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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대 마트에 들러 빵과 우유를 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허기부터 달랬다. 어제 체력검정으로 땀범벅이 된 몸을 씻지도 못 한 채 근무를 섰다.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정신이 몽롱하다. 그대로 침대 위로 몸을 던져 잠들었다.

깨어보니 오후 3시. 무슨 바람인지 시장 구경이 하고 싶어졌다. 바이올린 레슨 받으러 가는 길에 늘 재래시장 입구를 지나쳤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일이 없다. 앞으로 내가 충주에 얼마나 더 머물지도 알 수 없는 일. 마음이 생겼을 때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늘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그 입구 안으로 들어가 보는 일을 말이다.

시장 입구 근처에 무료로 개방된 공용 주차장이 있어 차를 댔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었다. 차를 타고 지나칠 때에는 그냥 조그만 먹자골목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골목은 생각보다 깊었고, 여러 갈래로 샛길이 나 있어서 그 샛길을 빠져나갈 때마다 새로운 시장 골목이 나타났다. 입구 안쪽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시장은 한산했다. 상인들도 별로 장사할 의지가 없는지 자기 가게는 비워두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괜히 물건을 정리하거나 아예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옆구리 커다란 카메라를 끼고 있는, 누가 보더라도 관광객 티가 나는 나를 시선으로 쫓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물건을 사줄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쌉싸래한 냄새가 풍기는 약초 가게 앞에는 나무껍질이며 뿌리며 버섯, 녹각(鹿角) 같은 약재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 기름 짜는 방앗간 앞에서는 고소한 깨 냄새. 어름판 위의 오징어가 싱싱해 보이는 어시장에서는 생선 비린내. 시장 안은 온갖 냄새들로 가득했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허기가 졌다. 마침 순대 골목으로 들어섰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국밥 한 그릇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저것 다 넣어드려?”하기에, “예 이것저것 다 넣어주세요.”했다. 그랬더니 정말 뭐가 뭔지도 모를 것들이 산처럼 수북이 쌓인 순대 국밥 한 그릇 내어준다. 다데기와 파를 잔뜩 푸니, 국물이 얼큰하다. 냉장고에서 꺼내준 물통은 가만 보니까 원래 우유를 담는 페트병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르스름한 차는 시원하고 고소하다. 소주병 수거하는 아저씨가 지나가니 아주머니가 불러 세운다. 몇 개 안 되는 소주병을 내어주며 투덜거린다. “토요일인데 손님 쥐뿔도 없어.” 앞에 혼자 앉아서 국밥 먹고 있는 손님 머쓱하다. 그래도 간혹 한 두 사람 지나가며 순대를 포장 해 간다. 1인분을 사든 2인분을 사든, 어째 봉투 가득 담아주는 건 비슷해 보인다. 우거짓국 한 바가지는 서비스인가 보다. 국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배때기가 찢어질 것 같다. 계산을 하고 다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마치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떤 가게에는 20년 전쯤 김혜수가 찍은 듯한 광고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있기도 했다. 시장의 옷들은 어느 것이나 하늘하늘한 원단에, 색은 선명한 원색이고 꼭 화려한 꽃무늬나 땡땡이 무늬가 들어가 있다. 이건 ‘파리양행’이나 ‘희정패션’이나 마찬가지다. ‘상회’니 ‘상사’니 하는, 예스러운 이름의 가게들도 많았다. 도대체 뭘 파나 싶었지만, 대중이 없었다. 어떤 가게는 과일을 팔고, 어떤 가게는 곡식을 팔고, 어떤 가게는 잡화를 팔았다. 한여름 시장 골목에 햇빛을 가려줄 천막을 파는 천막사, 저울만 파는 저울가게, 냄비만 파는 그릇가게 등 뭐 이런 걸로 장사가 될까 싶은 가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게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그 어떤 대형 슈퍼마켓보다도 더 다양한 상품들의 집합소가 된다.

재래시장(在來市場). 우리는 이런 시장을 재래시장이라고 부른다. 재래(在來)란 말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걸 새삼스럽게 이름 지어 부르는 게 이상하다. 나중에 생긴 시장은 뭐라고 부르나? 아니, 백화점이나 슈퍼마켓도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나? 허연 냉기를 풍풍 내뿜는 냉장 진열대에 깨끗이 정돈된 야채들을,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 그저 한 아름씩 묶어서 여기저기에 널브러뜨려 놨다. 간판은 공업사라고 달려있는데, 들여다보면 하고 있는 일은 냄비를 두드려 펴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향수를 느낀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모든 게 낯선 풍경일 뿐이다.

예전에 일본의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데, 개그 콤비가 나와서 과거의 코미디를 재현했다. 나이 좀 있는 방송인들은 갈채를 보냈는데, 그때 한 젊은 여자 출연자가 덩달아 “참 그리운 코미디군요”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다른 출연자들이 놀라며 “아니 이런 개그를 본 적이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보니 전 본 적이 없네요.”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예스러운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움을 느낄까? 벌써 10년 전의 일이지만, 영화 ‘친구’가 개봉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통해 과거의 향수를 느꼈다고 했다. 나도 그 영화를 봤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살지 않은 나는 그런 향수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자란 과천이라는 도시에는 ‘굴다리 시장’이라고 하는 재래시장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굴다리 시장은 야채나 과일, 고기, 생선 따위의 식재료를 파는, 좌판 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천막 상점이 늘어선 작은 골목 시장일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닭백숙을 해주실 때에는 늘 굴다리 시장에서 닭을 사오셨지만, 난 엄마와 장을 보러 갈 때는 늘 뉴코아로 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도 향수라는 게 존재할까. 나에게 재래시장은 오히려 낯설고, 신선한 구경거리다. 이 시대에는, 재래시장에서 향수를 느끼는 세대와 재래시장을 낯설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임에도 쥐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국밥집 아줌마는, 그리움 가득 담긴 카메라 렌즈 같은 눈으로 시장을 배회하는 사람이나 나 같이 낯선 풍경을 찾아다니는 관광객이 아니라, 배고프면 시장을 찾아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손님을 기다릴 텐데 말이다.

2011/06/12 03:23 2011/06/12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