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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최초로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금융기관은, 일본에서도 최초로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한 1국립은행의 부산 지점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제1국립은행은 어떻게 부산에 지점을 열게 되었을까?  

1은행사에서는 그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당행이 조선에 지점을 설치하여 해당 지역에서 금융에 종사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11(1878) 68일의 일이었다. 이보다 앞서 메이지 9(1876) 일한수호조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어 부산이 개항하게 된 뒤, 일한무역이 시작되었다. 최초에 진출한 사람은 오쿠라구미(大倉組)의 창시자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郎)였다고 전해지지만, 우리 국민(일본인)들 중에 조선으로 도항하여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줄을 이어, 일한무역은 급속하게 발전하여, 환어음(為替)화환어음(荷為替)의 방법을 마련하여 대부(貸付)의 편리함을 꾀하여 한전(幹銭)의 교환을 하는 등의 업무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당행은 메이지 10(1877) 8월 오쿠라구미와 합동으로 교환소(交換所)를 설치하고, 화폐의 교환, 화환어음, 대부의 취급에 종사하고자 하여 당행에 은동화 10만엔을 대출해 줄 것과, 매월 2~3회의 정기 항로를 개설할 것을 대장성(大蔵省)에 출원하였다. 정부가 이것을 받아들여서, 자금 대출을 위한 논의가 진행될 무렵, 서남전쟁으로 인해 국비 지출이 급증하였기 때문에(전쟁의)평정 이후에 대출해 줄 것이므로, 우선은 교환소의 규칙 등을 조사하여 복안을 올리도록 하고, 정기항로의 건에 대해서는 내무성과 교섭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후 대장성의 의견은 일변하여 은행이 직접 다른 상사상인과 자금을 합쳐서 하나의 조합을 설치하는 것은 허가하기 어렵다고 하여 각하되고, 내무성으로부터도 매월 2~3회씩 우선(郵船)을 왕복하는 건은 채용되지 못 하였고, 다만 매월 1회의 항로는 이미 개설되어 있으므로, 교란(攪亂)이 평정되는 대로 정규와 같이 통항하도록 하겠다는 통달을 받아, 이에 일단 단념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오쿠라구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당행의 단독 사업으로서 교환소를 경영하고자 하여, 그 규정을 개성하고 메이지 11(1878) , 대장성으로부터 제1국립은행지점이라는 명칭으로 개업하는 것을 허가 받아, 우선 자금의 반액 즉 은동화 5만엔의 대출을 받았으므로, 동년(1878) 3월 부산지점을 설립하여 68일부터 개업하였다.”  

第一銀行史, 第一銀行八十年史編纂室, 1957, pp.414~415

2017/10/14 00:18 2017/10/14 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