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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전 사태. 이런 건 그냥 뉴스로나 접하는 소식인 줄 알았는데, 오늘 저녁 6시 15분 쯤, 대전시 관저동 일대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차는 수리 맡겨놓은 상태라 퇴근 버스를 타야했지만, 간발의 차로 놓치고 말았다. 20분에 출발이라더니 시간 준수 칼 같다. 역시 군인 퇴근 버스. 다행히 대전시에 거주하는 후임이 차를 태워줘서 편하게 관저동까지 올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저녁을 해결할까 싶어서 식당을 둘러보는데, 평소 자주 가는 돈가스 전문점 ‘미소야’의 불이 꺼져있었다. 오늘 영업을 안 하나 싶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등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어두컴컴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둘러보니 동네 전체가 정전.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일이냐며 건물 밖으로 나와 웅성웅성. 미용실에서 머리하다가 놀라서 뛰쳐나온 아줌마도 있었다. 신호등도 꺼져버리고, 건물들에서 뿜어져 나오던 조명도 사라졌다. 이런 완벽한 적막감은, 어떤 휴일에도 경험한 적이 없다.

원룸 빌딩의 출입구에는 전자식 덧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당연히 정전으로 인해 키패드가 먹통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전기 공급이 차단된 문은 수동으로 열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불도 켤 수가 없어 그대로 침대에 누웠는데, 어느 새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방에 전등은 꺼놓은 상태였지만 방 안의 모든 전기 제품에 일제히 대기 전력이 공급되는 그 순간의 오묘한 느낌은 선잠 든 상태에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운동은 가지 못 했다. 바이올린 연습도 못 했다. 다음 주부터 두 건의 통역 일정이 잡혀있어서, 이달 말까지는 운동이고 연습이고 여의치가 않을 것 같다. 운동 회비랑 연습실 대여료로 각각 8만원씩이나 지불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얼마나 번다고 벌써 돈지랄이냐.

2011/09/16 00:51 2011/09/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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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는, 원인 미상의 알레르기 때문에 힘들게 보냈다. 25년 평생 알레르기 따위는 모르고 지냈는데, 요 근래 분당 집에만 가면 자꾸 목과 코가 가렵고 재채기가 나는 게, 처음에는 그냥 감기인가보다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 분명해졌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알레르기’인 모양이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는 증상이 피크에 달해, 정신이 멍해지고 두통까지 일 정도였다.

연휴 마지막 날, 시원하게 뚫린 하행 고속도로를 신나게 질주하고 있었다. 동공주 IC를 지나 당진상주고속도로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차가 갑자기 굉음을 내면서 퍼졌다. 설 명절 보너스를 받고 좋아하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엔진 오일 부족으로 엔진이 터지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올 초의 그 악몽 같은 날이 완벽하게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엔진을 교체했지만, 그 이후로도 엔진 오일 소모가 심해서 수시로 보충하고 다녔는데, 얼마 전 엔진 오일을 교체한 이후로 웬일로 오래 잘 달려준다 싶었으나, 램프에 경고등 띄우는 예고도 없이 엔진이 터져버리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추석 보너스로 새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려는 단꿈에 부풀어있던 나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치는 한 방이었다. 밤 11시 반에 고속도로 갓길에서 견인차를 기다리는 그 심정이란. 지나가던 고속도로 순찰차가 나를 발견하고, 안전을 위해 20m 정도 뒤에서 경광등을 켜고 대기해줬다. 쪽팔리긴 했어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지도를 켜고 찍어보니, 서대전까지 남은 거리는 약 30km 정도. 무상 견인 거리인 10km를 제하고, km당 2천원 추가 요금 물면, 방까지 5만원 안에 가겠다 싶어서, 관저동 원룸 가장 가까운 카센터로 가달라고 했다. 다행히 방으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애니카 카센터가 있어서, 그곳에 차를 내려놓고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마음을 좀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잠은 이미 다 잔 셈.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오전에 카센터와 연락이 닿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엔진은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고. 오후에는 등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반가를 쓰고 나와 부랴부랴 카센터로 가서 대충 사정을 들었다. 확실히 문제는 오일이 어딘가에서 새면서 급격하게 빠져버리고, 엔진은 말라붙은 상태에서 무리한 운전으로 속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는 것이다. 오일이 새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엔진을 다른 것으로 갈든가 완전히 새로 조립해야 하는 지금 상태에서 그걸 밝혀내는 건 무의미한 일. 중고 엔진을 사다 얹을까 했지만, 복불복이라는 말에 일단 보링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또 추석 보너스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차에 이렇게 많은 수리비가 들어갈 줄 알았더라면 진작 중고차 한 대를 샀겠지만, 장차 내가 한국에서 지낼 날도 앞으로 길어야 3년. 차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제대할 때까지이니 2년만 버티면 된다. 이 마티즈는,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폐차해버리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이제는 정말 ‘미운 정’이 들어버린 이 차를 타고 다녀야겠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방에 돌아와 잠을 좀 자고, 레슨을 받으러 출발했다. 차가 없으니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 카드로 쓸 수 있는 국방복지카드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신용카드로 만들길 정말 잘 했어.

