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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금요일 저녁 때 결국 집에 올라갔다. 밤늦게까지 캐치온에서 틀어주는 별 시답지 않은 공포 영화 한 편을 보고 새벽 5시까지 이탈리아어 작문 숙제를 했다. 한 두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학원에 갔다. 수업 끝나고 학원 사람들과 연세대 모 교수 이야기를 하다가 마키아벨리가 잠깐 거론되었다. 오페라 마니아라는 아저씨, 굳이 내 앞에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을 되짚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어디 가서 알량한 지식을 뽐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어디에나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공부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원래는 오늘, 오랜만에 오군을 만나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었다. 오군이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한 떡 쏘겠다고 했기 때문. 그러나 엄마 생일과 겹쳤기 때문에 일단 다음으로 미뤘다. 생일 기념 점심 식사는 예술의 전당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벨리니’에서 했다. 계산은 내가 했다. 이제 돈을 벌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쓸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써야겠지?

이날, 유희왕이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왔다. 인상주의 미술을 좋아하는 유희왕이 마침 예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을 보러 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엄마 생일 식사 자리가 파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나는 그대로 예당에 남아서 잠깐 커피 한 잔 하며 유희왕을 기다렸다.

전시회는 꽤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림들을 보는 내내 “왜 인상주의는 모네이고, 모네일수밖에 없는가.”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았지만, 미국이 세계 예술의 주요 무대로 성장하기 전, 본류에 해당하는 유럽 미술에 대하여 아류의 위치에 있었던 미국 회화를 만나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우 구혜선의 영혼 없는 목소리 해설은 덤!

지금 예당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전과 고흐의 파리 시대 작품전도 같이 열리고 있다. 둘 다 바티칸이니 고흐니 하는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관중 몰이를 하고 있어서, 주말 예당은 초만원 사례를 빚고 있는데, 가보지 않고도 감히 말하지만 이 두 전시회의 수준이라는 것은 알만하고, 굳이 초등학생들과 함께 대형 그물에 낚인 채 도매 급으로 팔려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관람료도 더 싸고 사람 없어서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인상주의전을 추천한다.

도록이 좀 비싸서 안 산 게 지금은 살짝 후회가 된다. 자세한 리뷰를 쓰려면 도록이 필요한데…….

관람 끝나고 유희왕과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차 한 잔 마신 다음에 헤어졌다.

일요일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잤다.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대전 내려오면서 버스에서 또 잤다. 이제 다시 자야지. 내일부터 다시 촘촘한 일상이 시작된다.

2013/01/28 01:16 2013/01/2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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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집 앞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예술의 전당 주차장까지 딱 30분 걸린다. 30분은, 음악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음미하며 운전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성남 아트센터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예술의 전당이 생활권 내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공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들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주말에도 막히는 일이 없는 171번 국도를 타고 양재로 빠져나오니, 예술의 전당이 금방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인가, 주차 공간도 여유로웠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선선한 바람을 쐬며 걷기도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분수도 구경하다가, 로비에 들어가서는 3,000원을 주고 산 프로그램북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니, 일전에 내가 구한 프로그램 목록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오늘 공연만 하더라도 서곡이 로시니의 곡에서 이인식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라는 알 수 없는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비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교향악 축제인 만큼 여느 때보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은 듯했다. 악기를 짊어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했지만, 이미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서 포기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강좌인 ‘음악 감상’ 강의를 들었다. 그때 강의 과제로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고 감상문을 제출해야했는데, 내가 택한 공연은 힐러리 한과 함께 내한한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다. 그날 연주회에서는 현대 작곡가의 곡이 서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제목은 ‘The Linearity of Light’였다. 후에 과제로 제출한 감상문에서 나는 이 곡의 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은 ‘빛’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따라서 감상의 포인트는 역시 빛이 전달하는 감각을 얼마나 청각 신호로 잘 치환시켰느냐가 될 터였다. 높고 낮은 음정, 빠르게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음렬, 분산 화음 등이 우리의 감각 체계에 전달하는 자극은 분명 빛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만큼 이 곡은 색채감이 풍부하고 빛의 느낌으로 가득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곡이 그러하듯, 한 번 들어서는 곡의 의미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당시 ‘음악 감상’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는 작곡가였다. 나중에 돌려받은 감상문에는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부분에 ‘agree’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청중에게 두 번 이상 들려줄 기회를 거의 갖지 못 하는 것. 그것이 많은 현대 작곡가들이 놓인 처지이다. 음악 감상 교수는, 이런 곡들도 언젠가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한 세기 후의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화적 공백기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옛날 선비들의 꿈과 희망을 재조명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순이 낮은 음으로 집요하게 반복하는 리듬만이 잠시 뇌리에 머물었을 뿐, 이내 이 곡은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난생 처음 듣는 곡에서 감동을 받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곡이든 한 번 듣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곡에 서린 한국적 정서와 작가의 의도를 읽어 낼 새도 없이 곡은 끝나버렸고, 그것을 다시 시도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막스 브루흐. 어쩌면 그는 불행한 작곡가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불행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젊어서 요절하지도 않았고, 슈만처럼 정신병을 앓거나 차이코프스키처럼 남모를 비극을 떠안고 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들보다 훨씬 덜 중요한 작곡가로 여겨진다. 브루흐는 살아서 자신의 한계를 느껴야 했고, 죽어서도 그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는 것이, 브루흐라는 작곡가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브루흐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지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한 곡에 얽매여 있다.

