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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위대한 작곡가의 시대가 있었다. 흡사 신들로부터 창조의 임무를 일부 나누어 받은 것처럼, 그들은 이 세상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켰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위대한 지휘자들의 시대가 왔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 했지만, 해석의 지평을 무한히 확대해 나가는 과업을 수행하며 대중을 신들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위대한 지휘자들의 시대가 저물고 위대한 연주자들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성화(聖畵)의 알록달록한 색채처럼 저마다의 개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윽고 위대한 연주자들의 시대도 지나갔다.

그러자 최후에 미녀 연주자들의 시대가 왔다. 그들은, 아무튼 예쁘다.



무라지 카오리(村治佳織) Plays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of 류이치 사카모토


무라지 카오리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녀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다. 신주쿠 타워 레코드의 클래식 앨범 매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무라지 카오리의 리코딩만을 따로 모아두고 있는 것을 본 일도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동양의 어떤 나라보다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접해온 역사가 긴 만큼, 지금까지 훌륭한 음악가들도 많이 배출했는데, 클래식 기타의 영역에서도 그러했다. 무라지 카오리는 그 계보를 잇는 훌륭한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사랑과 숭앙을 받는 스타다. 사람들은 훌륭한 기타리스트를 좋아하지만, 예쁜 기타리스트는 사랑한다.

이 날은 내가 집에서부터 직접 운전을 해서 예술의 전당까지 갔다. 내비게이션의 스피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차선 변경해서 진입하거나 진출해야 할 것을 몇 개 놓쳐서 터무니없이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보다는 이동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콘서트홀로 갔다.

연주 시작 30분 전, 로비는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관객들에게서 느껴지는 열의가 어제 저녁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때 못지않았다. 인터넷으로 예매해 둔 티켓을 먼저 찾고, 프로그램 북 판매대 앞으로 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무라지 카오리의 리코딩 두 종을 진열해놓고 함께 팔고 있었다. 또 오늘 특별 게스트로 함께 무대에 오르는 용재 오닐의 리코딩도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북과 CD를 함께 사면 포스터를 증정하는, 어제와 같은 이벤트는 없었다.

3,000원짜리 프로그램 북은 화보 같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족족 무라지 카오리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무라지 카오리에 대한 갖은 찬사를 읽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뛰어난 기타리스트라 믿고 의심치 않으리라.

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1층 C블록 9열 4번. 무대에서 그리 멀지 않고,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이다. 정각 8시를 조금 넘겨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은 암전이 되었다. 이윽고 무라지 카오리가 여신의 풍모를 뽐내며 입장하였다. 채도가 낮은 살구빛의 집시 풍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팔꿈치부터 팔목까지는 연주 시에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통이 없게 조였고, 팔꿈치 위로는 통이 넓었다. 의자에 앉아, 발 받침대에 한쪽 발을 올리고 기타를 허벅지 위에 올려 고정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날의 레퍼토리는 류이치 사카모토나 레너드 번스타인 등 현대 작곡가들이 작곡한 대중적인 곡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했다. 첫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거나 해서 제법 잘 알려진 곡이다.

내 경우, 기타는 고등학교 때 음악 수업 실기 평가로 잠깐 쳐본 것 외에는 전혀 이 악기를 다룬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타 연주의 테크닉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그러니 무라지 카오리의 연주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긴 것만큼 아름답게 연주하더라(사실 이게 이 날 공연을 관람한 상당수 관객들의 솔직한 평이었다)’라고 하고 넘어가버리기에는, 내가 까다로운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솔직한 감상은, 기타의 음량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연주자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앉은 나도 음량이 작다고 느끼는데, 대체 이 소리가 2층 저 구석에 앉은 청중에게까지 잘 전달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큰 음량을 갖는 바이올린에 너무 익숙해져서 상대적으로 기타의 섬세한 다이내믹 변화에 둔감해져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큰 홀에서 들을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조금 건너뛰게 되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이 날 연주회 때 연주된 곡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을 사서 집에 와 들었는데, 같은 곡이지만 오히려 실황보다 훨씬 곡이 맛깔스럽게 들렸다. 라이브에 미숙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기타라는 악기는 콘서트 홀 같은 큰 홀에서 독주를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소리가 훨씬 잘 모이는 작고 아담한 홀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주를 하면 기타의 매력을 훨씬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공연 전반부에만 다섯 작곡가의 여섯 곡을 연주했다. 그 중 두 곡은 각각 세 곡과 네 곡을 묶은 모음곡이었다. 화려한 기교를 선보인 ‘헝가리 환상곡’의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전반부 공연이 너무 다양한 레퍼토리로 조금 정신이 없었다면,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2부 공연은 단 두 개의 대곡(大曲)을 연주 해 자못 진중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무라지 카오리 역시 2부 때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흡사 남성 연주자처럼 상하로 깔끔한 정장을 입었는데, 특이하게 오른쪽 다리에만 붉은 색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섞인 듯 야누스 적인 매력을 뽐내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연주하기에는 편한 복장이었을지 모르겠지만.

