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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couldn't have missed her recital. Of all concerts I have seen these days, Son's performance was the best. Every single touch on the keys overwhelmed audiences. With such virtuosic skill, she outfoxes most of her contemporaries. It seems that her heyday is beginning. I can't believe she is just my age! I'm pretty sure all the audiences in the concert hall shared the same feeling, a feeling of joyful anticipation that this young pianist before their eyes will become the piano giant in the near future.

A full review will be followed later!

첨삭

2013/03/06 02:45 2013/03/06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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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대전시립교향악단 공식 홈페이지의 악단 소개 코너에 게재되어 있는 것이다. 대개 어떤 단체든 그들이 운영하는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페이지에는 해당 조직의 설립 취지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윗글에서 비록 ‘비전’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으나 아마도 이 자못 장대한 기상이 느껴지는 글은, 대전시향이 스스로 설정한 비전이며, 정체성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전시향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조직과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바람직한 구상이다. 비전이 너무 구체적일 필요는 없지만(어떤 기업도 매출 100억 달성! 따위의 목표를 그들의 ‘비전’으로 삼지는 않는다), 조직원들이 애써 달성하고자 하는 어떤 목표를 넌지시 암시하고는 있어야 한다. 요는 그저 좋은 말들을 모조리 가져다 나열한다고 해서 좋은 비전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심지어 위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미래에 대한 방향 제시라기보다는 이미 달성한 과업의 선전에 가깝다. 이런 훌륭한 치적과 실력을 가지고서 시민 사회에 기여하는 놀라운 오케스트라를 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내 고장에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니 감격에 겨워 허파에 바람이 찰 지경이다.

내가 지금까지 세 번의 연주회를 감상하면서 이 조직에 대해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평균적인 실력을 가진 월급쟁이 음악가들의 집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오케스트라’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사람을 매우 딱딱한 태도로 대하는 샐러리맨들에게 부정적 함의를 담아 ‘직업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바로 그 직업적 태도를 대전시향의 연주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엔터테인먼트를 제공(이건 그들이 주장하는 비전 중의 하나이다)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가서 일을 하고 내려간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사무 공간에 불려가 그들이 일과 중에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 대체 내가 왜?

이건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고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을 적시(摘示)하자면 한국의 연주자들은 대체로 지성이 부족하다. 나는 그들에게 ‘연주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뭐긴 뭐야, 밥벌이 수단이지!’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두렵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주하는 곡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을까? 그 곡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껴본 적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연주로 관객들에게 곡을 이해시키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끼는 인간의 속성을 감수성이라고 한다. 시인 보들레르는 어린 소년과 예술가의 공통점은 바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소년의 감수성과 예술가의 감수성은 분명 다른 것이다. 소년의 감수성은 무엇에든 쉽게 자극을 받고 과잉 정서를 생산 해 내며 종종 그 감정 과잉 상태에 중독되는 감상주의에 빠져들지만, 예술가의 감수성은 훨씬 분별력이 있어서 아무 것에나 감동 받지 않고, 또 절제 없이 과잉된 감정들을 배설해내지도 않는다. 이런 감수성이야말로 진정한 ‘심미적 감수성’인데, 심미적 감수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감성(感性)보다는 지성(知性)의 역할이다.

내가 볼 때에 단원들에게는 심미적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심미적 감수성을 잉태할 ‘지성’이라는 모태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지성이 결여된 개인들의 집합은 양몰이 개의 짖음에 따라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다니는 양떼와 비슷하다. 목동은 그들을 잘 몰아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도 나오게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지휘자가 긴장의 끊을 놓지 않을 때에만 의도대로 움직이며, 도무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

윗글에 언급된 것처럼 이 연주 단체가 수차례 해외 연주와 서울 연주를 통해 국내외의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면서도 유독 자기 고장 안에서 나 같은 일개 시민에게 이토록 욕을 얻어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해외 순회공연이나 서울 공연처럼 많은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연주가 아닌, 본고장의 어수룩한 시민들 앞에서 하는 연주회에서는 너무 쉽게 긴장을 놓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휘자도, 양몰이 개도 신경을 덜 쓰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이 없는 양떼는 질서를 잃고 멋대로 움직인다. 나는 이 연주 단체가 보다 잘 연주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세 번의 연주회 동안 내 앞에서 그 역량을 다 발휘해서 보여준 적이 없다. 어디에서 얼마나 훌륭한 연주를 하고 무슨 칭찬을 들었든, 나는 오직 내 귀에 들리는 연주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이 단체에게 무슨 충고를 한다 한들, 그것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장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한 가닥 실 같은 애정 때문에 몇 마디 하자면, 우선 단원 개개인들에게 전혀 접수되지 않는 저 거창한 비전은 집어치우고, “대전의 어린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를 꿈꾸게 해 줄 수 있는 시향” 같은 소박하지만 확실히 각인되는 비전을 세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무슨 해외파/유학파 출신의 실력 있는 인재를 고용하거나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을 도모할 게 아니라, 단원들에게 음악 영화와 작곡가들의 전기,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 같은 것을 보라고 권하길 바란다. 단원들이 음악의 진정한 가치와 연주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양몰이 개의 윽박지름 없이도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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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향을 비판하는 글을 너무 길게 써버려서, 연주 자체에 대한 평은 간략히 줄이고자 한다.

