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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지하는 것에 대해 가장 날 선 비판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성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

2012/05/16 00:26 2012/05/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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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도 무사히 끝나고,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가 유포니아 멤버들과 함께 연주도 했다. 물론 나는 당일 악보를 받고 초견으로 연주한 거라 사실 연주라기보다는 자리 채우기에 가까웠지만.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2012/05/14 00:47 2012/05/1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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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을 만큼 치밀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의 하루는 아침 6시, 알람 소리를 들으며 기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면 컴퓨터를 켜고 적당한 음악을 재생시킨다. 그리고 현관에 붙어있는 조그만 부엌으로 가 두 팔을 걷어붙인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프라이팬을 달궈 간밤에 해동 해 놓은 고기나 생선을 구을 준비를 한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한 끼 분량을 도시락 통에 옮겨 담는다.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사이 옷을 갈아입는다. 간밤에 널어놓은 운동복도 챙긴다. 대충 나갈 채비를 마쳤으면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30분 정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리면 뜸이 들도록 몇 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도시락 싸기를 마무리한다. 이제 출근 준비가 끝났다. 7시 10분쯤 방을 나선다.

일과

출근을 하면 근무복으로 갈아입는다. 내 책상 위에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써온 독서대를 가져다 놓았다. 책장을 고정하는 지지대 나사가 헐거워져서 원래 나사가 있던 자리 옆에 새로 구멍을 뚫어 나사를 옮겨 박았을 정도로 이제 제법 세월이 느껴지는 독서대다. 요즘 일과 시간에는 이 독서대 위에 주로 주자의 ‘대학장구’가 올라간다. 한글은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 한문으로만 쓰인 책이다. 일과 시간 중에 틈틈이 문장을 베끼며 구조를 익히고 뜻을 새긴다. 종종 책을 중국어 어학책으로 바꾸고 중국어 문장을 외우기도 한다.

도서관

5시에 퇴근을 하면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한 시간 정도는 필요한 공부를 하고, 한 시간 정도는 아무 책이나 내키는 대로 골라잡고 읽는다. 8시쯤 도서관을 나선다.

바이올린

뉴질랜드 여행 후에도 한 주 더 레슨을 쉬었다. 연습에는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복귀했지만, 브루흐를 연습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생상스의 ‘백조’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차이코스프키의 ‘칸초네타(협주곡 2악장)’ 같은 소품들을 주로 연습했다. 이번 주에 오랜만에 레슨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여행의 여파가 좀 느껴진다는 핀잔을 들었다. 다음 주에는 브루흐 연습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요즘에는 9시 50분쯤 연습을 마무리한다.

운동

최소 6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운동은 10시 10분부터 11시 10분까지 딱 1시간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운동을 하다보면 시간이 좀 오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잽과 스트레이트 시에 어깨에 잔뜩 들어가던 힘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니, 관장님께서 이제는 훅과 바디도 열심히 연습해야 할 때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서예

매주 목요일에는 공주의 한문 교실을 찾아 한문과 서예를 배우고 있다. 주자의 대학장구를 텍스트로 선정했는데, 나는 벌써 대학의 본문을 5장까지 외웠건만 진도는 ‘대학장구서(주자가 대학을 새로 편집하면서 붙여놓은 서문)’에 머무르고 있다. 다음 주에는 본문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한자로 쓰인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정말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다. 지식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비로소 나는 까막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내 텍스트에는 토가 달려있지 않다. 나는 문장의 의미만 파악할 수 있으면 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한문도 완전한 문장이다. 우리가 영어 문장에 토를 달아 읽지 않듯, 한문 문장에도 토는 필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는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도 토는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계신 것 같다. 아무튼 선생님께서 문장을 읽어주시고 순서대로 해석하며 뜻을 설명 해 주신다. 종종 나에게 문장을 읽고 해석 해 보라고 하시는데, 나는 예습을 착실히 해가는 학생이라서 한자를 못 읽거나 문장의 뜻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는 참담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토를 틀리거나 문장의 큰 뜻을 파악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어 보이는 몇 개의 한자들을 정확히 해석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가령 以, 所 같은 애매한 한자들) 선생님께서는 놓치지 않고 지적을 하신다.

대학 수업이 끝나면 다음은 글쓰기 연습이다. 지난 목요일에 구양순체 초급 교본을 받아 처음으로 ‘한 일(一)’자를 써보았다. 선생님께서 쓰신 글씨는 정말 아름다운 ‘한 일’이었는데, 내가 쓰는 한 일자는 꼭 닭다리 뼈다귀의 형상이다. 펜글씨도 제대로 못 쓰는 천하 악필인 내가 붓글씨라니! 바이올린 활을 처음 쥐었을 때와 같은 막막함이 느껴졌다. 바이올린이야 멋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어찌어찌하여 6년을 넘게 해오고 있으나 앞으로 또 붓을 잡고서 그 지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럽기도 하다.