브루흐는 183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죽었다. 무려 90세 가까운 장수를 누린 것이다. 브루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사실상 이 곡이, 그의 작곡가로서의 정점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교향곡, 현악 사중주,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장르의 곡들을 썼지만 당대의 청중들에게도, 후대의 청중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 브루흐는 심지어 바이올린 협주곡도 두 곡이나 더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곡들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듯, 그의 1번 협주곡을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만 쓰고 죽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처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부른다.

클라라 주미 강

힘이 대단했다. 소리는 더 다듬어질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저돌성은 좋으나, 테크닉적으로는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뽐내는 그 존재감을 보니, 스타가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플랫 슈즈를 신고서도 큰 키를 자랑하며 무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남자 이상의 박력으로 바이올린을 때린다. 그 액션 덕분에 솔리스트의 음향이 한층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볼륨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건 협주곡의 어쩔 수 없는 성향인가.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귀에 익은 곡인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반주의 바이올린 곡이라면 거의 들어보지 않은 곡이 없을 텐데. 집에 들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멜로디가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그 규칙적이면서 긴박한 리듬. 음산함을 느끼게 하는 동기……. 무반주 바이올린 곡들을 죄다 재생시켜봤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불현듯 곡목이 생각이 났다. 슈베르트의 ‘마왕.’ 분명 마왕의 멜로디였다. 가곡은 통 듣지를 않으니 잘 기억이 안 날 수밖에.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편곡 버전이 존재한 것도 몰랐다.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쇼스타코비치 5번

TV를 통해서는 자주 접했지만, 직접 연주를 들은 것은 아마 처음일 거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총 출동하여 거의 매일 공연을 하는 만큼, 서로 비교 당하기에도 딱 좋은 자리인지라, 오케스트라가 긴장을 하고 연주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지한 자세로 연주에 임하는 만큼, 나도 진지한 자세로 감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날의 연주회에서 온통 협주곡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주회 당일 저녁까지 메인 곡이 무슨 곡이었는지도 몰랐다.

쇼스타코비치. 생존 당시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곡가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그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의 사후, 친구가 출판한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실은 쇼스타코비치가 자유사상과 예술을 억압하는 사회주의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재기됨에 따라, 그는 일약 자유주의 진영의 스타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사상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냉전 시절 대립하던 양 진영이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그의 교향곡 5번은 그런 논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탕함을 뽐낼 뿐이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7번과 더불어 자주 듣는 곡이지만, 라이브로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3악장 라르고를 이렇게 주의 깊게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금관이 배제된 채, 현과 목관에 의해서만 연주되는 선율들은, 마치 폭발을 예비하는 억눌린 내면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악장 말미에, 곧 숨이 끊어질 듯 겨우 이어지는 현의 소리는 악장을 차분히 정리하고 종결짓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최대로 고조시킨다. 이윽고 그 긴장은 4악장의 힘찬 팡파르와 함께 해결된다.

