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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결혼 3주년.

1이나 2라는 숫자보다도 3이란 숫자는 어쩐지 꽉 차있는 느낌이 든다. 부부로서 같이 생활한 시간이 어느 덧 3. 그 사이 예쁜 딸이 생겼다. 가만히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요 녀석이 우리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게 아빠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빠 엄마였다. 가족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까지 하여 어느 모로 보나 완전한 부부 사이가 되었음에도 진짜 가족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부부로 함께 한 시간보다 남남으로 산 시간이 여전히 훨씬 더 길어, 두 시간이 엇비슷해 지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이 필요하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단 일분일초도 나의 부모님이 아닌 적이 없었던 아빠 엄마와는 친밀감이 같으려야 같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 사이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지만, 이 아기의 눈에도 벌써 아빠 엄마의 낯은 익은 모양이다. 마치 내가 나의 아빠 엄마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이 아기는 나와 내 아내를 바라본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있는, 단 일분일초의 예외도 없는 나의 부모님. 나를 아빠로, 내 아내를 엄마로 불러줄 이 아이가 생김으로 하여 우리 부부는 정말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한 손에는 나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내 아내의 손을 잡고서 걸어가는 아기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아기는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이지만, ‘연인으로서의 부부 사이에는 큰 지장을 초래하는 훼방꾼이다. 우리 부부는 20141227일에 식을 올린 후 그 날은 서울의 임피리얼 팰리스라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났었다. 그 첫 날을 기념하여 결혼기념일마다 같은 호텔을 찾아 묵었는데, 결국 올해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장모님께서 하루저녁 아기를 봐주기로 하셔서 정말 오랜만에 둘이 오붓하게 외출해서 영화도 한 편 보고 술잔을 기울이며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그레이티스트 쇼맨이라는 뮤지컬 영화를 봤는데, 뮤지컬 영화답게 유치찬란하고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다가 마치 초점을 잘못 맞춘 사진처럼 강조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강조된 대상이 전혀 달라서 영화 전체의 흐름이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영상만큼은 탄탄했다. 뮤지컬 영화의 미덕만큼은 잘 지켜주었다고 해야할까. 뮤지컬 영화는 낯간지러워서 잘 못본다는 아내도 대놓고 무대’, ‘를 표방한 덕분에 멀쩡히 대화하다가 갑자기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들이 나와도 덜 어색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청담 이상이라는 이자카야 스타일의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모듬 사시미, 술은 화요. 한 병에 3만원이었던 화요는 깔끔한 맛이 괜찮았다. 6만원짜리 모듬 사시미는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런 날에는 바가지를 좀 써도 괜찮다. 호텔 1박에 비하면 싼 값이기도 하고. 그래도 매년의 전통을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아쉽다. 내년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좀 더 수월해질 테니, 그때는 셋이서 같이 가볼까, 그 호텔에.

2017/12/27 23:26 2017/12/27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