오페라

지난 금요일에는 바이올린 선생님이 소속되어있는 연주 단체가 연주하는 오페라를 보러갔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연주회를 보러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두 사람과 함께 오페라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이 모두 군인인데, 그 중 한 명은 나의 한 기수 선배이고 나에게 공주의 한문 교실을 소개해준 사람이다. 사형(師兄)이라고나 할까. 이 공연을 무려 두 달 전에 예매 해 두었다고 한다. 과연 이 선배는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공연장 객석 맨 앞줄의 정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반향(反響) 없이 직접 들려오는 소리가 그리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단다. 나는 선생님께 받은 티켓으로 적당히 뒤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관람했다.

이 날 공연된 작품은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로, 지난번에 본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와 스토리는 정반대지만 분위기는 매우 비슷한 작품이었다. 거대한 콘서트 홀이 아닌 아담한 앙상블 홀을 무대로, 배우를 딱 4명만 캐스팅하여 챔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조촐하게 공연되었다. 엑스트라가 없어서 아리아나 중창 중간중간의 디테일들은 지휘자의 설명으로 대신했는데, 지휘자의 언변이 부족하여 몰입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이런 소규모의 살롱 오페라는 매우 참신하지만, 좀 더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유능한 ‘이야기꾼’의 존재가 필요할 것 같다. 마치 ‘판소리’처럼, 직접 배우들이 연기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구연자의 생생한 이야기만으로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듯 표현할 수 있게끔 말이다.

허술한 구석이 많긴 했지만 나름 재밌게 보았다. 특히 돈 파스콸레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다. 그 궁상맞아 보이다가도 애처로워 보이는 연기를 참 맛깔나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 세 사람은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잠시 소감을 나눴다. 중간에 바이올린 선생님이 카페로 찾아와 감상하러 와줘 감사하다며 와플을 사주었다. 공짜 티켓에 서비스까지. 연주하고 남는 게 뭐 있을까 싶다.

2012/04/29 02:21 2012/04/29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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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 : 4. 7. ~ 4. 15.

2012/04/06 22:43 2012/04/0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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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했다, 이 개새끼들아.

2012/04/06 00:24 2012/04/0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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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브루흐 1번 1악장 악보를 모두 훑었다. 꼬박 3개월이 걸렸다. 말이 3개월이지 레슨은 한 5번이나 받았을까. 그래도 진도를 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개인 연습 덕분이다. 정말이지 해가 바뀐 이후로는 내가 생각해도 기특할 정도로 성실히 연습을 하고 있다. 실력은 여전히 확 느는 것 같다가도 정체되기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브루흐를 연습하며 얻은 것들이 많다.

하지만 역시 혼자 연습은 위태로운 점이 있다. 손가락 좀 돌아간다고 템포가 완전 들쭉날쭉. 어려운 부분일수록 빨리 켜버리는 버릇은 수년째 고쳐지지가 않는다. 선생님이 템포를 다시 잡아주었다.

앞으로 음악적으로 다듬는 데에 또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선생님은 벌써 다음 곡을 생각해놓겠다고 하지만…….

요새는 어딜 가나 선거 운동원들이 아주 지랄들이다. 나는 전교 회장 선거 때도 이렇게 유치하게 선거운동하지는 않았다. 아, 그래서 떨어졌나? 아무튼 내일은 부재자 투표일. 다음 주에 뉴질랜드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미리 부재자 투표 신청을 해 두었다.

2012/04/05 00:53 2012/04/05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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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아직 굳지 않았으려나. 대학(大學)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에 도전. 논어와 맹자는 몰라도, 대학과 중용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광각 렌즈용 CPL 필터가 도착했다. 평일 낮에는 도통 사진 찍을 시간이 없으니, 테스트는 뉴질랜드에서.

LA 갈비(미국산)를 1kg이나 사버렸다. 도시락 반찬으로 갈비를 싸간다.

2012/04/04 01:58 2012/04/0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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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녹초가 되도록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매일 도서관, 바이올린 연습실, 복싱 체육관을 다니는 와중에 지난 주 목요일에는 처음으로 서예 교실을 방문했다. 그곳의 선생님은 83세의 할아버지로, 사서집주를 줄줄 외는 조선 시대 선비 같은 분이었다. 함께 간 선배가 맹자 수업을 듣기에 옆에서 청강했다. 중간에 아주 쉬운 문장 하나를 해석했더니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오히려 마음이 씁쓸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문장이었는데.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오면 교실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기로 했다.

