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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50분 성남 비행장 정문으로 집합. 집에서 성남 비행장까지는 차로 딱 10분 거리다. 면회장에는 면접 보러 온 예비 장교들이 득실득실. 대충 신원 파악하고 주의 사항을 들은 후, 버스를 타고 ‘호국관’이라는 곳으로 이동. 이날 면접에 체력 검사까지 다 하는 줄 알았는데, 혈압 측정 및 색약 검사, 그리고 면접만 한단다. 그런데도 예상 종료 시간이 오후 5시.

이날 면접 본 사람이 100여명이었던 것 같은데, 빨리빨리 진행하면 금방 끝날 것을, 혈압 측정과 색약 테스트 하나 하니까 이미 점심시간. 부대 내 식당 밥은 정말 끔찍하더라. 그런 것 먹으면서 3년을 버틸 순 없어. 그런데 실제 부대 내 사람들이 먹는 메뉴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 혈압은 115/75로 지극히 정상. 색약 같은 게 없어 미술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에는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 신체검사에서 색약으로만 두 명인가가 탈락했다.

오후에는 면접. 3인 1조로, 총 3개 면접실에서 각 1개조씩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실에는 역시 면접관이 세 명. 나는 2조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아마 3~4시간 걸렸던 것 같고. 하루 온종일 아무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다. 오전에는 그냥 가져온 책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시간 때, 지난 번 어학 장교 시험 보러 청주 내려갔다가 인사하게 된 이용준씨와 다시 만났는데, 이 분이 입담이 상당하신 분이라 오후 내내 담소나 나누며(노가리 까며?)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신검 및 면접 결과를 당일 바로 알려준다더니 일정 종료 후 하는 말, ‘오늘 면접은 전원 합격입니다.’

뭐지. 결시자를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었나.

참고로 면접 질문은…….

내 앞의 두 사람에게는,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와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 등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하다가 나한테는 갑자기!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자네가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그밖에 ‘공군 장교 지원에 대한 주변의 반응, 들은 이야기는?’ ‘먼저 면접 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미리 준비했던 말이나 생각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결하게 말해보라’ 등이었다.

일단 면접이니까 성실히는 임했지만…….

아무튼 공군 사관후보생 123기 면접까지 합격.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이고, 9월 14일 입영은 확정적이다. 두 달도 안 남았군.

면접 다 마치고 나오니 비가 퍼붓고 있었다. 꾸물꾸물한 하늘 보고 우산을 챙겨오긴 했지만, 비가 이정도로 퍼부으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빠가 데리러 와 줘서, 원종필까지 챙겨 출발. 원종필은 인덕원쯤에서 떨어뜨려주고, 잠시 집으로 돌아가 배달원이 비를 피하도록 일부러 쓰레기통에 넣어준 바비큐용 숯을 꺼내 트렁크에 실코서 저녁 먹으러 아웃백으로.

명목상 아직도 다이어트 중이긴 하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번은 아웃백을 가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와 퀸즐랜드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시켜 먹은 것은 썸머 특별 메뉴인 스파이시 스테이크 어쩌구와 파스타. 아빠랑 단둘이 커플 메뉴를 시켜 먹었다. 부쉬맨 브래드에 발라 먹는 버터가 또 새로 나왔다. 블루베리가 들어간 것 같던데, 맛은 훌륭했다.

사실 전에 아웃백 갔을 때 어리바리한 알바생이 계산 때 옆 테이블 오더랑 헷갈려서 나한테 5천원을 더 청구했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사과 전화 오고 1만원짜리 식사권 보내주고 그랬는데, 이 식사권은 도무지 쓸 일이 없다. 식사권은 제휴카드 할인이랑 동시 사용이 안 되는데, 보통 제휴 카드로 20% 할인 받는 게 식사권으로 1만원 할인 받는 것보다 할인 폭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도 그저 카드로 긁었을 뿐이고…….

나중에 메인 메뉴 두 개 이상 시킬 때, 계산을 separate로 해서 사용해야겠다. 음, 고추장 소스를 사용한 스파이시 스테이크는 맛이 좋았는데, 스테이크도 맵고 파스타도 맵고 같이 나온 그라탕도 매웠다. 이건 좀…….

다른 건 몰라도 오지 치즈 프라이즈를 못 먹은 건 아쉬워. 아웃백에 간 의미가……. 이집트 여행 중일 때 감자튀김은 정말 식사 때마다 나와서 어떤 때는 입도 대지 않고 물릴 정도였는데, 어째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만큼은 이렇게 문득문득 시시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거지.

토요일에는 오케스트라 파트 연습 및 전체 연습, 그리고 첫 전체 회식까지. 실력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 고생하는 것은 이제 싫다. 오케스트라에 내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지치고, 사양하고 싶다. 이런 나는 자진해서 연주회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음악은 내 어깨를 붙잡고 귓가에 속삭인다,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괴롭게, 즐겁게, 신나게, 힘들게.

취미라고 다 쉬운 것 아니다. 아마추어라고 다 속편한 것도 아니다.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없다.

젠장, 이렇게까지 말해버린 이상 또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잖아. 내일 하루만 적당히 눈치껏 땜빵 해야지.

2009/07/18 03:49 2009/07/18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