1부에서는 브람스의 곡만 두 곡이 연주되었는데, 어지간하면 국내 오케스트라는 브람스를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마 위에서 두부 썰듯 하는 브람스 연주는 듣기에 괴로운 수준을 넘어서 가슴이 참 아프다. 음악의 구간구간을 레터로 나눈다면, A 다음에 B, B 다음에 C 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소리만 낸다고 ‘연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구성, 파트간의 밸런스, 한 프레이즈 안에서 자신의 역할, 프레이즈와 프레이즈의 연결 같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앙상블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래서야 교향곡에서도 실내악 같은 앙상블을 구현한 브람스의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 수 있단 말인가? 세세한 부분은 더 지적하지 않겠다.

2부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은 1부의 곡들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3악장 스케르초가 너무 산만했던 것을 제외하면, 1, 2, 4악장은 연습한 흔적이 꽤 보였고, 2악장 연주 때는 앙상블에도 주의하는 것이 느껴졌다(동행한 지인은 ‘여기다’하는 부분에서만 너무 호흡이 잘 맞아서 오히려 웃겼다고 했다). 최소한 이 정도의 집중력을 연주회 내내 고르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위에서 길게 썼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2012/06/26 00:52 2012/06/2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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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or : Ian Bostridge

Piano : Julius Drake
 
Recording Date : March, 1996, at No.1 studio, in Abbey Road of London

가사

2012/05/29 00:42 2012/05/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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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을 위해 ‘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조직은 개인의 삶을 어느 선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또 어느 선까지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일까? 조직에 매몰된 채 살아가기보다는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기꺼이 죽겠다는 것은 생존 본능에 위배되는 태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일까? 나는 조직의 존속이 개인에 선행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단지 생존하는 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군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생활을 조직 문화 안에서 영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군인일수록 조직 밖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 하고, 그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30일(금요일) 같은 날에 회식 같은 걸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각 개인들에게 독자적인 송년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고려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날 저녁 7시 반에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대전 시향의 송년 음악회를 예매 해 둔 상태였다. 회식에는 불참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지만, 맛있는 공짜 밥을 거절할 필요는 또 없는지라(이 날 회식 장소는 샐러드 바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식당으로 달려가서 혼자서 식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도착해서 식사 메뉴를 고를 때에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지만 단 한 가지, 식당의 주차 시스템이 엘레 파킹이라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 했다. 주차해 둔 차가 나올 때까지 15분 정도가 걸려서 하마터면 연주회에 늦을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연주 시작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2011 대전시향 송년음악회 포스터


연주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과 합창 교향곡.

에디슨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전구를 발명하여 인류의 밤을 밝혔을 것이고, 상대성원리가 물리 세계의 자명한 원리라면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없었더라면 인류에게 합창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연말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예술이라는 것은 바로 그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 아닌가 싶다.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연주되는 합창 교향곡. 돈 벌이가 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하니까 괜한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인지. 하긴 나도 묘한 의무감 때문에 굳이 큰 기대가 없으면서도 합창 교향곡을 들으러 발걸음을 옮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주는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를 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아무런 긴장감도 고양감도 느낄 수 없었다. 연주 시작 전에 악장 간 박수는 삼가달라고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전광판에 친절하게 연주되고 있는 악장까지 표시 해 주었지만 관객들인 하나의 악장이 끝날 때마다 여지없이 박수를 쳐댔다. 차라리 안내 방송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덜 창피했을 것을.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라면, 언제든 치고 싶을 때 치십시오.”라고 말했더라면 훨씬 멋지지 않았을까. 굳이 교육이 안 되는 관중을 교육하려고 애쓰다가 창피를 당하는 꼴이란.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재채기 아저씨. 타고난 리듬감은 퍼커션 주자 이상이다. 보통 연주 중간에 재채기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짜증을 내게 마련인데, 절묘한 타이밍에 터져 나오는 재채기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주회 중 가장 재밌었어.

앙코르 곡은 올드 랭 사인. 참 훌륭한 연주였다. 메인 곡도 그렇게 좀 연주 해 주지.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바이올린 연습을 하면서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손가락을 바라볼 때 느끼는 절망감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을까?

어쨌든 한 해를 보내기 전에 해야 할 것은 해버렸다는 느낌.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의무감 같은 걸 지고 연주회를 보러가는, 타성에 젖은 나 같은 관객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 카 오디오로 베토벤 9번을 재생시켰다. 평소보다 볼륨을 몇 단계 올린다.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 이게 진짜 음악 감상이지.

2012/01/12 00:41 2012/01/1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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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계에 ‘5인조’가 있다면, 프랑스 음악계에는 ‘6인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나 혹은 2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프랑스 6인조가 러시아 5인조만큼 유명해질 수 있을까? 갖은 우연과 거짓말, 어리석음이 판치는 게 인간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 시간의 심판은 누구에게든 그 업적에 걸맞은 명예를 찾아주거나 반대로 부당하게 누리는 명성을 앗아가 버린다. 아득한 과거의 것임에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른바 ‘클래식’이라 분류되는 음악의 멋진 점일 것이다.

Les Six

프랑스 6인조(Les Six)의 사진. 왼쪽부터 타이페르, 플랑크, 오네게르, 미요, 뒤레, 오리크.