앙코르

문경새재로 막을 올린 연주회는 아리랑으로 끝을 맺었다. 진정한 아리랑은, 70대 할머니가 탁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아리랑이다. 그 정서는 결코 수학적으로 계산된 음계와 리듬으로 연주되는 아리랑 속에 담길 수 없다.

2011/04/11 23:48 2011/04/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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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의 번잡함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이 엷어지더니, 이제는 가끔 그것을 그리워하게까지 되어버렸다. 화려한 불빛, 시끄러운 소음,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납작이 붙어 달리며 검은 매연을 토해내는 자동차들, 도시의 그림자를 형성하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저 높은 곳에 별 대신 빛나는 것은 불 켜진 창(窓) 하나.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내가 도시에 마음이 이끌리고 마는 것은 겉모습이 때문이 아니야. 한 꺼풀 벗겨놓고 보고 싶은 것이다. 손을 넣었을 때 뜨겁다고 해서 반드시 끓고 있는 것은 아니지. 도시의 공허함, 뜨겁지만 결코 끓어오르지 않는 이 도시의,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1도’의 부재를, 나는 애달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에 굶주려 있는 걸까.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내게서 존경심을 기대한다. 내가 그에 대해 고개 숙이고 경탄하며 그의 일과 그의 능력과 그의 열정을 존경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 나름의 위치에서 존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천성이 무언가에 들뜨는 것과 거리가 먼 나는 제아무리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그 열정의 이면에 숨겨진 권태로움, 지루함, 평범함 그리고 인간적인 약점들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토해내는 열변은 무대 위의 대사처럼 지리멸렬하고, 그 과장된 몸짓들은 한낱 그림자 연극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무심하게 바라보아 왔다. 그리고 항상 깨닫게 된다. 더없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 대해 품는 지독한 경멸의 절반쯤은 항상 나를 향해있다. 타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숨 막히는 권태로움과 평범함이 실은 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때로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안 생겼다>


프로그램

J.S. Bach : Partita No.3 in E Major, BWV 1006

L.V. Beethoven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5 in F Major, Op.24 <Spring>

D. Shostakovich : Five Pieces for Two Violins and Piano

J. Brahms : 3rd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d minor, Op. 108


지난 일요일, 연주회를 보러 갔다. 오랜만의 연주회. 보통 솔리스트의 리사이틀은 잘 보러가지 않지만, 근래에는 괜찮은 오케스트라 공연이 없었고, 간혹 있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아 보러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통역 업무의 스트레스로부터 간신히 해방된 주말, 나는 녹았다 굳은 캐러멜처럼 침대나 소파 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연주회 당일인 일요일 오후까지도 나는 달콤한 무기력함에 젖어 표를 예매할 생각도 않았다. 그러나 리사이틀의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고, 결국 공연 시작 6시간 전에 표를 예매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식당에서 바로 예술의 전당을 향해 출발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하우스가 모두 휴관이었던 예술의 전당에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도 사람 없는 공연장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공연 시작 40분 정도를 남기고 로비로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 한 조각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커피숍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리사이틀 홀 앞에는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늘 이런 무명 연주자의 독주회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었다. 연주자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일까? 저마다 인사 건네고 담소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직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홀로 연주회장을 찾은 나는,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유일하게 문을 연 가게인 앨범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괜히 힐러리 한의 신보를 한 장 샀다. 히그던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녹음된 앨범이었다.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해석의 연주로 대단한 실망감과 그 이상의 의아함을 안고 공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과연 힐러리 한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앨범에 담은 해석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연주 시작 10분 전에 리사이틀 홀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을 들어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혹 유명 연주자들의 리사이틀을 보긴 했지만, 명성 있는 연주자들은 리사이틀이라 해도 객석이 몇 안 되는 리사이틀 홀이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다. 그 거대한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지 못 하는 솔로 악기의 소리가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 아담한 리사이틀 홀을 가득 채울 솔리스트의 연주가 기대되기도 했다.

