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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나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니. 그만큼 생활이 바빴던 거라고 생각하여야 할까. 그 사이 5일 일정으로 통역 수행을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한일 중급 장교 교류회의로, 대령의 인솔 하에 중령 두 명과 소령 두 명 등 총 5명이 방한했다. 그 동안 2성이나 3성 장군을 주로 모셔왔으니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부담 없는 행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역이 쉬운 일은 아니니, 조석(朝夕)으로 찬바람이 불고 낮에는 더운 봄 날씨 속에 서울, 대전, 청주, 김해를 오가는 일정을 따라다니다 결국 목도 상하고 몸살도 나고 말았다. 그나마 본부는 출장비를 잘 챙겨줘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일 수행에 출장비만 대략 20만원이다. 물론 통역이라는 엄청난 정신노동의 대가치고는 소략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답사

날씨도 제법 따뜻해졌으니 슬슬 출사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볍게 몸 풀기로 몇 군데 답사를 다녀왔는데, 2주 전에는 창덕궁을 다녀왔고 지난 주 화요일에는 공주시를 찾아서 공산성을 둘러보았다. 공주까지 간 김에 무령왕릉도 들렀으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 했다. 저녁 식사는 공주대학교 앞에서 먹었는데, 3월 신학기인 만큼 대학가는 활기에 넘쳤다.

도서관

요즘에는 퇴근 후에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계룡대 근처에 있는 엄사 도서관이라는 곳이다. 5시에 칼 퇴근해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6시 즈음에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8시까지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면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간다.

바이올린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노은동의 연습실에서 바이올린 연습. 올해 초에 시작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1악장을 3개월 째 붙잡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 덕택에 연주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시간과 노력 앞에 버티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선생님도 칭찬을 많이 해준다. 연습이 끝나면 이제 운동하러 간다.

복싱

10시 40분부터 12시까지는 장대동의 체육관에서 복싱. 복싱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살이 조금도 빠지지 않다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성실하게 다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도이폐(中道而廢)하지는 않았다. 이제 비로소 조금 어깨에 힘이 빠지고 펀지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한바탕 뛰고 땀을 쭉 빼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 비록 체중은 줄지 않았어도 예전보다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에서 등산을 갔는데, 길이 험한 천왕봉 등반이었지만 다음 날 가벼운 근육통 하나 없었던 걸 보면 평소 전신의 근육을 골고루 쓰고 있는 모양이다. 제대할 때까지는 그만두지 말고 착실히 운동하자.

도시락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벌써 새벽 1시에 가깝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안친다. 다음 날 싸갈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다. 밑반찬이야 대부분 주말 중에 만들어 놓으니, 반찬 통에서 도시락 통에 옮겨 담기만 하면 그만이다. 가끔 특별한 반찬이 먹고 싶을 때는 생선 한 도막 굽기도 한다.

향후 계획

뉴질랜드

여행 허가도 받았고 여권도 무사히 발급 받았다. 항공권도 이미 예매했다. 4월 7일에 출국하여 15일에 귀국하는 8박 9일의 일정으로 뉴질랜드에 다녀온다. 부모님이 계시는 오클랜드 일대와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고 올 예정이다.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초점 거리 10-20mm의 초광각 렌즈도 거금 40만원을 들여 장만했다.

중국어

본부에 영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어 통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선배가 한 명 있는데, 중국어를 제법 잘 한다. 이 선배와 함께 중국어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나 선배나 일이 그리 바쁘지 않은 한량들이라서 근무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30분 정도라도 공부를 하기로 했다. 제대하기 전까지 기초 회화는 가능할 정도로 실력을 쌓는 게 목표다.

서예

1주일에 한 번 공주에 있는 서예 교실을 찾아 서예를 배우려고 한다. 단순히 붓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고전 텍스트를 본 삼아 그것을 베끼면서 글씨 연습도 하고 고전 공부도 하는 곳이라 한다. 텍스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역시 사서(四書) 중 입문서인 대학(大學)부터 시작할까 한다. 아마 너무 바쁘지만 않으면 다음 주 중에 첫 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2012/03/24 15:45 2012/03/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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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파링.

말이 스파링이지 복싱 숙련자에게서 ‘몸으로 배우는 레슨.’

엄청 푹신푹신한 글러브를 주기에 이 정도면 맞아도 안 아프겠다 싶었는데, 한 대 맞는 순간,

“아, 이건 아니다.”