오늘 소개할 음악가는 다리우스 미요. 앞서 언급한 프랑스 6인조의 일원이다. 미요는 이 프랑스 6인조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6인조의 구성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다. 오리크, 뒤레, 오네게르, 플랑크, 타이페르 그리고 나는 서로 잘 아는 친구 사이였고, 우연히 한 연주회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적 기질이나 성향은 전혀 달라서, 별로 공통점이 없었다.”

여기서 미요가 언급하는 한 연주회는, 역시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인 에릭 사티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새로운 젊은이들(Nouveaux Jeunes)’이라는 공연이었다. 에릭 사티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침체된 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요량으로 자기 주위의 젊은 작곡가들을 모아 연주회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이 연주회에 참여한 사람이 바로 미요가 말한, ‘서로 잘 알고 지냈지만 음악적 성향은 달랐던 여섯 명’이었다. 그런데 이 여섯 사람의 연주회가 한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문화 비평가였던 앙리 콜레다. 콜레는 프랑스 출신의 젊은 음악가 6인의 조합을 보고 즉각적으로 러시아 5인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글을 기고하던 신문인 <코메디아>에 ‘6인조(Les Six)’라는 호칭과 함께 비평을 실었다. 이후로 이 젊은 작곡가들의 모임은 ‘6인조’로 이름 지어졌다.

그러나 미요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의 6인조에게는 러시아의 5인조에게 있었던 ‘민족주의’와 같은 강력한 지향점이 없었다. 20세기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예술계에 다양한 ‘주의’가 쏟아져 나온 시대였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한데 묶을 지배적인 정신이 상실된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 6인조의 음악 사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장 콕토였다. 그러나 콕토부터가 모든 예술의 영역에 남김없이 도전한 왕성한 행동주의자요, 모든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동시에, 은밀하게 과거의 질서와 운명론, 신비주의를 추종하는 낭만파이기도 했다. 이렇게 일관성이 결여된 인물을 6인조가 추종했던 것을 보면, 6인조는 함께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 했지만, 정작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몰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6인조는, 개성 넘치는 여섯 작곡가들의 사교모임 이상의 그 무엇이 되지는 못 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5인조 모두의 곡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곡을 쓴 미요 같은 인물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프랑스 6인조가 러시아 5인조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D. Milhaud

Darius Milhaud(1892-1974)



다리우스 미요는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이 말은, 샘솟는 영감의 원천과 더불어 아이디어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구성의 능력과 자신의 음악적 사상을 구축할 수 있는 논리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미요는 ‘고개를 까딱하면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부류의 작곡가였다.

20세기의 작곡가답게 그는 새로운 것도 열심히 추구했다. 그중 하나는 다조(多調:polytonality)형식이다. 다조형식이란 여러 성부를 서로 다른 조성으로 작곡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기법은 사실 과거에도 종종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령 모차르트가 ‘음악의 유희(Musical Joke)’에서 사용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거나 기괴한 인상을 주기 위해 도입한 변칙적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미요는 다조성 음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양식화를 시도한 작곡가로, 그의 곡 ‘프로메테우스’에는 무려 12개의 조가 동시에 연주되는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미요가 관심을 가진 또 다른 분야는 바로 재즈였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 소개할 곡과 관련이 깊다. 미요는 1920년, 런던에서 빌리 아놀드의 밴드가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이 재즈와의 첫 조우였다. 2년 후인 1922년에 미요는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재즈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저녁이면 할렘을 전전하며 여러 흑인 음악가들의 재즈 음악을 들었다. 미요는 재즈 음악에 과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강제로 끌려와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흑인들의 민족음악이 녹아있으며, 또 삶의 애환과 슬픔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에도 그는 재즈 음반을 구입해 가져왔고, 재즈를 직접 연주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곡 의뢰가 들어왔다. 스웨덴의 발레단인 발레 쉬에두아(Ballet Suedois)의 단장, 롤프 드 마레(Rolf de Mare)가 미요에게 새로운 발레곡을 의뢰한 것이다. 그 주제는 ‘천지창조’였다.

‘천지창조’라고 하면 으레 이미 하이든이라고 하는 대작곡가에 의해 음악화 된 바 있으며, 성서의 ‘창세기’ 첫 부분을 장식하는 장대한 신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미요가 받은 시나리오는, 기독교 문명에 뿌리를 둔 거의 모든 서양의 예술가들을 자극했던 성서의 ‘천지창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문명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아프리카의 신화였던 것이다. 블레즈 상드라스가 집필한 시나리오에는 아프리카의 세 신(神)이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장면과 남자와 여자가 탄생하여 사랑을 나누는 감미로운 장면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는 과거 스트라빈스키가 곡을 쓴 ‘봄의 제전’에서처럼 폭력과 야만으로 얼룩진 이민족/원시 신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미요는 무릎을 쳤다. 아프리카 민족의 신화를 묘사하는 데에는, 그 어떤 음악 형식보다도 재즈가 적합할 터였다. 미요는 그동안 재즈 연구에 몰두하며 얻은 성과를 작품화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곧 작곡에 착수했다.

미요는 이 곡을 쓰면서, 재즈의 요소를 클래식 뼈대 안에다가 어설프게 우겨넣을 것이 아니라, 정말 재즈의 스타일을 충실히 살린 곡을 쓰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선율이나 리듬만을 채용하는 것을 넘어서 악기의 편성도 과감하게 구성했다. 현은 기본 콰르텟 구성에서 비올라를 색소폰으로 대체했고, 타악기는 탬버린, 탐탐, 사이드 드럼 등 무려 9개를 포함시켰다. 클래식과 재즈의 완벽한 융합을 이루어 낸 이 곡은 1923년 10월 25일에 초연되었는데, 이는 비슷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지 거슈인의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보다 1년가량이나 앞선 것이다.

