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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곡식을 꿔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은행이 출현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은행이 인류 사회에 막대한 금융 자본을 폭발적으로 공급하게 된 것은 17세기 영국에서 부분지급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 system)’은행권(bank note)’ 발행의 기능을 갖춘 은행이 등장한 이후의 일이다. 부분지급준비제도란 말 그대로 은행이 고객으로 맡아 둔 돈의 일부분만을 고객의 인출 요구에 대비하는 지급준비금으로 쌓아두고, 나머지 저축 금액은 돈의 수요자들에게 대출해 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은행권은 쉽게 말하자면 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라고 할 수 있는데, 본래 이것은 고객이 은행에 맡겨놓은 돈, 이를테면 에 대해서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증서이다. 다시 말하면 은행이 돈을 맡겨놓은 고객에 대하여 발행한 채무증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자세한 내막을 다 말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고객이 맡긴 돈의 일부만을 보관하고 나머지를 대출해 줄 수 있는 권한과 신용화폐인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합쳐지면서 은행은 시중의 통화량을 어마어마하게 팽창시키는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은행이 제아무리 돈을 부풀릴 수 있다한들, 그 돈으로 살 수 있거나 만들 수 있는 상품의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면, 또 제아무리 많은 상품을 준비해도 그것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제한되어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산과 소비의 규모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에서 많은 돈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마침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를 가져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누구든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가 공장을 차리면 어마어마한 량의 상품을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철도가 깔리고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이, 전 지구 모든 대륙이 다 상품 도달 가능한 시장이 되어버렸다. 이 때 비로소 은행의 통화 공급 기능은 산업화공업화를 순항시키는 순풍, 아니 광풍이 되어버렸고, 제어 불능으로 팽창하는 금융 자본은 세계만방으로 거침없이 흘러들어가기 시작하였다.

2017/10/10 23:39 2017/10/10 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