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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난하다’라는 한 마디 말로 정리되어버릴 수도 있는 나의 인생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길이 있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2013/10/28 23:43 2013/10/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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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퇴근 후 아산에 다녀왔다. 밤 10시에 대전에 돌아와, 바이올린 연습을 겨우 두 시간 하고 12시를 넘겨 방에 돌아왔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생활을 해 왔다. 하루 3시간도 채 자지 못 하는 날이 많았고, 덕분에 깨어있는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약간은 취한 듯 멍한 상태에서 보내야 했다. 심지어는 늦잠으로 인해 사무실에 지각하는 매우 드문 사태까지도 벌어졌다. 운동도 3주 째 못 가서 몸이 많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전에 없이 활기에 넘치며 행복감으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규칙한 생활은 이번 주말로 끝나게 될 것 같다. 결국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겠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어쩌면 내가 발을 내딛는 곳은 전혀 새로운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어본다.

2013/05/08 01:41 2013/05/0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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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수면 시간만큼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고뇌였다. 숱한 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낸 끝에 이제 마음을 굳히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하나, 운명이 내 앞에 문을 열어놓을지는 알 수가 없다.

2013/05/07 01:51 2013/05/0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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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것들이 매우 많지만, 지금은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다. 바이올린 연습을 너무 과하게 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연습하는 것은 확실히 동기부여가 된다. 네 시간 가량을 쉬지 않고 연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습 후에는 기진맥진 해버려서 다른 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큰 부작용이 있다.

놀러(겸사겸사 학회에도 참석하러?) 필리핀에 가 있는 오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곳의 날씨는 섭씨 35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오늘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31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6개월간의 겨울이 끝나자마자 6개월간의 여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2013/04/17 02:29 2013/04/1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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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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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 01:43 2013/04/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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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어째서 벌써 4월 7일이란 말인가? 훈련 2주 뛰고 한 주는 야간 근무 후유증으로 어영부영 보내고 다시 한 주는 통역 출장으로 보냈더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러나 정신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공연 등을 챙겨 보러 다녔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감상. 월요일부터 통역 수행. 수요일 오후에는 서울에서 좀 일정이 일찍 끝나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교향악 축제를 보러 갔다. 서울 시향의 연주. 신지아로 개명을 한 신현수가 협연자로 나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김포 공항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는 것으로 통역 업무가 끝나자 그 길로 대전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임동혁과 안디 무지크의 연주를 봤다. 연주회 끝나고 몇몇 연주자들과 가볍게 한 잔. 아침에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 이탈리아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잠깐 한국에 들어온 로마 유학생과 만나 이탈리아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저녁때는 대학로에서 ‘기막힌 스캔들’이라는 연극 한 편을 감상. 모레는 대전 시향의 연주를 들으러 갈 예정.

연습실과 복싱장이 그립다. 내일은 일주일만에 연습과 운동!

2013/04/08 02:38 2013/04/08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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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야간 근무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다. 평소에는 밤에 4시간, 낮에 30분 정도의 수면만 취하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무기력하다. 어제는 도서관에 들렀다가 바이올린 연습실에 간 후 그야말로 기절했다.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서 2시간을 자버렸다. 피부도 난리다. 하루 밤만 새도 얼굴에 뭐가 나는 특이 체질인데, 일주일 동안 야간 근무를 했더니 지금 피부가 난장판이다. 거울 보는 게 무서울 정도. 가라앉히려면 2~3주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도서관, 바이올린 연습, 복싱의 코스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내일은 무려 4주 만에 레슨을 받고, 모레는 3주 만에 논어 수업을 들으러 갈 예정이다. 조만간 영어 일기와 도시락 싸기도 재개하게 될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은 많은 것들을 실행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또 한 번 체득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이 때로 그토록 많은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2013/03/27 01:20 2013/03/2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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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faello, Sposalio (Marriage of the Virgin or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o