전체 연주 시간이 약 16분 남짓인 이 곡은 총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La creation du monde, Op. 81a

1. Overture(00:00~)

시작은 색소폰이 긴 호흡으로 연주하는 레가토 선율이다. 어딘가 공허하고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세 신(神)들이 등장하기 이전, 공백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 같다.

2. The Chaos before Creation(03:56~)

기나긴 공허의 끝에, 피아노와 드럼이 등장하면서 마치 때리는 듯 강렬한 리듬을 연주한다. 그 위로 베이스와 금관(트럼펫, 색소폰, 트럼본)이 재즈 선율을 푸가로 연주하는데, 자유분방한 선율이 서로 다른 악기를 통해 대위법적으로 반복되는 이 독특한 느낌은 창조를 담당하는 아프리카의 세 신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본격적인 창조의 행위에 돌입하기 전, 의식 행위로 자유로운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3. The slowly lifting darkness, the creation of trees, plants, insects, birds and beasts(05:26~)

요란스럽던 광분이 갑자기 잦아든다. 음악은 다시 서곡의 선율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허와 어둠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서서히 걷힌다. 플루트에게서 선율을 건네받은 오보에가 느릿느릿 연주하며 서서히 생명이 깨어나는 것을 묘사한다(07:00~). 플루트의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약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곧 지극한 환희를 맞이하기 위한 암시이다.

4. Man and woman created(08:49~)

드디어 인간이 탄생했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움직이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기쁨을 만끽한다. 바순의 다소 익살스러운 리듬 위에 얹어지는 두 바이올린의 경쾌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분위기는 점차 역동적으로 고조된다.

5. The desire of man and woman(09:52~)

이윽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사랑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막 몸을 움직이게 되었을 때의 흥분을 묘사하던 떠들썩한 분위기는 가라앉고,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 현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선율이 흐른다. 이어서 기교적인 클라리넷 연주가 이어진다.

6. The man and woman kiss(11:40~)

색소폰의 등장과 함께 음악은 다시 오프닝의 느린 선율로 돌아가지만, 이번에는 공허와 어둠 대신 빛과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음악은 이제 각 파트의 주제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몰고 오고, 창조와 사랑의 완성 속에서 완만하게 사그라진다.

2011/07/27 03:08 2011/07/2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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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집 앞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예술의 전당 주차장까지 딱 30분 걸린다. 30분은, 음악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음미하며 운전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성남 아트센터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예술의 전당이 생활권 내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공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들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주말에도 막히는 일이 없는 171번 국도를 타고 양재로 빠져나오니, 예술의 전당이 금방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인가, 주차 공간도 여유로웠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선선한 바람을 쐬며 걷기도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분수도 구경하다가, 로비에 들어가서는 3,000원을 주고 산 프로그램북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니, 일전에 내가 구한 프로그램 목록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오늘 공연만 하더라도 서곡이 로시니의 곡에서 이인식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라는 알 수 없는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비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교향악 축제인 만큼 여느 때보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은 듯했다. 악기를 짊어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했지만, 이미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서 포기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강좌인 ‘음악 감상’ 강의를 들었다. 그때 강의 과제로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고 감상문을 제출해야했는데, 내가 택한 공연은 힐러리 한과 함께 내한한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다. 그날 연주회에서는 현대 작곡가의 곡이 서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제목은 ‘The Linearity of Light’였다. 후에 과제로 제출한 감상문에서 나는 이 곡의 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은 ‘빛’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따라서 감상의 포인트는 역시 빛이 전달하는 감각을 얼마나 청각 신호로 잘 치환시켰느냐가 될 터였다. 높고 낮은 음정, 빠르게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음렬, 분산 화음 등이 우리의 감각 체계에 전달하는 자극은 분명 빛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만큼 이 곡은 색채감이 풍부하고 빛의 느낌으로 가득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곡이 그러하듯, 한 번 들어서는 곡의 의미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당시 ‘음악 감상’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는 작곡가였다. 나중에 돌려받은 감상문에는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부분에 ‘agree’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청중에게 두 번 이상 들려줄 기회를 거의 갖지 못 하는 것. 그것이 많은 현대 작곡가들이 놓인 처지이다. 음악 감상 교수는, 이런 곡들도 언젠가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한 세기 후의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화적 공백기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옛날 선비들의 꿈과 희망을 재조명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순이 낮은 음으로 집요하게 반복하는 리듬만이 잠시 뇌리에 머물었을 뿐, 이내 이 곡은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난생 처음 듣는 곡에서 감동을 받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곡이든 한 번 듣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곡에 서린 한국적 정서와 작가의 의도를 읽어 낼 새도 없이 곡은 끝나버렸고, 그것을 다시 시도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막스 브루흐. 어쩌면 그는 불행한 작곡가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불행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젊어서 요절하지도 않았고, 슈만처럼 정신병을 앓거나 차이코프스키처럼 남모를 비극을 떠안고 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들보다 훨씬 덜 중요한 작곡가로 여겨진다. 브루흐는 살아서 자신의 한계를 느껴야 했고, 죽어서도 그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는 것이, 브루흐라는 작곡가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브루흐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지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한 곡에 얽매여 있다.