평소 직접 운전 해 가면 20분이면 가는 거린데, 버스를 이용하니 걷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갈아타는 시간 등 포함해서 거의 1시간이 걸린다. 땀범벅이 되어서 겨우 연습실에 도착해서는 그 두터운 철문 앞에서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실 열쇠는 차 키홀더에 같이 끼워놨고, 그 키홀더는 지금 공업사로 간 내 차에 꽂혀있을 것이다. 레슨 시작까지 20분밖에 안 남았는데! 저녁도 못 먹고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선생님 왈, 레슨 할 장소가 있을 것 같단다.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일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선생님 모교인 충남대학교의 음대 연습실. 세상에 내게 음대 연습실을 써 볼 날이 오다니! 나는 대학 시절에도 종종 음악 감상을 하러 음대 도서관을 이용한 일이 있다. 그래서 음대 연습실이 얼마나 비좁고 갑갑한 공간인지는 오며 가며 곁눈질로 봐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연습실은, 정말이지 ‘음대의 로망’ 운운하기에는 너무 삭막하고 척박한 공간이었다. 중간 중간 모기도 잡으면서, 레슨을 받았다.

모차르트 4번 대신 선생님이 가져 온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그 유명한 ‘스프링 소나타’다. 결국 이 곡을 피할 수가 없구나. 이 곡은,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들으면 알만큼 너무 유명한 곡이다. 게다가 분위기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밝고 경쾌하고 아름답다. 나에겐 뭔가 우울하고 음습한 곡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 곡을 연습하게 될 것 같다.

어제부터 계속 우울했는데, 레슨을 받고 오니 기분이 좀 상쾌해졌다. 연습실 키가 없어서 당분간 연습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내일은 운동이나 가야겠다. 추석 기간에 몸 안 구석구석 쌓아놓은 칼로리를 좀 소모하면, 기분이 더 상쾌해질 것이다.

2011/09/15 01:06 2011/09/1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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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공구와 나무 조각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비좁은 골방에, 웬 곰 같은 사내가 앉아있었다. 자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는 물음에 레슨 선생님이 소개 해 줬다는데도 반기기보다는 겸연쩍어하는 눈치다.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본다. 브릿지도 만지고, 자도 대본다. 두드려도 본다. 나의 무심함에 치명적인 상처라도 입었을까, 마치 건강검진 결과 기다리는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괜찮다는 한 마디에 긴장이 풀린다. 활 털도 갈고, 현도 갈 테니 내일 찾으러 오란다. 떠나려니 붙잡고 커피 한 잔 하고 가란다. 서로 말 수 적은 사내 둘이 마주 서서 멀뚱멀뚱 쓰디 쓴 블랙커피를 들이켰다.

둔산3동 둔산남로에는 악기점이 많았다. 대전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제법 능숙한 쇼팽의 ‘왈츠’도 들리고, 영 어설픈 바이올린 연주도 흐르는 주택가 골목을 지나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먹자골목이 나온다. 혹시 혼자 들어가 저녁 먹을 만한 가게가 있을까 해서 두리번 거려봤지만, 영 실패다. 후드득 떨어진 빗방울이 머리를 때린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차를 몰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30분이면 오갈 거린데, 저녁 교통 체증에 걸리니 왔다갔다 찻길에서만 1시간 반을 허비했다.