연주자가 등장했다. 첫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3번. 무반주의 솔로곡이다. 첫 악장 프렐류드는, 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동경하고 목표로 삼았던 곡. 이 곡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주는 처참했다. 내 생애, 프로의 연주로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인 연주는 처음 들었다. 첫 마디부터 불안한 음정에,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고, 홀의 음향을 의심했고, 악기의 조율 상태를 의심했다. 불안한 음정은 연주가 계속 되면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추어처럼 먼저 소리를 내고 음정을 찾아가면 어쩌잔 말인가? 성부간 밸런스가 전혀 잡히지 않은 것은 곡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기본 기량의 부족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흐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마치 연주회 2~3일 전에 처음 악보 펼치고 대충 읽은 다음 무대에 올라온 느낌이랄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구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곡을 고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프렐류드만 두고 말할 것 같으면, 내게 한 달의 시간만 준다면 이 날 이 연주자의 연주보다 더 잘 연주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연주회는 망쳤다. 뒤이어 연주된 베토벤이나 쇼스타코비치, 브람스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 연주들의 수준도 하나 같이 엉망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연주 때는 웬 고등학생 제자 한 명을 데리고 나왔는데, 잔뜩 얼어붙은 어린 학생을 옆에 세워 놓으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연주자 자신은 신나게 연주를 했지만, 덕분에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은 학생의 소리는 완전히 묻혀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브람스 연주 때는 반주자와의 호흡마저 불안 해 보였다. 특히 리듬의 매력을 살리는 3악장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4악장에서는 활 털이 두 가닥이나 끊어져나가서 비주얼 적으로는 격정을 잘 표현했지만, 그뿐이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나는 하마터면 옆에 앉은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을 할 뻔했다. 혹시 연주자와 친분이 있어서 오셨냐고. 나는 연주를 들으러 왔지만, 이렇게 처참한 연주회는 처음이라고…….

이날 연주만 놓고 본다면, 나는 이 연주자가 재학 시절에 오케스트라 수석까지 맡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수석을 얼굴로 뽑지 않는 한에야 말이다. 그러나 만일 이 연주자가 그래도 기본 기량은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날 연주회에 대한 준비가 소홀, 아니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건 감히 티켓을 판매한 연주자에게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박수를 쳐댔던 관객들은 음악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보통은 연주회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객들이, 이날은 로비에 모여 사교의 장을 열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서 탤런트도 두 사람이나 발견했다. 중견 연기자 이정길과 박상원. 이들도 오늘 연주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가?

옷 잘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장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시시덕거리는 소위 상류층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용하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사교의 장이라도 그 핵심이 되는 연주회가 정작 이 꼴이어서는 이 모든 모습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멋졌어요.’ 홀을 빠져나오면서도 몇 번은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데, 정말 엉망이었어요.’

2011/02/22 02:15 2011/02/2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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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화와 함께하는 가족음악축제

오래되어서 이미 리뷰를 쓰는 의미는 퇴색되어버렸지만, 일단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쓴다.

8월. 덥거나 비 내리거나. 아니 숨 막힐 듯 더우면서 항상 비는 내리고 있었다. 새해 벽두를 강타한 전국 대폭설부터 시작해서 유난히 기상 변덕이 심한 올해. 지긋지긋한 장맛비와 뜨거운 공기에 만물이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가까워서야 퇴근을 하는 버거운 교육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지칠 뿐인 8월, 위안거리가 되어준 것이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가족음악축제. 8월 한 달 동안 매주 주말마다 오케스트라 공연 하나씩을 무대에 올렸는데, 전석 1만 5천원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주중에는 수면도 제대로 못 취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지만, 주말이면 모든 것을 잊고 연주회장을 찾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물론 연주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인 유정아라는 사람이 서곡 연주가 끝나면 등장해서 당일 프로그램에 대해 약간의 해설을 했는데,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는 내용 이상의 것을 언급한 게 거의 없다. 그럴 거라면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켜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해설 중에는 무대 뒤편에 빔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워놓았는데, 작곡가 생몰 연대 등이 엉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가령 베토벤의 사망 시기를 1820년으로 적어 놓는다든가, 베버의 경우에는 전혀 엉뚱한 연대를 적어 놓기도 했다(아마 막스 브루흐와 혼동을 한 것 같았는데). 연주와는 무관하지만 이런 실수 하나하나가 전반적인 연주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연주 시작 전, 해당 곡의 작곡가 생몰 연대부터 틀려버리는데, 대체 관객에게 어떤 진지한 감상의 자세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1. 8월 8일 충남교향악단