금요일에는 대전 시향의 연주를 보러 갔다. 요즘은 연주회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연주회를 들으러 가더라도 대개 실망할 뿐이고, 집에서 음원을 들으며 즐기는 것이 심적으로 오히려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보러갈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키면 추후에 쓸지도 모르겠다.

토요일에는 다시 뉴질랜드로 출국하는 아빠를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드리고 나는 두 번째 창덕궁 경학을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 한 신원전과 규장각, 옥당(홍문관), 약방(내의원)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특히 역대 왕들(보통 태조와 현왕(現王)의 4대조까지)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신원전은 대단히 기품이 있는 건물로, 그 고요함 속에 어떤 신비한 분위기마저 감돌아서 쉬이 자리를 옮길 수 없었다. 중간에 고교 동창 원종필과 합류하여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등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는 것으로써 두 번째 견학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5대궁 관람 티켓을 구매하여 주말마다 둘러보아야 할 듯싶다.

오후에는 집에서 손님을 맞았다. 고교 동창 원종필, 그리고 종필이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기이자 동생 김지찬. 각자 고기와 안주 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벽난로에 바비큐 화로를 설치하고 숯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구워먹었다. 맥주와 매실주를 곁들이며 군대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전통적으로 손님맞이의 하이라이트는 프로젝터가 설치된 방에서의 대전 액션 게임. 원종필이 마침 게임기와 최신 타이틀을 가져왔기에 밤 새워가며 놀았다.

일요일은 죽은 듯 쓰러져 보냈다. 이번 주 토요일, 뉴질랜드로 출국한다.

2012/04/02 23:33 2012/04/0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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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되었다. 나는 상식적 판단을 존중하는 사람이라 근거 없는 음모론은 믿지 않는다. 나는 천안함을 두 번이나 견학했다. 처참하게 두 동강 난 천안함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어뢰에 의해 폭침되었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결론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하지만 그 주장을 믿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건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이 정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본부에서는 천안함 결의 대회를 하였다. 구호는 “천안함 폭침, 반드시 복수한다.”였다. 이들이 말하는 복수라는 건 무엇일까. 언제고 앙갚음을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재차 도발이 있을 시에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의미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가슴에 증오심을 품은 채 살아가겠다는 뜻일까?

한편 이 날은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어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에서 북한 지역을 둘러보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한미 양국의 정상은 포옹하며 우의를 과시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의와 힘이 모두 우리에게 있음을 으스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적잖이 안심도 하였고 또 뿌듯해도 하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다. 비참하다. 오늘 한국에 모인 여러 정상들이 대표하는 그 나라들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우리처럼 분단의 비극을 현재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렇게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세계인들 앞에서 같은 민족을 주적이요 악이라 손가락질해야 하다니. 한반도 위에 펼쳐진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첫 번째 치욕이고, 국가가 두 동강 나서 반세기 넘도록 통일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치욕이다.

그토록 주창하는 ‘높은 국격’이라는 것은 어디 있는가? 경제 수치가 우리의 국격을 말해주는가?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희롱하는 연예인들이 우리의 국격을 높여주는가? 분명 대한민국에는 감탄할 만한 점들이 아주 많지만, 세계의 정상들은 뒤돌아서서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의 집 형제 다툼에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 안보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갖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우리가 한쪽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미워하며 한쪽을 절대적 선으로 믿고 추종하는 것 외에는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이 모순적 상황에서 우리가 존립할 길이 없다는 것이 참 가슴 아프다.