그래도 처음 한 두 대 맞았을 땐 “그래, 맞더라도 들어가서 나도 때리자!”했지만, 세 대, 네 대 쌓일수록 움츠러들고 움츠러들수록 더 맞고, 얼굴 막으면 몸 맞고 몸 막으면 얼굴 맞고, 맞고, 맞고, 맞고…….

그야말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니, ‘지옥에서 보낸 2라운드.’

아, 관장님, 저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오늘 스파링(?)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나, 앞으로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 평생 싸움질 안 하고 살아와서 다행이다. 누군가한테 맞는다는 거, 이거 엄청 슬픈 일이다. 강자에게 짓밟히는 약자의 심정이란…….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요즘 좀 몸에 익었다고 설렁설렁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체력도 근력도 민첩성도 더 길러야지. 아, 이 저주받은 육체.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삐끗했다. 힘이 안 들어간다. 내일 바이올린 레슨인데, 활을 지탱할 수 있으려나. 가뜩이나 파워 보잉이 필요한 브루흐인데.

아, 아직도 골이 울리는 것 같다.

2012/01/18 00:44 2012/01/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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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생체 시계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심박 수나 체온, 호르몬의 분비 등은 일정한 주기를 따라 변한다고 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 리듬도 일정한 주기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생체 시계는 밤과 낮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자전 주기(24시간)가 인간의 생체 시계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한편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동굴 속에서는 인간의 생체 시계가 혼란을 일으켜서 그 주기가 한없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동굴 속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의 생활 주기는 약 50시간까지 늘어났다. 즉 피실험자가 동굴 안에서 하루라고 느끼고 생활한 시간은, 실제로는 이틀정도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자연의 힘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대단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위적인 힘들이 얼마든지 자연의 지배력을 물리칠 수 있다. 가령 알람은 확실히 인간의 생체 시계를 지배할 수 있다. 그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계를 봤을 때 알람 울리기 불과 1분 전이었던 적은 꽤 많다. 내 생체 시계는 지구의 자전이라는 우주적 현상이 빚어내는 낮과 밤의 변화와는 무관한, ‘알람 타이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내 방은 채광이 나쁘다. 반 지하는 아니고, 지상 2층이지만 창 밖에는 건물 벽이 버티고 있어서 한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방 안은 어둑어둑하다. 이게 나에게 딱히 나쁜 점인지는 모르겠다. 화창한 햇살이 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황홀한 시간대에는, 애당초 내가 이 방에 있을 일이 없다.

불충분한 채광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새벽녘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대체 몇 시쯤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더더욱. 이럴 때는 항상 시계를 확인하기가 두려워진다. 알람 울리기 1분 전에 깨는 것은, 차라리 더 이상 숙면을 취하기는 글렀을지언정 알람 울릴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맘 편히 눈을 감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다.

알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알람은 지금이 생체 리듬 상 활동해야 할 때인지, 혹은 낮인지, 밤인지, 오전 7시인지, 오후 8시인지 상관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을 고지한다. 내 경우, 대게는 출근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잔혹한 경고다.

겨울 철 출근은 힘들다. 외투에 목도리, 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갖추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 아마 알람 울리는 순간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끔찍한 순간일 것이다. 간밤에 꽁꽁 언 차가 녹고 히터가 내뱉는 공기가 따뜻해 질 때까지는, 음악을 들어도 듣는 것 같지가 않다.

여름에는 에어컨에 인색한 사무실이지만, 겨울 히터 인심은 넉넉한 편이다. 옷을 사복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일종의 체념 같은 것에서 오는 안락인 듯하다.

컴퓨터를 켜고 커뮤니케이터(군 내에서 쓰는 메신저)에 접속하니, 곧 메시지가 쇄도한다. 이번 주말 부산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한 사라들로부터다. 땅 덩어리가 좁은 이 나라의 장점이라면 어디든 저렴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이라면 이 땅을 지배하는 계절로부터 도망 칠 구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부산이라면 조금은 따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총대를 메고 부산 해운대에 있는 군 휴양시설인 그린나래 콘도를 예약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보는데, 사람들은 이제 여행 계획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뻔뻔스럽기는.

추운 겨울에 남쪽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다. 무슨 계획이 필요한가. 맛있는 회나 먹고, 쓸쓸한 바닷가 풍경이나 카메라에 담으면 그만이다. 밤에는 광안 대교를 배경으로 야경을 찍어야지.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어디를 갈까’와 ‘무얼 먹을까’에 집중됐다. 고급 스시 뷔페와 수산시장 바닥의 광어회 혹은 시장 뒷골목의 돼지국밥이 서로 상충했다. 나는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지만.

