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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금요일 저녁 때 결국 집에 올라갔다. 밤늦게까지 캐치온에서 틀어주는 별 시답지 않은 공포 영화 한 편을 보고 새벽 5시까지 이탈리아어 작문 숙제를 했다. 한 두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학원에 갔다. 수업 끝나고 학원 사람들과 연세대 모 교수 이야기를 하다가 마키아벨리가 잠깐 거론되었다. 오페라 마니아라는 아저씨, 굳이 내 앞에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을 되짚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어디 가서 알량한 지식을 뽐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어디에나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공부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원래는 오늘, 오랜만에 오군을 만나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었다. 오군이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한 떡 쏘겠다고 했기 때문. 그러나 엄마 생일과 겹쳤기 때문에 일단 다음으로 미뤘다. 생일 기념 점심 식사는 예술의 전당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벨리니’에서 했다. 계산은 내가 했다. 이제 돈을 벌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쓸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써야겠지?

이날, 유희왕이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왔다. 인상주의 미술을 좋아하는 유희왕이 마침 예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을 보러 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엄마 생일 식사 자리가 파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나는 그대로 예당에 남아서 잠깐 커피 한 잔 하며 유희왕을 기다렸다.

전시회는 꽤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림들을 보는 내내 “왜 인상주의는 모네이고, 모네일수밖에 없는가.”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았지만, 미국이 세계 예술의 주요 무대로 성장하기 전, 본류에 해당하는 유럽 미술에 대하여 아류의 위치에 있었던 미국 회화를 만나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우 구혜선의 영혼 없는 목소리 해설은 덤!

지금 예당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전과 고흐의 파리 시대 작품전도 같이 열리고 있다. 둘 다 바티칸이니 고흐니 하는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관중 몰이를 하고 있어서, 주말 예당은 초만원 사례를 빚고 있는데, 가보지 않고도 감히 말하지만 이 두 전시회의 수준이라는 것은 알만하고, 굳이 초등학생들과 함께 대형 그물에 낚인 채 도매 급으로 팔려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관람료도 더 싸고 사람 없어서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인상주의전을 추천한다.

도록이 좀 비싸서 안 산 게 지금은 살짝 후회가 된다. 자세한 리뷰를 쓰려면 도록이 필요한데…….

관람 끝나고 유희왕과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차 한 잔 마신 다음에 헤어졌다.

일요일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잤다.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대전 내려오면서 버스에서 또 잤다. 이제 다시 자야지. 내일부터 다시 촘촘한 일상이 시작된다.

2013/01/28 01:16 2013/01/28 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