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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녹초가 되도록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매일 도서관, 바이올린 연습실, 복싱 체육관을 다니는 와중에 지난 주 목요일에는 처음으로 서예 교실을 방문했다. 그곳의 선생님은 83세의 할아버지로, 사서집주를 줄줄 외는 조선 시대 선비 같은 분이었다. 함께 간 선배가 맹자 수업을 듣기에 옆에서 청강했다. 중간에 아주 쉬운 문장 하나를 해석했더니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오히려 마음이 씁쓸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문장이었는데.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오면 교실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기로 했다.

금요일에는 대전 시향의 연주를 보러 갔다. 요즘은 연주회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연주회를 들으러 가더라도 대개 실망할 뿐이고, 집에서 음원을 들으며 즐기는 것이 심적으로 오히려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보러갈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키면 추후에 쓸지도 모르겠다.

토요일에는 다시 뉴질랜드로 출국하는 아빠를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드리고 나는 두 번째 창덕궁 경학을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 한 신원전과 규장각, 옥당(홍문관), 약방(내의원)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특히 역대 왕들(보통 태조와 현왕(現王)의 4대조까지)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신원전은 대단히 기품이 있는 건물로, 그 고요함 속에 어떤 신비한 분위기마저 감돌아서 쉬이 자리를 옮길 수 없었다. 중간에 고교 동창 원종필과 합류하여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등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는 것으로써 두 번째 견학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5대궁 관람 티켓을 구매하여 주말마다 둘러보아야 할 듯싶다.

오후에는 집에서 손님을 맞았다. 고교 동창 원종필, 그리고 종필이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기이자 동생 김지찬. 각자 고기와 안주 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벽난로에 바비큐 화로를 설치하고 숯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구워먹었다. 맥주와 매실주를 곁들이며 군대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전통적으로 손님맞이의 하이라이트는 프로젝터가 설치된 방에서의 대전 액션 게임. 원종필이 마침 게임기와 최신 타이틀을 가져왔기에 밤 새워가며 놀았다.

일요일은 죽은 듯 쓰러져 보냈다. 이번 주 토요일, 뉴질랜드로 출국한다.

2012/04/02 23:33 2012/04/02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