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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레슨 재개했다. 원래는 요즘 영어와 중국어 학원을 다니고 있는 강남역 인근에서 음악 학원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근처에 주택단지도 없고 대학도 없는 강남역 주변에는 실용 음악 학원만 즐비하고,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방문 레슨을 하는 선생님을 구했다. 역시 방문 레슨이라 페이는 좀 세다. 그래도 앞으로 기껏해야 5개월 정도 레슨 받을 거니까 감수하기로 했다.

한 달 만의 레슨 재개에, 선생님까지 바뀌었으니 이것저것 고칠 게 많다.

진단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왼손 -

Good:

- 왼손의 손목이 밖으로 꺾이거나 넥에 바짝 달라붙지 않고 모양새가 잘 잡혀있어서 합격점.

- 스스로 늘 나의 최대 결점이라고 생각해왔던, 혹은 나에겐 영원히 장착 불가능한 게 아닐까 여겼던 비브라토에 대한 것인데,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의외로 팔 비브라토를 잘 구사하고 있다고. 손가락 관절도 유연해서 비브라토 구사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다만…….

Bad:

- 활을 바꾸거나 멈출 때 왼손의 비브라토가 멈춰버리는 것. 이건 힘 빼기나 관절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겠지. 또 하나, 3포지션 이상 올라가면 손목이 악기 쪽으로 붙는다. 그러면 팔 비브라토를 넣을 수 없음. 아, 왜 내가 비브라토를 잘 못 넣는지 이제야 알았어.

- 운지를 힘없이 하는 것. 운지만으로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꼭꼭 눌러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 설령 틀린 음을 짚더라도 한 번에 또렷한 소리가 나도록 확신을 갖고 운지 해야지, 바른 음정 찾아가느라 적당히 뭉게는 짓은 하지 말 것.

- 손 모양이나 손목 각도 등은 대체로 좋은데, 엄지손가락이 약간 헤드 쪽으로 너무 붙는 경향이 있음.

- 포지션 이동 시 쉬프팅을 매끄럽게. 이건 뭐 평생의 과제 아닌가.

- 오른손 -

Good:

- 아니, 잠깐. 오른손은 뭐 칭찬 받은 게 없는 것 같은데. 보통 성인들이 활 쥘 때 새끼손가락을 뻣뻣하게 펴거나 엄지손가락에 과하게 힘을 넣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란 얘길 들었으나... 어차피 활 그립은 바꿨음.

Bad:

- 일단 활 그립. 내가 쥐는 법이 너무 올드 스타일이라고……. 활 쥐는 위치가 훨씬 올라갔다. 엄지와 약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은 모두 첫 마디까지 사용해서 활을 단단히 걸어 쥘 것. 선생이 바뀔 때마다 그립이 바뀐다. 나 참…….

- 오늘 가장 여러 번 지적 받은 것인데, 활을 쓸 때 거친 소리가 날까봐 너무 소심하게 보잉하지 말고, 악기를 충분히 울린다는 생각으로 깊게 깊게 활을 쓸 것. 내 악기의 음량에 세삼 놀랬다.

흐리말리로 일단 스케일 체크. 셰브직은 일단 보류하고, 카이저를 좀 깊이 파보기로 했다. 곡으로는 9월까지 배우고 있던 아델라이데 콘체르토를 보류하고, 하이든 콘체르토 2번과 모차르트 콘체르토 2번을 들어가기로. 또 악보를 사야 되는군.

뭐 전체적인 평가는, 성인 돼서 시작한 것 치고 자세라든가 유연성이 괜찮다는 것. 지금까지 제대로 배워 온 것 같다나. 그러나 역시 아마추어 특성상 곡 진도에 비해 부족한 에튀드 진도 등으로 볼 때 테크닉 적으로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도.

자, 나에 대한 평가는 이정도로 마치고, 선생님에 대한 인상을 말해볼까.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있다는 아줌마. 내가 단지 전화번호만 받고 자세한 소개는 듣지 못 했으니 간단히 소개 좀 해달라고 매우 에둘러 프로필을 요구했건만, 출신 학교 같은 중요한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레슨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학교 간판이 아니라 교육 역량이지만, 그래도 ‘일거리’를 구하는데 자기 약력을 상세히 밝히는 것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솔직히 전문 연주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은 이상, 대입 준비 시기와 대학 시절이 자기 음악적 역량을 기를 거의 유일한 시기였을 텐데,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는 건 좀 아닌 듯. 대학 간판 따지는 속물이 아닌 이상에야 선생이 무슨 대학 나왔든 뭔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염연히 내가 서비스를 구입하고 돈을 지불하는 고용주인데, 프로필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냐?

그 다음. 지도는 매우 꼼꼼했다. 그러나 어떤 선생이든 첫 시간에는 매우 꼼꼼하게 지도하기 마련이니까, 감격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도 꾸준히 이 정도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첫 레슨 내용에 대해서는 썩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가능하면 시간 약속은 잘 지켜주는 게 좋다. 뭐 사실 여기에 대해선 나도 워낙 너그러워서 레슨 시간을 미루든 당기든 날짜를 바꾸든 별로 신경 쓰지는 않지만, 약속을 잘 지켜주면 고맙지. 첫 전화 통화할 때 20분 후에 전화 주겠다고 하고는 1시간 20분 후에 전화를 걸어와서 좀 걱정하긴 했지만, 오늘 첫 레슨 때는 약속 시간 15분 전쯤 집 앞에 도착해서, 약속 시간 5분 전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뭐 일단 이 정도다. 앞으로 계속 겪어봐야지. 즐겁게 레슨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09/10/22 04:08 2009/10/22 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