상황에서 우리가 존립할 길이 없다는 것이 참 가슴 아프다.

우리는 북한을 미워한다. 그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미워하는 게 마땅하다. 북한의 만행으로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 원한을 거두어 달라고 나는 감히 설득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가 걷잡을 수없이 퍼져나가고 모두의 가슴이 증오로 격분될 때에, 그 감정의 해소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까? 우리에게 아직도 그런 목적의식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계획과 실천은커녕 목적의식마저도 사라져버린 듯하다.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고 북한과 남남으로 대치한 채 살아가겠다면 그건 아주 쉬운 선택이다. 어려운 것은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통일이라고 하는 과제가 20세기 역사와 함께 묻혀버려서는 안 된다. 21세기에는 통일의 문제를 새롭게 의식화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전에 없이 이념 공방이 치열하다. 지난 총선 때도 이 정도의 이념 공방은 없었던 것 같다. 외적 통일을 이루지 못 한 상태가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을 낳고 있는지는 이것만 봐도 자명하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 하는 한, 이런 사태는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이제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서울로 각국의 정상들을 초대하여놓고, 같은 민족에 대한 제재를 호소해야 하는 이 가슴 아픈 역사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폭침의 전사자를 애도하며 복수심으로 이를 갈면서 한 쪽으로는 세계만방의 평화 증진을 외치는 이 공허한 사태를 보며,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2012/03/27 02:02 2012/03/27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