2부 첫 곡은 바흐의 샤콘느의 기타 편곡 버전. 본래 지난(至難)한 바이올린 곡이다. 같은 현악기군에 속하지만,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인 바이올린과 현을 손으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인 기타는 여러 면에서 성격이 대조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라면, 바이올린은 중음(重音)을 연주할 때 구조상 분산화음으로 연주할 수밖에 없지만, 기타는 한 번에 여러 현을 동시에 튕겨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샤콘느에는 워낙에 화음 연주가 많아서, 이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와 기타 연주의 차이가 더 도드라진다. 또 한 가지 바이올린과 기타의 중요한 차이점은, 원하는 만큼 활을 배분하여 한 음을 얼마든지 길게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에 비해 단 한 차례 현을 튕기는 행위로 소리를 내는 기타는 한 음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타로 연주된 샤콘느는 전체적으로 비애감과 장중함이 넘치기보다는 영롱한 화음 연주, 통통 튀는 스케일 연주로 인해 매우 투명하고 간결하였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아르페지오네’는 이 날 연주회의 제목이기도 한 만큼, 메인 곡에 해당하는 곡이었다. 본래 ‘아르페지오네’는 악기의 이름이다. 이 악기는 첼로와 기타를 섞어놓은 것 같이 생겼는데, 현이 6개 달려있고 조율은 기타와 마찬가지로 ‘미, 라, 레, 솔, 시, 미’로 한다. 그리고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낸다. 외형상의 특징 때문에 비올라 다 감바의 후손쯤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악기는 1820년대에 만들어졌으니까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난 뒤로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 탄생한 악기이다. 이 악기는 사람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고, 처음 제작된 지 10년쯤 지나서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인기 없는 악기를 위해 소나타를 작곡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슈베르트다. 물론 자발적으로 쓴 게 아니라, 의뢰를 받아서 작곡한 것이다. 그 시대에도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 해 보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르페지오네를 곧잘 연주했던 어떤 귀족의 의뢰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귀족 이후로 아르페지오네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이 소나타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 했는데, 20세기 들어서 아르페지오네가 아닌 첼로나 비올라로 활발히 연주되고 있다. 오늘은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어 무라지 카오리와 함께 이 곡을 연주했다. 아무래도 비올라와 함께 연주하면 기타의 소리가 묻힐 거라 여겼는지, 무대 위에 마이크를 설치했다.

용재 오닐은 이 곡을 앨범에 실었을 정도라니까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간간히 무라지 카오리 쪽을 쳐다보며 앙상블을 맞추려고도 했다. 한편 무라지 카오리는 보다 악보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연주회 끝난 후 무라지 카오리가 한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연주회 바로 전날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래도 연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먼저 무라지 카오리가 앙코르 곡을 한 곡 연주하고, 오늘 연주회 소감을 간략히 밝혔다. ‘안녕하세요’란 첫 인사는 한국어로 준비했고,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말을 했는데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는 않았다. 대충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즐겁다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스페셜 게스트 용재 오닐과 함께 한 소감을 말했는데, 연주회 전날에야 처음으로 만났고 그 전에는 커피 광고에서만 봤었다고 했다. 한편 무라지 카오리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용재 오닐은, 쑥스러움 타는 것인지 쭈뼛쭈뼛하여 별 말을 못 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함께 앙코르 곡을 연주했고, 이렇게 이 날의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연주회 끝난 후 두 사람이 로비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내가 로비에 나왔을 때는 이미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무라지 카오리의 앨범 두 장을 사서 줄에 합류했다. 두 장의 앨범 중 하나의 앨범에는 이날 연주된 곡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앨범 홍보에는 더없이 훌륭한 연주회가 되었을 것이다.

사인은 원칙적으로 1인 1매. 그러나 기껏 앨범을 두 장이나 샀는데, 한 장에만 사인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원래는 예당 측 직원을 통해서 사인 받을 종이를 건네주지만, 한 장은 그렇게 해서 받고, 나머지 한 장은 무라지 카오리 앞에 직접 내밀었다. 일본어 배워서 어따 쓰겠어. 사인 해 달라니까 친절하게 사인 해 주었다. 그런데 그만 사인 받은 종이 두 장을 겹치는 바람에 밑에 깔린 사인 하나가 번졌어. 용재 오닐의 사인은 그냥 프로그램 북의 용재 오닐 사진 위에다가 받았다.

사인 CD를 챙겨 들고 콘서트홀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고,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오늘 첫 곡으로 연주되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밤의 도로는 한산했다.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달렸다.

2009/11/26 05:27 2009/11/26 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