방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다. 5,500원이면 식사에 후식으로 커피까지 준단다. 들어가 보니 카운터는 웬 꼬마가 지키고 있고, 주인인 듯 보이는 아줌마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널찍한 가게 안에, 사람은 그 둘 뿐이다. 8시도 넘었는데, 다행히 식사는 된단다. 메뉴를 펴보니 돈가스에 해물 스파게티. 그래 여기가 흔히 말하는 ‘경양식’ 집인가 보다 하는데, 이어지는 메뉴는 해물볶음밥에 산채비빔밥. 돈가스 하나 시켜놓고 멍하니 기다리자니, 주인아줌마가 아들 나무라는 소리가 들린다. “너 또 음악 껐지!” “안 껐어. 그냥 소리만 줄였어.” 똘똘한 아이다. 그래도 손님이 왔다고 음악을 들려주려나보다. 곧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들어본 것 같기도 한 발라드풍의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커피는 커다란 머그잔에, 시럽은 남대문 시장 그릇 도매상가에서 내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던 앙증맞은 컵에 담겨 나왔다. 원래는 시럽을 잘 안 넣어 마시지만, 오늘은 조금 넣어봤다. 씁쓸한 커피 맛은 여전하지만, 뒤에 살짝 단 맛이 남았다.

음식 맛도 그저 그렇고, 커피 향도 그저 그렇다. 하지만 싸고, 무엇보다 손님이 없어 좋다. 내 방에서 나와 모퉁이 하나만 돌면 전문 커피숍이 있다. 거기는 커피 한 잔 값이 이 집 식사 값이고,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손님이야 있든 말든, 책 읽는 엄마를 위해 음악 소리 낮추는 아들내미가 카운터를 지키는 이 텅 빈 카페에 더 정이 간다.

악기가 없으니 연습도 못 하고,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되도록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도 시간이 남아, 오늘은 좀 일찍 일기를 썼다. 이제 운동이나 다녀와야지.

2011/09/08 21:24 2011/09/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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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G 보상 휴일. 이렇다 할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빈둥거리며 보냈다. 잠도 푹 자고. 오전에는 롯데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래봤자 우유라든가 치약이라든가 몇 가지 샀을 뿐이지만. 곧 추석이라, 점원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추석 선물 세트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햄 세트라든가 샴푸 세트 같은 것들을 사보라고 권하는데, 이런 게 추석 선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령 내가 누군가로부터 샴푸 세트를 선물 받는다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까.

롯데마트 다음에 들른 곳은 관저동 가구단지. 여기서 책장 하나를 주문했다. 방에 책장이라고는 달랑 하나 있는데, 책과 술 기타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서 방바닥에 책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이 꼴을 더 이상 용인할 수가 없었다. 폭 1m 20에 3 X 3 칸짜리다. 술병들을 옮겨놓고 보니, 제법 훌륭한 술 진열장이다.

한 달 만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악기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악기를 사고서 한 번도 점검을 받은 적이 없구나. 이런 무심함이라니. 악기를 제작한 공방에 들고가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일단 선생님에게서 대전 시내에 있는 악기사 한 곳을 추천 받았다. 활 털도 교체할 겸 내일 들고 가봐야지.

레슨 내내 나의 모차르트 연주를 불만스럽게 여기던 선생님은 결국 모차르트 포기 선언을 하셨다.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해석하면 “모차르트 할 실력이 안 된다.”겠지. 대신 다른 곡을 해보자는데,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말해보라고 도발을 해서 “브람스 소나타 1번이요.”했더니, 그건 또 안 되겠다고……. 아니 나도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고. 그러면서 브루흐는 어떠냐는데, 아니 무슨 브루흐. 아무리 생각해도 브루흐가 모차르트나 브람스보다도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 선생님 말로는 낭만파 곡을 만지면서 소리 내는 법, 표현하는 법을 좀 익혀야 할 것 같다나. 아무튼 무슨 곡을 하게 될 지는 여전히 미정이지만, 조만간 낭만파 협주곡 하나 들어가긴 할 것 같다. 모차르트는 한 2년 쯤 후에 다시 도전해야지.