지휘/구모영 바이올린/유시연

모차르트-오페라 <코지 판 투테> 서곡

브루흐-바이올린 협주곡 1번

베토벤-교향곡 8번

지휘자 구모영. 내가 유포니아에서 첫 연주회를 섰을 때 지휘를 맡아주었던 분이다. 시종 진지하고, 연습 중에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 일본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 그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연습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당시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서는 훨씬 부드럽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연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보니, 이 지휘자 선생님이 그리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지한 만큼 꼼꼼했다. 전체 연습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학교로 찾아와 파트 연습을 지도해 주는 등, 그 성실함이 돋보였다.

연주회는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으로 발랄하게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훈련 중 특별외박 나와 본 연주회 이후 약 석 달 만의 연주회라, 단지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는 자체만으로 황홀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중에 ‘딱 한 곡만 유명한 작곡가’란 주제로 글이라도 써 보면 어떨까 싶은데, 실현된다면 브루흐를 그 안에 넣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 사실 브루흐라면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나 콜 니드라이 같은 유명한 곡들이 있지만, 널리 알려지고 연주되는 그의 대표작이라면 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꼽을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3악장만의 선율만이 너무 유명하고, 콜 니드라이는 아무래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기에는 지명도가 약하다. 그러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만큼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상당히 자주 연주되는 만큼, 바이올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 접하게 되는 음악이다.

1악장은 상당히 장중하면서도 바이올린의 매우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구성이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예견케 하는 다소 민요적인 느낌의 선율이 간간히 들려오는 아름다운 2악장. 그리고 절로 어깨들 들썩이게 만드는 신나는 3악장. 이제 와서 연주가 어땠는지 논하는 게 의미가 없겠지만, 약간 거친 면은 있어도 흡족한 연주로 기억한다.

이 날의 메인 곡은 베토벤 8번이었다. 6번과 같은 F major로 작곡된 곡. 6번에 비해 길이가 짧다는 의미인지, 베토벤은 친히 “My little Symphony in F”라고 언급한 바 있다. 모차르트 풍의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한 마디로 유쾌한 음악의 베토벤 판이라고나 할까, 심각하지 않고 흥겨우면서 베토벤다운 강렬한 리듬과 힘이 깃들어있는 음악이다. 비록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5번, 6번, 7번 다음 9번으로 이어지고 말지만…….

앙코르 곡은 따로 준비되지 않았다. 대신 8번의 4악장 일부를 다시 연주했는데, 다시 들려줘도 좋을 만큼 준비가 잘 됐다는 뜻일까. 구모영의 지휘는 상당히 깔끔했고, 오케스트라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2. 8월 14일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최수열 피아노/박수진

베버-오베론 서곡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4번

시벨리우스-교향곡 2번

가족음악축제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 연주로 클래식에 대한 흥미 유발”을 기치로 내걸고 있었는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일까?