퇴근 후 잠깐 방에 들렀다가 악기를 챙겨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이 있는 건물은 좀 비정상적으로 춥다. 다행이 연습실에는 전기난로가 있는데, 전기를 많이 먹게 생겼다. 악기만 놓아두고 일단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지는 날씨였다. 근처에 ‘아리가토 마마’라는 일식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라면, 우동, 돈가스, 카레,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카라아게 등등 일본 요리는 거의 망라하고 있는 음식점이었다. 오사카식 카레우동과 야키교자(군만두)를 주문했다. 카레우동이 오사카 요리였던가? 오사카에서 1년을 산 나이지만, 대체 뭐가 오사카식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인스턴트 카레에 우동 사리를 담가놓은 것 같았다. 야키교자는 싸구려 냉동만두를 대충 튀겨낸 느낌. 음식의 퀄리티에 비해 값이 너무 비싸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바로 연습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추워서 난로를 최대로 틀어놓고 방 안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악기를 꺼냈다. 손 풀기로 생상의 백조. 그 다음 B 플랫 메이저 스케일을 연습. 이윽고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곡인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의 악보를 펼쳤다. 적당한 난이도는 의욕을 고취시키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곡은 오히려 의욕을 상실시킨다. 이건 아무래도 못 오를 산처럼 보인다. 중음이 난무한다. 8도 화음을 정확하게 짚으며 내려오는 건 정말 불가능하다.

9시 반, 연습을 마쳤다. 연습을 마무리 할 시간 즈음이면 한 음 한 음 켤 때마다 오늘은 운동을 쉴까 하는 생각이 뇌를 스쳐지나가지만 결국 체육관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사람이 좀 많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먼저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고 줄넘기 4라운드로 열을 좀 낸다. 8방향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잽, 훅, 어퍼, 바디를 적절히 섞어 세도우 복싱을 한다. 이미지 속의 내 모습은 꽤 날래고 멋지지만, 거울에 비치는 정직한 내 모습은 영 둔탁하고 어설프다. 6~7라운드 정도 숨 가쁘게 운동하고 나면 이제는 샌드백을 칠 시간이다. 오른손 잽은 괜찮은데, 왼손 잽이 영 부실하다는 지적을 거듭 받고 있는 터라, 왼손에 신경 쓰며 샌드백을 때린다. 하지만 힘이 실리는 것도 잠시, 근육의 글리코겐을 급속하게 소모해버리고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내 왼팔. 아, 근력 운동을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마무리 운동은 역시 줄넘기.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12시가 넘어버렸다. 월요병을 앓을 새도 없이 지나가버린 월요일.

아빠는 지금쯤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탑승 해 있겠지. 이제 한국에 나 혼자 남았다.

2012/01/10 01:21 2012/01/10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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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연습실에 바수니스트가 출몰하고 있다. 현재 실력으로 봐선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바순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없고' 나이도 어려 봬는 것으로 봐서 뒤늦게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바순 선생님까지 출몰해서 쌍으로 바순을 부는 진기한 풍경을 목격 했다. 바순 연주도 아니고 바순 레슨이라니, 정말 희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어제까지 휴가였기 때문에 월요병은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나흘간의 휴식 뒤 출근에는 그런 만만한(일본어あまい에 해당하는 단어가 한참동안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이 통하지 않았다. 지루하고 숨 막히는 근무 시간. 천근만근 피로. 방에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눈을 붙였으나, 그래도 기어이 일어나 연습실로 가서 바이올린 연습 1시간 하고 운동도 하고 왔다.

역시 금, 토, 일, 월 나흘을 쉬었더니(물론 금요일에는 등산을 했지만) 몸이 무거워졌다. 잽이 이렇게 둔해지다니. 훅과 어퍼컷은 여전히 스피드보다는 자세에 중점을 두고 연습. 어느 새 복싱을 시작한 지 3달째를 맞이했다. 물론 첫 달은 1주일 나가고 말았으니 다닌 거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10월 한 달은 주 최소 3회 이상, 보통 4회 정도 꾸준히 나가 운동했다. 결과적으로 몸이 좀 가벼워졌고, 소화가 잘 된다. 적게 자더라도 훨씬 개운하다.

내일은 3주 만의 레슨. 하지만 회식이 있다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대고 빠지나.

주말에 사진 찍으러 가고 싶은데, 또 산에 가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단풍도 이미 졌으니 서울 시내에 산책하기 좋은 길이나 좀 찾아봐야겠다. 이참에 오랜 숙원이었던 서울 역사 탐방이나 시작 해 볼까.

2011/11/09 01:06 2011/11/09 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