선생님이 노은동 쪽에 연습실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월 8만원이나 내고 대여하고 있는 클라리넷 학원 대신 저렴한 가격에 자기 학원 연습실을 대여 해 주겠단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지. 다음 레슨은 일단 다음 주 수요일로 잡아 놨다. 그 다음 주부터는 연이어 통역 출장을 나가게 될 것 같아, 또 다음 레슨을 기약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복싱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권투’말이다. 원래부터도 심각한 운동 부족이었지만, 본부로 옮긴 이후로는 정말 서 있는 시간도 없이, 늘 앉아서만 생활하다보니 살은 찌고 몸은 둔해지기만 한다. 복싱을 잠깐 배운 친구가 줄넘기를 추천 해 줬지만, 몇 번 하다가 포기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악기 연습 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칵테일도 만들어 마시는 자율적인 인간이지만, 도저히 운동만은 자율적으로 못 하겠다. 결국 난 나를 강제로 운동하게끔 해 줄 곳에 몸을 투신해버렸다. 원래는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지만(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적이 있다), 집중적으로 운동하며 살도 빼고 민첩성을 기르기에는 복싱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바이올린 연습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체육관을 찾아가 등록했다. 첫 날은 줄넘기와 뒷짐 지고 제자리 뛰기. 둘째 날은 3:1 뛰기(3번 제자리 뛰기 후 1번 앞으로 점프 했다가 다시 뒤에서 3번 뛰기 반복), 오늘 겨우 주먹을 쥐었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다. 아주 지루한 게 딱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지루한 걸 견디는 것은 천성인 모양이다),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은 아니니, 일단 올해까진 열심히 해서 살 빼고 민첩성을 기른 다음, 내년에는 정말 테니스를 시작해볼까 싶다. 하지만 모르지. 이러다 또 복싱의 매력을 알아서 빠지게 되면, 바이올린처럼 평생 쭉 하게 될지도.

본의는 아니지만, 아무튼 매우 바쁜 생활을 하게 됐다. 6시 40분에 기상, 7시 5분에는 보통 출발한다. 공식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 적당히 5시 5분이나 10분쯤 일어나서 퇴근한다. 방으로 돌아오면 보통 5시 40분쯤. 저녁 먹고 쉬다가 7시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나가야 한다.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딱 두 시간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나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으로 간다. 여기서 대략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 운동하면 11시다. 방으로 돌아오면 11시 반. 개운하게 샤워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12시다. 운동을 떠나서,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살이 안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체력이 버텨주려나.

일찍 자야겠다.

2011/09/08 00:55 2011/09/0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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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연습실에 나가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왔다. 이 연습실이 과연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데, 거실의 에어컨이 고장 나 있었다. 다행이 방마다 설치된 벽걸이형 에어컨은 제대로 작동을 해서 찜통은 면할 수 있었다.

지난 3주간 레슨을 받지 못 했다. 물론 연습도 제대로 못 했다. 올해 들어서는 바이올린 실력이 조금도 발전하지 못 하는 것 같다.

훈련도 끝났겠다, 내일부터 레슨을 재개하려고 했지만 사무실에서 훈련 종료 기념 회식을 한단다. 전원 강제 참석이라 어쩔 수 없이 레슨을 또 다음 주로 미뤄야만 했다. 그래도 내일 회식 때는 레슨 핑계를 대고 가능한 일찍 빠져나올 생각이다. 소주는 마시기 싫다.

지난 주 토요일 남대문 시장에서 주문한 20만원어치의 술이 도착했다. 자세한 얘기를 쓰고 싶지만, 지금 샤워할 기력도 없을 만큼 피곤하다. 나중을 기약해야겠다.

2011/08/30 22:35 2011/08/3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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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G 야간조 투입. 야간 근무는 정말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무상급식 관련 투표일이 내일이던가? 나는 서울시 주민이 아니니까, 투표권이 없다. 그래도 한 마디.

무상 급식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은, 이것을 이른바 ‘부자 아이들’에게까지 무상 급식을 제공하느냐, 아니면 빈부의 차이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느냐의 문제로 보는 것. 그런데 이건 말 그래도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나는 오히려 이것을 현 ‘의무 교육’ 체제 하에서, 급식이라고 하는 하나의 서비스를 교육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경제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것은 교육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국가가 제공하고자 하는 교육이 대체 어떤 교육인가에 따라, 그 철학을 관철하기 위해서 때로는 과감한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 쪽에서조차 이 논의를 좀스러운 수준에 한정시켜버렸다.