브루흐는 183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죽었다. 무려 90세 가까운 장수를 누린 것이다. 브루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사실상 이 곡이, 그의 작곡가로서의 정점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교향곡, 현악 사중주,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장르의 곡들을 썼지만 당대의 청중들에게도, 후대의 청중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 브루흐는 심지어 바이올린 협주곡도 두 곡이나 더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곡들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듯, 그의 1번 협주곡을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만 쓰고 죽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처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부른다.

클라라 주미 강

힘이 대단했다. 소리는 더 다듬어질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저돌성은 좋으나, 테크닉적으로는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뽐내는 그 존재감을 보니, 스타가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플랫 슈즈를 신고서도 큰 키를 자랑하며 무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남자 이상의 박력으로 바이올린을 때린다. 그 액션 덕분에 솔리스트의 음향이 한층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볼륨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건 협주곡의 어쩔 수 없는 성향인가.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귀에 익은 곡인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반주의 바이올린 곡이라면 거의 들어보지 않은 곡이 없을 텐데. 집에 들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멜로디가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그 규칙적이면서 긴박한 리듬. 음산함을 느끼게 하는 동기……. 무반주 바이올린 곡들을 죄다 재생시켜봤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불현듯 곡목이 생각이 났다. 슈베르트의 ‘마왕.’ 분명 마왕의 멜로디였다. 가곡은 통 듣지를 않으니 잘 기억이 안 날 수밖에.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편곡 버전이 존재한 것도 몰랐다.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쇼스타코비치 5번

TV를 통해서는 자주 접했지만, 직접 연주를 들은 것은 아마 처음일 거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총 출동하여 거의 매일 공연을 하는 만큼, 서로 비교 당하기에도 딱 좋은 자리인지라, 오케스트라가 긴장을 하고 연주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지한 자세로 연주에 임하는 만큼, 나도 진지한 자세로 감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날의 연주회에서 온통 협주곡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주회 당일 저녁까지 메인 곡이 무슨 곡이었는지도 몰랐다.

쇼스타코비치. 생존 당시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곡가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그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의 사후, 친구가 출판한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실은 쇼스타코비치가 자유사상과 예술을 억압하는 사회주의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재기됨에 따라, 그는 일약 자유주의 진영의 스타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사상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냉전 시절 대립하던 양 진영이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그의 교향곡 5번은 그런 논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탕함을 뽐낼 뿐이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7번과 더불어 자주 듣는 곡이지만, 라이브로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3악장 라르고를 이렇게 주의 깊게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금관이 배제된 채, 현과 목관에 의해서만 연주되는 선율들은, 마치 폭발을 예비하는 억눌린 내면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악장 말미에, 곧 숨이 끊어질 듯 겨우 이어지는 현의 소리는 악장을 차분히 정리하고 종결짓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최대로 고조시킨다. 이윽고 그 긴장은 4악장의 힘찬 팡파르와 함께 해결된다.

앙코르

문경새재로 막을 올린 연주회는 아리랑으로 끝을 맺었다. 진정한 아리랑은, 70대 할머니가 탁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아리랑이다. 그 정서는 결코 수학적으로 계산된 음계와 리듬으로 연주되는 아리랑 속에 담길 수 없다.

2011/04/11 23:48 2011/04/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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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교향악축제의 시즌이 다가왔다. 4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열어 4월 20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총 18개의 교향악단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총 출동하고, 더불어 국내 유명 연주자 및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연주자들의 협연도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클래식 애호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축제의 장이다. 하지만 군인은 놓치겠지…….

2010 교향악축제 시즌에 나는 진주의 시퍼런 하늘 아래서 점호장과 연병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실제 공연은 보러갈 수 없었지만, 임관 후에 교향악축제 공연을 줄기차게 방영해 준 Arte TV를 통해 대부분의 공연을 감상했다. 올해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러 갈 생각이지만, 뭐? 시간이 허락?

다음은 교향악 축제 일정. 현재는 모든 프로그램이 확정되었지만, 각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표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 달력 칸마다 오케스트라 이름을 예쁘게 새겨서 클릭하면 자세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해 놓기는 했다. 디자인의 시대라는데, 겉멋을 좇고 실용성, 편의성은 상실하고 있다.





1. 기대되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금번 출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를 꼽자면, 아마 ‘클라라 주미 강’일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기대주였지만, 내 기억으로는 2009년도 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후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면서 지금은 ‘기대주’에서 ‘스타’의 반열로 발돋움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그녀가 연주할 곡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010년도에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했었다. 그 때는 훨씬 체격(?)이 좋았는데, 이후 다이어트를 했는지 지금은 아주 날씬해졌다.