연주회에 집중하기에는 나는 격무로 너무 지쳐있었고,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결국 연주회에서 졸아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 오베론 서곡부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까지는 거의 제대로 듣지를 못 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도 집중해서 듣다가 간간히 정신이 다른 차원의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연주회장의 분위기도 안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이라 예술의 전당에는 주차할 공간조차 부족했고, 연주회장 안에는 초등학생들이 넘쳐났다. 세상을 온통 자기중심적으로 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어린 녀석들. 연주회장에서 버젓이 휴대전화를 꺼내놓고 만지작거린다. 그 불빛은 정말 거슬린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놓는 것이 싫증이 나면 연주를 조금 듣는 척하다 이내 잠들어버린다. 자는 것에 관한 한, 이날만큼은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4악장이 연주될 때만큼은, 이 하나로 초점이 모아지지 않던 부사한 객석에도 순간 통일된 평화의 순간이 찾아오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지적 감수성의 수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뿌리는 그 감동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놀라운 집중의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었지만.

3. 8월 22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이종진 첼로/홍성은

코다이-갈란타 무곡

드보르작-첼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심포닉 댄스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코다이라는 작곡가 자체가 일반에는 생소한데, 좀 규모가 있는 음반 가게를 가더라도 코다의 녹음으로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바르톡과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지만, 사실 작곡가로서보다는 음악 교육자로서 더 유명했고,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상 모든 첼로 협주곡들 중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곡. 그러나 연주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라흐마니노프. 생각해보면 그는 상당한 대작곡가였다. 장기인 피아노 협주곡 분야에서 걸작 2번과 3번을 비롯하여 네 개의 작품을 남기고 있고, 교향곡도 세 곡이나 썼다. 심포닉 댄스는 교향곡 3번 이후에 작곡된, 그의 마지막 교향악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향 받아 독특한 리듬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 한 것 같다. 뭔가 쿵쾅거리다가도 항상 음악 같은 음악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게 라흐마니노프다운 것이지만.

편성에 알토 색소폰이 있어서,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색소폰이 연주되는 색다른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이상 음악축제 기간에 열린 여섯 번의 공연 중 세 번의 공연을 관람했다. 저렴한 가격에, 기분 전환하기에는 적절한 기회였다.

2010/09/19 00:06 2010/09/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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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대중의 환호와 갈채로? 선배 세대의 거창한 찬사를 받아서? 언론과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기획사들의 홍보 전략에 힘입어서? 대가라 칭해지는 이들은 무엇이 다른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에 환호하는가?

내가 궁극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예술적 감수성의 경지는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현혹되지 않고, 언론과 비평가들의 그럴듯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어떤 정통성과 권위보다도 나의 눈과 나의 귀에 의지하고 나의 지성으로 판단하여 진정한 미(美)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남들이 마련 해 놓은 해석과 비평을 취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미리 설명 해 놓은 대로 감정까지 느끼는, 편의적이고 양식화된 행위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이해하고 느낀 것이 아니면 나의 감정으로 인정할 수가 없고, 그런 기만적인 감정의 모사품들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취미 생활로 인정 할 수도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론이다. 무감동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의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 한 채 다만 과정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쉽지 않은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끊임없이 창작을 거듭해온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이며, 사실상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은 현란한 수사어로 장식된 예술가의 이름에 있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쏟아 부은 티켓 값에 있지 않으며, 애써 상상으로 그린 하룻밤의 낭만 속에 있지 않다. 더욱이 내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 한 바를 꾸며 쓰느라 애처롭게 늘어져버린 감상문 속에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즐거움이 있다면, 겸허하게 나의 무지를 인정하여 내가 모르는 무한히 넓은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해보고자 기울이는 서툴지만 진지한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결실로 선사한다. 주의 깊고 세심한 관찰은 피곤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건져 내준다.

첼리스트 장한나. 그녀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찬사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풀려졌다거나 칭찬 일색인 리뷰가 못 마땅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위대함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위대함을 직접 느끼고 싶을 뿐이다. 이때에, 프로그램 북에 인용된 노(老) 대가들의 거창한 칭찬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미리 계획했던 기립박수를 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무엇에게 그토록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환호해야 할까?