주민투표 실시와 관련해서는, 이런 문제를 투표로까지 끌고 나와 버린 시점에서 대의 민주정치에 반한다고 생각되지만(대체 시의회와 시장은 뭣 때문에 뽑았단 말인가?), 간혹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정의 기회가 이런 식으로 제공되는 것도 순기능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왕 투표가 실시되었으면, 그 권리의 행사는 전적으로 시민의 몫이므로 투표를 하라 마라 왈가왈부 할 대상이 아니다.

멍청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밥상까지 차려줬는데도 불구하고(투표를 하고, ‘찬성’으로 결론이 나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멍청하게도 잘못된 전략을 세워서 대응했다. 결국 투표 결과와는 상관없이, 투표율이 33.3%만 넘으면, 이 게임은 한나라당의 승리로 결판나게 되어버렸다.

2011/08/23 20:24 2011/08/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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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삼일 차. 업무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치이는 일은 없다. 긴장 상태가 지나가자 한없는 무료함이 엄습한다. 그저 지루할 뿐.

공군에 몇 없는 일본어 어학 장교이다 보니 간혹 일본어 번역 의뢰가 들어온다. 외국 장성에게 보내는 축하, 위로 서신이나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사적인 서신, 각종 발표 자료나 스크립트의 번역 따위가 주를 이룬다. 내가 일어 통역이니 번역 의뢰야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원문은 제대로 써서 줘야 되지 않나?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인 글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비문들, 맞춤법 오류들, 그리고 문맥상 도저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장들, 되는대로 갖다 붙인 미사여구들…….

그런데 이게 비단 ‘못 배운’ 군인들만의 문제일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할 줄 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글을 두서없고 난삽하게 쓰는 것은, 그만큼 생각도 깊이가 없고 논리가 결여되어 주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 바로 ‘멍청이’다. 소위 명문 대학의 간판을 달고, 좋은 학점에 높은 영어 시험 성적을 쌓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 중에도 이런 ‘멍청이’는 너무나도 많다. 나는 기업인이 아니니까, 이런 멍청이도 회사 운영에는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기준에서는, 글 쓰는 능력은 곧 인간의 품격과 관련되어 있다.

부나 지위, 명예 같은 것들도 물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식견,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안목, 여론에 매몰되지 않는 합리적인 이성 역시 훌륭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들이다. 돈이 많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겠지만, 식견이 없으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격을 한 차원 높여주는 고매한 정신은, 독서와 글쓰기의 반복을 통해 길러진다.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마치 향기 없는 꽃처럼 매력이 없다. 그의 정신이 너무나도 빈곤하기 때문이다.

2011/08/19 01:35 2011/08/1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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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이틀 차. 나는 여전히 치이고 있다. 내가 속한 상황실에서, 나의 업무 처리 능력과 성실함이 으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다른 상황실에서는 나를 닦달하고, 나무라고, 심지어는 깔보며 무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우직하게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며, 부여된 임무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처리한다. 무슨 험한 말을 듣든, 나는 낮은 자세를 잃지 않는다.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지침을 내려주는 윗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능력은 더더욱 없는 인간들에게는, 차라리 동정심이 든다.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들. 그들이 무책임하게 내뱉어놓은 허언들만이 쌓이고 쌓여서 이 참혹한 세상을 빚어버렸다. 모든 것을 임기응변으로 처리해야 될 바에야, 차라리 훈련 지침을 나에게 새로 만들게 해주면 좋을 텐데. 언제나 규정은 능률 위에 있고, 계급은 규정 위에 군림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나는 차라리 ‘무능력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들으련다.

다음 주,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예약 해 놓았는데, 훈련 때문에 연주회를 보러갈 수 없게 생겼다. 내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보내는 12시간이,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의 튜닝을 지켜보는 시간만큼의 가치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을.

나는 꽤 쓸 만한 사람인데, 나를 쓸 만한 사람은 도통 없다.