 

신현수

2008년도 교향악축제 때 들었던 신현수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잊을 수 없다. 이후 2009년 유베르트 수당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는 한층 더 심도가 깊어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종종 그 미모가 더 회자되기는 하지만, 정말 무게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실력파 연주자다. 가끔 경쾌한 음악까지 너무 무겁게 연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클라라 주미 강과 묘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작년 대원음악상 시상식 무대에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사라사테의 곡을 듀엣으로 연주했다. 그때 이 두 사람을 촬영하던 카메라맨들 사이에서 누가 더 예쁘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는 일화도……. 신현수도 역시 이번 무대에서 브루흐를 연주한다! 바로 스코틀랜드 판타지. 실은 그녀가 연주하는 ‘브루흐 1번’이 더 듣고 싶다. 1악장은 신현수의 연주 스타일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




권혁주

음악 외적인 것으로도 주목을 받는 위의 두 바이올리니스트와 달리, 이 투박한 외모의 남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직 그의 음악성만으로 주목을 받는다.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4번의 그 또랑또랑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보면 엄청난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인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다. 이번에 그가 연주할 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무난하게만 연주해도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곡이지만, 개성을 보이기에는 쉽지 않은 선곡일 수도 있다. 좀 더 특별한 차이코프스키 연주가 되기 위한 그 무엇을, 그는 가지고 있을까.

2. 오케스트라 & 지휘자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의 대표 오케스트라. 협주곡 없이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은 다소 오만 해 보이기까지 한다. 프로그램은 확정되었는데, 드뷔시의 La Mer와 라벨의 La Valse,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다. 드뷔시와 라벨의 선곡은 확실히 의도적인 것 같다. 작년 신년 음악회 때에도 같은 구성으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았나? 그 때는 이 두 곡이 메인이었고, 신현수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었다. 이번에는 메인 곡이 차이코프스키로 바뀌었다. 비창은 최근에 유포니아가 연주한 곡. 연주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들으러 가기를 권하고 싶다.

성남시립교향악단, 새 상임 지휘자 임평용

내 고장의 교향악단. 그러나 연주회를 그리 자주 보러 가지는 않았다. 2009년 말, 베토벤 9번을 연주한 송년 음악회는 실망을 안겨줬을 뿐이다. 최근에 성남시향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상임 지휘자가 바뀐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특히 이번에는 위에서 언급한 기대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협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더욱 기대가 크다. 하지만 난 역시 몇 달 후에 TV를 통해서나 볼 수 있겠지.

울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김홍재

내 음악 생활의 원점,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감격의 연주 무대에서 지휘를 해 준 분이 바로 김홍재 지휘자였다. 유학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공교롭게도 한국인이라니. 그러나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 했다. 연습 때 음악적 지시 외에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 과묵한 스타일. 메트로놈처럼 완벽하고 정확하게 타점을 찍는 지휘. 언젠가 한 번은 이 지휘자가 지휘하는 프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꼭 보러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벌써 수년이 흐르도록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 하고 있다. 이번에 울산시향은 스타 첼리스트인 송연훈과의 협연으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메인으로는 말러 5번을 연주한다. 월요일 연주라 이것도 TV로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3. 프로그램

한국 오케스트라들의 프로그램 구성은 안이하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익스플로러 시리즈니 마스터피스 시리즈니 여러 기획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서울시향 정도가 프로그램 구성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가을이면 온통 브람스, 겨울이면 온통 차이코프스키로 프로그램을 짜버리는 건 짜증까지 나게 한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곡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오케스트라가 비슷비슷한 곡들을 연주하면 차별성이 없어져서 오히려 관객 몰이에 해가 될 뿐이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클래식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인 교향악축제에서 참신한 프로그램 구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지만, 교향악축제의 역사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클래식 저변 확대’란 목표는 대체 언제까지 들고 갈 것인가? 이제 점차 지방 연주단체들의 실력도 향상되는 추세이니, 이런 대규모 축제일 수록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독창적인, 그러면서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임으로써 대중과 클래식 애호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이번 프로그램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나 낭만 쪽에 치중되어 있고 간간히 모차르트 등의 고전파 작곡가가 눈에 띌 뿐이다. 현대 작곡가로는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페트루슈카나 교향곡 5번(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같이 유명세를 떨친 곡들 위주로만 선곡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스트라빈스키의 곡들이라면 불새나 페트루슈카 말고도 얼마나 다양한 곡들이 있는가? 듣기 편한 곡 중에서 고르자면 E 플랫 교향곡도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훌륭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듣고 싶은 곡들은 참 많지만,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2011/03/23 01:20 2011/03/2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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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크고 작은 공연들을 자주 보러 다닙니다. 학생 때부터의 취미 생활이었고, 지금은 단조로운 군 생활의 낙이죠. 하지만 저는 꽤 까다로운 관객이라, 항상 후련하게 박수치고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건 아닙니다. 저야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연주회장을 찾는 것이지만, 어떤 연주자에겐 연주가, 제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상이고 일인 모양입니다. 그런 연주자는, 제가 매일 아침 무미건조한 보고서를 타이핑 하듯, 무표정하게 한 음 한 음을 그저 소리 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무대 위의 유포니아 여러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연주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겠지만, 반쯤은 아련한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상념에 젖어, 반쯤은 여러분들의 열정에 취한 채 보낸 감상의 시간은 제게도 정말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제가 복무하고 있는 부대의 스포츠 센터 건물에는 강당이 하나 있습니다. 피치가 거의 1도 가까이 내려간 고물 피아노와 끊어진 전선을 억지로 이어 붙인 건반이 한 대 있는 이 강당에서, 저는 매일 퇴근 후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병사들이 문 열고 들어오려다 놀라서 돌아가기도 하죠.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유포니안들의 연습 소리로 가득했던 마술방, 요술방, 푸른샘(추억 속에서 다소 미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에 비하면 오죽이나 쓸쓸한 연습 장소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연습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의 연주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고마워요. 저도 꾸준히 연습해서 2013년 가을 연주회를 노려…….