Raffaello, Sposalio (Marriage of the Virgin or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o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정식 명칭은 Pinacoteca di Brera)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피렌체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면 밀라노에는 브레라 미술관이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그곳에는 만테냐의 「죽은 예수」 카라바조의 「에마우스에서의 저녁」, 하예츠의 「키스」 같은 놓칠 수 없는 걸작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고대하던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이었다. 이탈리아 땅을 밟은 후, 꿈에라도 보기를 갈망했던 걸작 예술품들을 실제로 보게 될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이 작품을 만날 때는 특히나 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당시 내 나이는 만 스물.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약 500년 전인 1504년 경, 라파엘로가 「성모의 결혼」을 그렸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만 스물 하나. 라파엘로 같은 천재와 나 같은 범인(凡人)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500년 전에 나와 나이가 같았던 사내가 이룩한 업적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는, 과연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 나이에 와 있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그저 잠재워두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스승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그린 두 개의 작품을 참고 해 그린 것이 분명하다. 하나는 마찬가지로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장면을 그린 동명의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주는 예수」다. 이 두 작품, 특히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의 결혼」과 라파엘로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라파엘로가 스승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배경은 거의 똑같고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에도 거의 차이가 없다. 인물들의 배치나 심지어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까지도 유사하다. 어쩌면 라파엘로의 그림은, 스승의 그림을 모방해서 그린 습작(習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Perugino, Marriage of the Virgin 1500-04 Oil on wood, 234 x 185 Musee des Beaux-Arts, Caen

Perugino, Marriage of the Virgin 1500-04 Oil on wood, 234 x 185 Musee des Beaux-Arts, Caen



그러나 한결 자연스러운 원근의 표현, 경직되지 않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지는 인물들, 그림의 스토리 속으로 관객을 빨아들이는 장치의 활용(가령 페루지노의 그림에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나무 막대를 부러뜨리는 사내가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는 전면에 배치, 강조되었다. 이 사내의 움직임이 단조로운 좌우 대칭에 파격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등 여러 면에서 라파엘로는 이미 스승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준다.

라파엘로의 그림과 너무나도 유사한 페루지노의 그림은, 제아무리 라파엘로라도 태어날 때부터 거인은 아니었으며, 그 역시 하나의 난쟁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거인의 어깨, 즉 인류가 축적한 역사의 정점 위에 서는 것이 허락되는 것도 어쩌면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조르조 바사리, 「미술가 평전」)” 라파엘로 같은 천재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덧 내 나이는 라파엘로가 「성모의 결혼」을 그린 나이로부터 멀어져서 그가 죽음을 맞이한 나이(만 37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로의 그림을 바라보며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던 스무 살 적으로부터 지난 6년여의 인생은 대체 무엇을 향해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나아간 시간이었을까? 때때로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그 안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 적은 듯 느껴진다. 이 광대한 세상, 무궁한 역사 속에서 평범하기만 한 한 개인의 인생이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힘껏 발돋움 해 보아도 결국 거인의 발치에서만 머뭇거릴 뿐인가?

그러나 어느 날 사람들이 무심히, 감흥 없이 지나쳐버리고 마는 하나의 미술 작품 앞에 오래도록 가만히 서서, 그 작품을 뚫어져라 응시하였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어쩌면 나의 인생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화가가 낮은 지대를 그리고자 할 때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굽어보지만, 높은 산을 그리고자 할 때는 오히려 낮은 곳에 위치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 하는 높고 먼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나 거인의 발아래 있는 나는 바로 여기에서 높은 곳에 선 자들을 바라본다.

어느 시대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그에 걸맞은 명예를 안겨주고 부당하게 명예를 누리는 자에게서는 오히려 그것을 빼앗는 것은, 자기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니라 그 개성 넘치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모두 관조할 수 있는 관객, 바로 나 같은 역사가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응원하고 또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위대한 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종종 스스로는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그들을 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바로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과 미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나는 나의 소임으로 여긴다.

2013/03/13 15:31 2013/03/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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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딩들과 함께. 내 이름 뒤에만 아무 것도 안 써있네. ‘공군중위’라도 넣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2013/02/22 01:03 2013/02/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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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심 생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주의 수준을 100점이라고 하면, 연주 날까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한 70점정도. 그리고 현재, 이미 도달 가능한 정점은 찍은 것 같다. 이 이상은 기초 실력의 한계가 있어서 연습한다고 나아질 것은 없어 보이고, 다만 과제는 연주 당일 날 내가 준비한 것을 얼마만큼이나 펼쳐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 70점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나마 반드시 70점짜리 연주를 해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연주하다가 갑자기 멈춰버리기라도 하면 그냥 0점이 되고 마는 것.

반복 그리고 또 반복이다. 손끝에 굳은살이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 하게 될 생활의 맛보기라고 생각지만, 가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많이 연습해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보내는 1년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2013/02/19 02:15 2013/02/19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