토요일 저녁, 지난 성남시향 연주회 때의 악몽을 되살리기 싫어서, 이번에는 양재역을 거쳐 남부터미널역으로 간 다음 버스를 타는 길을 택했다. 연주회 시작 30분전쯤 콘서트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1,000원짜리 프로그램 북과 함께 장한나의 리코딩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한 장에 14,000원이었는데, 프로그램 북과 함께 구입하면 포스터를 증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상술에 잘 넘어가주는 편이다. 그러나 판매중인 CD는 대중들의 입맛을 고려했는지 소품집이거나 유명 첼로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들만 모아놓은 것으로 별로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CD와 증정용 포스터는 포기하고, 프로그램 북만 하나 달랑 구입하여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1층 C블록 11열 5번. 무대와 너무 가깝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합창석 자리에도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과연 장한나란 이름이 갖는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저녁 8시.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대 쪽 천정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단상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왼쪽의 연주자 출입구가 열리고, 오늘의 주인공 첼리스트 장한나와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가 등장했다(물론 반주자의 악보를 넘겨줄 넘순이도 함께).

장한나는, 벌써 기억이 모호하지만 짙은 회색 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고 나온 첼로는 각봉이 끝까지 뽑혀 있었는데, 그 길이가 장한나의 키와 비슷해 보였다. 키는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단단해 보였다. 한편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는 매우 늘씬한 미남이었다.

연주회 첫 곡은 슈만의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Adagio and Allegro for Piano and Horn Ab Major, Op.70이었다. 이 곡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본래 피아노와 호른의 듀오로 연주되는 곡이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호른 부분을 다른 악기가 맡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소 슈만의 곡들과 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군다나 호른 레퍼토리라니, 존재조차 몰랐던 곡이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프로그램에는 이 곡이 빠져있어서, 미리 예습 할 기회도 없었다.

연주회장에서 처음 만나는 곡이 신선한 즐거움으로만 다가오면 좋겠지만, 내 경우엔 사실 잘 모르는 곡의 선율은 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망각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곡을 들으면서 뒷부분을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곡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종종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도 곡을 들으면서 문득 든 매우 즉각적인 생각은, “이걸 호른더러 불라고 작곡했단 거야?”란 것이었다. 물론 난 호른을 불어 본 경험은 없다. 하마터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라 호른 연주자로 들어갈 뻔했지만, 아무튼 그 운명은 나를 빗겨갔다. 그래도 호른이 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첼로로 연주하는 것이 테크닉을 구사하기에는 호른보다 훨씬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알레그로 부분에서는 스트로크로 강렬하게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과연 호른으로도 이런 강렬함이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호른 레퍼토리는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세브란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호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러 간 일이 있었는데, 호른은 독주 악기로 쓰이기에는 좀 밋밋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마추어의 연주에다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으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슈만의 곡이 서곡 역할을 해주어,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정리되고 연주에 집중할 자세가 갖추어졌다. 연주회장에 늦게 도착하여 미처 입장하지 못 했던 사람들도 첫 곡이 끝난 틈에 들어와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 어제는 분당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벌써 가을은 저만치 물러가고 있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향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은 애수로 가득 차 있다. 3개의 악장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어 있어서 한층 쓸쓸한 정취를 풍기는 것 같다. 첼로는 낮은 음역에서 때로는 읊조리는 듯이, 때로는 애달프게 노래하는 듯이 자기 목소리로 감정을 담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첼로 소나타 1번의 1악장은 브람스의 여러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첼로가 노래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위법적인 진행은 참 아름답다.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솔로 악기와 피아노로 구성된 듀오 소나타는 편성이 단출해서인지 비교적 음악의 짜임을 파악하는 것이 쉽다.