2011/08/18 00:16 2011/08/1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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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G가 시작됐다. 난 원래 훈련 참석 대상자가 아니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훈련 인원에 공백이 생겼다면서 다짜고짜 나를 상황실에다가 앉혀놓았다. 이어서 시작된 무능한 자들의 핑퐁질. 너무 화가 나서 ‘모르겠습니다.’, ‘해 본 적이 없습니다.’로 일관하다가 그냥 뛰쳐나오려고 했는데, 타고난 성실성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았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또 일은 하게 되어버리니.

12시간씩 2교대 근무로 2주간 지속 훈련이다. 오늘은 10시에 퇴근했다. 지난주에는 선생님 사정으로, 이번 주와 다음 주는 내 사정으로 레슨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인생이 어떤 식으로 낭비되고 있는지, 이런 때에 종종 깨닫는다. 대체 무얼하고 있느냐고 자신에게 묻는 날이면, 나도 조금은 우울해진다.

어제였나. 바렌 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국내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지. 어제의 프로그램은 합창 9번으로, TV에서 무려 새벽 1시에 녹화방송을 해줬다. 별로 끝까지 듣고 잘 생각은 없었는데, 결국 끝까지 다 듣고 말았다. 소프라노는 조수미. 소프라노가 그렇게 두드러지는 곡은 아님에도(그리고 비교적 카메라가 4명의 독창자를 고루 비춰주려고 노력했음에도), 조수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한편 바렌 보임. 아, 그도 늙었다. 사람이 늙으면 눈빛이 변한다. 젊은 예술가의 시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상을 응시하고, 늙은 예술가의 시선은 내면의 추억과 회한을 쓰다듬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음악가들이 모여 만든 이 기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바렌 보임은, 어느 덧 자기가 걸어온 삶 속에 구축된 하나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관객의 매너에 대해서 코멘트. 나는 악장과 악장 사이의 박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박수를 치지 않는 게 에티켓이기는 하나, 그것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감상자들 사이에서나 통용이 되는 이야기다. 한국인에게 음악이란, 마음에 들면 언제든 박수칠 수 있고 아는 멜로디면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음악 감상의 자세에 있어서 야만하다고까지 칭해졌던 이탈리아인들과 기질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국인들은 서양의 클래식도 모르거니와 동양의 고전도 모른다는 것(나도 동양의 고전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에티켓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진지하게 마주하고 탐구하듯이 파고들어야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음악을 듣는 자세가 어떠하고는 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가 즐기는 음악의 속성을 알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니까.

그래도 4악장 중간에 터져 나온 박수는 너무 심했잖아! 성남시향이 베토벤 9번 한 곡을 연주하는 동안 7번의 박수가 터져 나왔던 게 떠올랐다. 연주도 개판이었는데 그렇게 박수를 남발하는 건,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강박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어제는 3시간도 못 잤다. 지쳤다.

2011/08/16 23:45 2011/08/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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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일기장

매우 규칙적인 생활.

기상 - 출근 - 시간낭비 - 퇴근 - 쪽잠 - 바이올린 연습 - 음악 들으며 웹서핑 - 일기 및 기타 글쓰기 - 독서 - 잠

우피치 미술관에 화장실 청소부로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대한민국 공군 장교 노릇하는 것보다 하루하루가 보람찰 것 같은데.

연습실이 있다는 게 좋구나. 나는 보통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에 연습을 하는데, 아직까지 아무와도 마주친 일이 없다. 마치 내가 전세 낸 기분이다. 왕복 40분의 이동 시간은 좀 아깝긴 하지만, 충주 부대 안의 그 삭막한 강당에 비할 게 아니다. 푹신푹신한 소파도 있고, 상태 양호한(듯 보이는?) 피아노도 있고, 보면대도 놓여있고. 여긴 정말 음악 연습실이야!

이번 주는 선생님 사정으로 레슨이 없다. 다음 주에는 UFG가 시작되는데,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지만 주 ? 야간 교대 근무를 설 가능성이 있어서 레슨 전망은 불투명하다. 뭐 남는 시간에 연습이나 열심히 해야지. 레슨 1 대비 연습량이 10 정도는 되어야 레슨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지루하군…….

2011/08/11 01:23 2011/08/11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