아무튼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공연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의 공연은 멋졌어요!

공연 관람 후 유포니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


맥락

군 생활을 하다보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혼동하게 된다. 2월의 마지막 날, 상황실 한 벽에 걸려있던 달력의 페이지를 누군가 하루 먼저 넘겨버렸다. 지휘관이 브리핑을 받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을 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숫자 “3.” 그건 정말 중요한 것이었을까. 한 번 넘어가면 좀처럼 되돌릴 일이 없는 달력의 페이지를 거꾸로 넘기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을 던져 넣어도 가득 채워지지 않을 광대한 인간의 사고가, 사방이 흰 벽으로 가로막힌 수평 남짓의 비좁은 방 안에 갇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잠식당한다. 공허함. 공허함은 끊임없이 팽창하여 모든 가능성의 영역을 남김없이 침범하고 이내 앗아가 버려, 결국 인생을 무의미함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내 인생의 독자성을 인정받기 바라는 것은 유치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되뇌지만 쑥스러워 감히 입 밖에는 섣불리 내지 못 하는 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지금 할 수 없는 걸까. 우리의 인생은, 대체 어느 순간에 그렇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린 걸까?

세상에 쫓겨 다니며 살지 말자. 브리핑 때, 지휘관의 테이블 위에는 반드시 탁상시계가 놓여있어야 하지. 티슈는 항상 꺼내기 쉽도록 한 장이 반쯤 빠져나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나는 문 앞에서 45도 각도로 바라보며 차려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 혀를 반쯤 내밀고 있는 티슈 갑(匣)과 책상 모서리와 각을 맞춘 탁상시계와 45도 방향을 튼 채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는, 있어야 할 위치에 정리정돈 되어있어야 한다는 질서 아래서 동급의 사물이다. 가치와 우선순위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세상에서야 살든 살지 않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의 인생이 최소한 자기 자신을 감상자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조형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섬세함과 인내심이 필요하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아마도 그 순간만이, 인생에서 기억될 빛나는 시간일 거야.

후기

연주회가 끝났다. 한바탕 인사와 촬영의 시간이 펼쳐지지만, 인사 나눈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었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할까 싶다. 그만큼 연주회 직후는 정신이 없다. 더 이상 인사 할 사람도 없다싶을 때쯤 이번 연주회에 서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따로 모여 가볍게 한 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전체 뒤풀이는 연주자들의 여운을 위한 연회. 연주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가 보았자 돈 써주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으니.

3월 첫째 주 금요일. 신입생 환영회다 오리엔테이션이다 뭐다 해서 신촌 바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볍게 맥주 한 잔 걸칠 장소도 마땅치가 않아서 결국 바를 찾아 들어갔다. 월급쟁이는 어디를 가나 물주가 되는 법이라, 멤버들에게 칵테일 한 잔씩 돌렸다. 나는 ‘블랙 러시안’을 주문했다.

나는 05학번이지만, 08년도에 유포니아에 들어갔다. 당시 나와 함께 입단했던 08학번 새내기들이, 어느 덧 졸업 학년을 맞이했다. 그러니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더 늙었단 말인가. 요새 부쩍부쩍 시간은 나를 놓아둔 채 쏜살 같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성장은 지체되어 있는데.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다가 12시쯤 헤어졌다. 새벽 2시를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한 번 쓰다듬고, 그날은 그대로 잠들었다.

2011/03/14 22:34 2011/03/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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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1년 3월 4일(금) 저녁 7시 30분

장소 : 연세대학교 대강당

연주 : 연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유포니아'

지휘 : 김동혁

협연 : 신송림

프로그램 :

J. Sibelius - Symphonic Poem Finlandia Op. 26

R. Schumann - Concerto for Piano in A minor Op. 54

P. I. Tchaikovsky - Symphony No.6 in B minor Op. 74 'Pathetique'

어느 새 내가 마지막으로 연주를 선 때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년 전에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연주했었지.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겨울을 보냈을 그들이 부럽다.

지난 22회 연주회 때는 퇴근 후 부랴부랴 올라갔지만 2부 교향곡의 후반부부터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전 단원의 특권으로 연주자 대기실에 들어갔기에 가능했지. 이번에는 아예 휴가를 쓸 생각도 하고 있다.

2011/02/25 00:32 2011/02/2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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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의 번잡함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이 엷어지더니, 이제는 가끔 그것을 그리워하게까지 되어버렸다. 화려한 불빛, 시끄러운 소음,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납작이 붙어 달리며 검은 매연을 토해내는 자동차들, 도시의 그림자를 형성하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저 높은 곳에 별 대신 빛나는 것은 불 켜진 창(窓) 하나.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내가 도시에 마음이 이끌리고 마는 것은 겉모습이 때문이 아니야. 한 꺼풀 벗겨놓고 보고 싶은 것이다. 손을 넣었을 때 뜨겁다고 해서 반드시 끓고 있는 것은 아니지. 도시의 공허함, 뜨겁지만 결코 끓어오르지 않는 이 도시의,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1도’의 부재를, 나는 애달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에 굶주려 있는 걸까.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내게서 존경심을 기대한다. 내가 그에 대해 고개 숙이고 경탄하며 그의 일과 그의 능력과 그의 열정을 존경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 나름의 위치에서 존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천성이 무언가에 들뜨는 것과 거리가 먼 나는 제아무리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그 열정의 이면에 숨겨진 권태로움, 지루함, 평범함 그리고 인간적인 약점들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토해내는 열변은 무대 위의 대사처럼 지리멸렬하고, 그 과장된 몸짓들은 한낱 그림자 연극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무심하게 바라보아 왔다. 그리고 항상 깨닫게 된다. 더없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 대해 품는 지독한 경멸의 절반쯤은 항상 나를 향해있다. 타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숨 막히는 권태로움과 평범함이 실은 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때로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안 생겼다>