이날 첼로의 음색과 피아노의 음색이 잘 어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피아노의 소리가 조금 먹먹했다. 첼로가 단호하게 베는 듯한 소리를 들려주니까 피아노도 좀 더 단단한 소리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 뭉글했다. 연주자의 터치가 그런 소리를 낸 것 같지는 않고, 피아노 자체의 소리가 좀 멍한 편이었던 같다. 대위법을 잘 구사한 브람스고, 3악장은 아예 푸가로 작곡되었으니까 첼로가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모방하고, 또 피아노가 선율을 연주하면 첼로가 뒤따라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만큼 두 악기의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나타 1번의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인터미션 시간이면 으레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해놓고 프로그램 북이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날은 이미 카페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냥 자판기 커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는 리사이틀 홀 출입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출입구 앞에 놓인 프로그램 북을 슬쩍 보니까 이날 같은 시각 리사이틀 홀에서는 첼로 독주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각 9시쯤 2부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한나는 정열적인 붉은색의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 첼로 소나타 1번과는 2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작곡된 곡. 그만큼 원숙미가 돋보인다고 해야 할까. 브람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도, 1번 때와는 그 표현의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3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악장이 모두 장조로 작곡되어 있는 만큼 곡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도 애수가 간직되어 있다.

“연주를 하는 도중 실수로 악보가 두 장 넘어갔을 때, 연주를 멈추어야 한다면 좋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졸탄 코다이의 말이다. 이날 장한나는 전곡을 암보로 연주했지만, 피닌 콜린즈는 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다. 물론 악보를 넘겨주는 넘순이가 있었다. 넘순이는 악보를 넘기기 전, 악보를 위에서 아래로 거의 반쯤 내려 접어 연주자가 악보의 마지막 줄까지 다 볼 수 있도록 배려 한 다음 연주자의 신호를 받아 악보를 넘긴다. 그런데 1악장 연주 중의 일이었다. 넘순이가 넘기려고 접었던 악보를 놓치는 바람에, 황급히 악보를 다시 잡아서 넘기느라 그만 두 장을 넘겨버렸다. 연주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피닌 콜린즈는 좋은 연주자였다. 연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1악장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2악장 첼로의 피치카토는 가슴을 쳤다. 이 곡의 2악장은 결코 유약하지 않다. 장한나의 피치카토 연주는 그야말로 박력이 넘쳤다. 현을 뜯으면서 악기를 그토록 풍부하게 울릴 수 있다니, 놀랍다. 그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2악장이 끝나자 또다시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대체 이 사람들이 연주 중에는 어떻게 기침을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신 기침을 해대다가도 장한나가 활을 들어 올리면 신기하게도 기침을 멈춘다. 실황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악장과 악장 사이에 기침은 세계 공통인 듯도 하지만, 때로는 이 기침 소리가 악장 사이의 눈치 없는 박수 소리보다도 더 거슬린다. 3악장은 피아노의 연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한나에게만 집중을 하며,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덕분에 미처 기침을 멈추지 못 한 여러 사람 숨넘어갔다.

장한나는 액션이 큰 연주자다. 표정도 다양하다. 그만큼 음악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또한 장한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두터운 소리를 요구하는 브람스의 음악도 무리 없이 잘 연주 해 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별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떠드는 짓은 삼가도록 하자. 새삼 그녀의 열정이나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몇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2부 프로그램이 조금 짧았기 때문에, 몇 곡의 앙코르 곡을 예상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열광 속에 무려 다섯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연주된 곡은 차례로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뒝벌?)의 비행’,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 구노의 ‘아베마리아’,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였다.

장한나의 첼로 스승 미샤 마이스키가 내한 중이라고 한다. 먼저 첼로 독주회를 열었고, 며칠 후에는 하이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한나는 스승님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게 되어 기쁘다며 구노의 ‘아베마리아’ 연주를 스승님께 바치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이면 구노의 ‘아베마리아’인지 모르겠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앙코르 곡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서, 막바지에는 홀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조’의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퇴장한 후 출입문이 닫혔는데도 사람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실내의 조명이 환하게 밝히자 그제야 사람들은 퇴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가 발산된 듯한 후련한 마음으로 콘서트홀을 빠져나왔다. 예술의 전당 정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첫 번째 버스를 보내고, 두 번째 버스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강남역까지 가서, 분당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외투 주머니에는 mp3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지만, 이 날은 귀갓길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애써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첼로의 선율이 흘렀다. 11시를 훌쩍 넘겨 분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러나 이제 저물어버린 가을에 더 이상 미련은 남지 않는다.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09/11/23 17:06 2009/11/23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