우리는 북한을 미워한다. 그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미워하는 게 마땅하다. 북한의 만행으로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 원한을 거두어 달라고 나는 감히 설득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가 걷잡을 수없이 퍼져나가고 모두의 가슴이 증오로 격분될 때에, 그 감정의 해소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까? 우리에게 아직도 그런 목적의식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계획과 실천은커녕 목적의식마저도 사라져버린 듯하다.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고 북한과 남남으로 대치한 채 살아가겠다면 그건 아주 쉬운 선택이다. 어려운 것은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통일이라고 하는 과제가 20세기 역사와 함께 묻혀버려서는 안 된다. 21세기에는 통일의 문제를 새롭게 의식화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전에 없이 이념 공방이 치열하다. 지난 총선 때도 이 정도의 이념 공방은 없었던 것 같다. 외적 통일을 이루지 못 한 상태가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을 낳고 있는지는 이것만 봐도 자명하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 하는 한, 이런 사태는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이제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서울로 각국의 정상들을 초대하여놓고, 같은 민족에 대한 제재를 호소해야 하는 이 가슴 아픈 역사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폭침의 전사자를 애도하며 복수심으로 이를 갈면서 한 쪽으로는 세계만방의 평화 증진을 외치는 이 공허한 사태를 보며,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2012/03/27 02:02 2012/03/2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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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나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니. 그만큼 생활이 바빴던 거라고 생각하여야 할까. 그 사이 5일 일정으로 통역 수행을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한일 중급 장교 교류회의로, 대령의 인솔 하에 중령 두 명과 소령 두 명 등 총 5명이 방한했다. 그 동안 2성이나 3성 장군을 주로 모셔왔으니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부담 없는 행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역이 쉬운 일은 아니니, 조석(朝夕)으로 찬바람이 불고 낮에는 더운 봄 날씨 속에 서울, 대전, 청주, 김해를 오가는 일정을 따라다니다 결국 목도 상하고 몸살도 나고 말았다. 그나마 본부는 출장비를 잘 챙겨줘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일 수행에 출장비만 대략 20만원이다. 물론 통역이라는 엄청난 정신노동의 대가치고는 소략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답사

날씨도 제법 따뜻해졌으니 슬슬 출사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볍게 몸 풀기로 몇 군데 답사를 다녀왔는데, 2주 전에는 창덕궁을 다녀왔고 지난 주 화요일에는 공주시를 찾아서 공산성을 둘러보았다. 공주까지 간 김에 무령왕릉도 들렀으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 했다. 저녁 식사는 공주대학교 앞에서 먹었는데, 3월 신학기인 만큼 대학가는 활기에 넘쳤다.

도서관

요즘에는 퇴근 후에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계룡대 근처에 있는 엄사 도서관이라는 곳이다. 5시에 칼 퇴근해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6시 즈음에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8시까지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면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간다.

바이올린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노은동의 연습실에서 바이올린 연습. 올해 초에 시작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1악장을 3개월 째 붙잡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 덕택에 연주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시간과 노력 앞에 버티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선생님도 칭찬을 많이 해준다. 연습이 끝나면 이제 운동하러 간다.

복싱

10시 40분부터 12시까지는 장대동의 체육관에서 복싱. 복싱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살이 조금도 빠지지 않다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성실하게 다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도이폐(中道而廢)하지는 않았다. 이제 비로소 조금 어깨에 힘이 빠지고 펀지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한바탕 뛰고 땀을 쭉 빼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 비록 체중은 줄지 않았어도 예전보다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에서 등산을 갔는데, 길이 험한 천왕봉 등반이었지만 다음 날 가벼운 근육통 하나 없었던 걸 보면 평소 전신의 근육을 골고루 쓰고 있는 모양이다. 제대할 때까지는 그만두지 말고 착실히 운동하자.

도시락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벌써 새벽 1시에 가깝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안친다. 다음 날 싸갈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다. 밑반찬이야 대부분 주말 중에 만들어 놓으니, 반찬 통에서 도시락 통에 옮겨 담기만 하면 그만이다. 가끔 특별한 반찬이 먹고 싶을 때는 생선 한 도막 굽기도 한다.

향후 계획

뉴질랜드

여행 허가도 받았고 여권도 무사히 발급 받았다. 항공권도 이미 예매했다. 4월 7일에 출국하여 15일에 귀국하는 8박 9일의 일정으로 뉴질랜드에 다녀온다. 부모님이 계시는 오클랜드 일대와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고 올 예정이다.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초점 거리 10-20mm의 초광각 렌즈도 거금 40만원을 들여 장만했다.

중국어

본부에 영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어 통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선배가 한 명 있는데, 중국어를 제법 잘 한다. 이 선배와 함께 중국어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나 선배나 일이 그리 바쁘지 않은 한량들이라서 근무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30분 정도라도 공부를 하기로 했다. 제대하기 전까지 기초 회화는 가능할 정도로 실력을 쌓는 게 목표다.

서예

1주일에 한 번 공주에 있는 서예 교실을 찾아 서예를 배우려고 한다. 단순히 붓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고전 텍스트를 본 삼아 그것을 베끼면서 글씨 연습도 하고 고전 공부도 하는 곳이라 한다. 텍스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역시 사서(四書) 중 입문서인 대학(大學)부터 시작할까 한다. 아마 너무 바쁘지만 않으면 다음 주 중에 첫 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2012/03/24 15:45 2012/03/24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