프로그램

J.S. Bach : Partita No.3 in E Major, BWV 1006

L.V. Beethoven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5 in F Major, Op.24 <Spring>

D. Shostakovich : Five Pieces for Two Violins and Piano

J. Brahms : 3rd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d minor, Op. 108


지난 일요일, 연주회를 보러 갔다. 오랜만의 연주회. 보통 솔리스트의 리사이틀은 잘 보러가지 않지만, 근래에는 괜찮은 오케스트라 공연이 없었고, 간혹 있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아 보러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통역 업무의 스트레스로부터 간신히 해방된 주말, 나는 녹았다 굳은 캐러멜처럼 침대나 소파 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연주회 당일인 일요일 오후까지도 나는 달콤한 무기력함에 젖어 표를 예매할 생각도 않았다. 그러나 리사이틀의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고, 결국 공연 시작 6시간 전에 표를 예매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식당에서 바로 예술의 전당을 향해 출발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하우스가 모두 휴관이었던 예술의 전당에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도 사람 없는 공연장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공연 시작 40분 정도를 남기고 로비로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 한 조각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커피숍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리사이틀 홀 앞에는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늘 이런 무명 연주자의 독주회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었다. 연주자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일까? 저마다 인사 건네고 담소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직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홀로 연주회장을 찾은 나는,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유일하게 문을 연 가게인 앨범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괜히 힐러리 한의 신보를 한 장 샀다. 히그던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녹음된 앨범이었다.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해석의 연주로 대단한 실망감과 그 이상의 의아함을 안고 공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과연 힐러리 한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앨범에 담은 해석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연주 시작 10분 전에 리사이틀 홀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을 들어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혹 유명 연주자들의 리사이틀을 보긴 했지만, 명성 있는 연주자들은 리사이틀이라 해도 객석이 몇 안 되는 리사이틀 홀이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다. 그 거대한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지 못 하는 솔로 악기의 소리가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 아담한 리사이틀 홀을 가득 채울 솔리스트의 연주가 기대되기도 했다.

연주자가 등장했다. 첫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3번. 무반주의 솔로곡이다. 첫 악장 프렐류드는, 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동경하고 목표로 삼았던 곡. 이 곡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주는 처참했다. 내 생애, 프로의 연주로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인 연주는 처음 들었다. 첫 마디부터 불안한 음정에,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고, 홀의 음향을 의심했고, 악기의 조율 상태를 의심했다. 불안한 음정은 연주가 계속 되면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추어처럼 먼저 소리를 내고 음정을 찾아가면 어쩌잔 말인가? 성부간 밸런스가 전혀 잡히지 않은 것은 곡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기본 기량의 부족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흐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마치 연주회 2~3일 전에 처음 악보 펼치고 대충 읽은 다음 무대에 올라온 느낌이랄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구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곡을 고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프렐류드만 두고 말할 것 같으면, 내게 한 달의 시간만 준다면 이 날 이 연주자의 연주보다 더 잘 연주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연주회는 망쳤다. 뒤이어 연주된 베토벤이나 쇼스타코비치, 브람스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 연주들의 수준도 하나 같이 엉망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연주 때는 웬 고등학생 제자 한 명을 데리고 나왔는데, 잔뜩 얼어붙은 어린 학생을 옆에 세워 놓으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연주자 자신은 신나게 연주를 했지만, 덕분에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은 학생의 소리는 완전히 묻혀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브람스 연주 때는 반주자와의 호흡마저 불안 해 보였다. 특히 리듬의 매력을 살리는 3악장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4악장에서는 활 털이 두 가닥이나 끊어져나가서 비주얼 적으로는 격정을 잘 표현했지만, 그뿐이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나는 하마터면 옆에 앉은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을 할 뻔했다. 혹시 연주자와 친분이 있어서 오셨냐고. 나는 연주를 들으러 왔지만, 이렇게 처참한 연주회는 처음이라고…….

이날 연주만 놓고 본다면, 나는 이 연주자가 재학 시절에 오케스트라 수석까지 맡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수석을 얼굴로 뽑지 않는 한에야 말이다. 그러나 만일 이 연주자가 그래도 기본 기량은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날 연주회에 대한 준비가 소홀, 아니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건 감히 티켓을 판매한 연주자에게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박수를 쳐댔던 관객들은 음악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보통은 연주회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객들이, 이날은 로비에 모여 사교의 장을 열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서 탤런트도 두 사람이나 발견했다. 중견 연기자 이정길과 박상원. 이들도 오늘 연주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가?

옷 잘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장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시시덕거리는 소위 상류층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용하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사교의 장이라도 그 핵심이 되는 연주회가 정작 이 꼴이어서는 이 모든 모습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멋졌어요.’ 홀을 빠져나오면서도 몇 번은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데, 정말 엉망이었어요.’

2011/02/22 02:15 2011/02/22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