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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을 처음으로 본 것은 2000, 미국에서였다. 벌써 20년 전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1999년 겨울,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1년 살이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하버드 옌칭 라이브러리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1년 간 일을 하게 된 것을 기회로, 그 참에 나와 동생도 1년 동안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몇 해 전 이미 미국에서 1년간 생활했던 아버지는 일단은 함께 미국으로 갔지만, 한국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초기에 집 구하는 것 등 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는 귀국해야만 했다.

미국에서 장만해야 했던 것 중에서도 중요한 것 중의 하나, 특히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사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전자제품 매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Best Buy가 아니었을까.

나의 관심사는 오직 새 컴퓨터에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때 카메라 매장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 진열되어있던 제품들이 바로 디지털카메라였다. 요즘에야 '카메라'라고 하면 별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곧바로 '디지털카메라'를 떠올리고,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를 오히려 '필름카메라' 내지는 줄여서 '필카'라고 부르고 있지만,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필름 없이 메모리에 전자 파일 형태로 이미지를 저장하는 디지털카메라라고 하는 것을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시대였다. 늘 시대를 앞서가는 얼리어답터였던 아버지는 이때 충동적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디지털카메라 한 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해버렸다.

진열대에는 100달러 정도 하는 상당히 값싼 카메라부터 그 열 배 가격의 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들이 있었다. 20년 전과 지금이 물가가 다르다고는 하나, 그 당시 100달러짜리 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은 대체 어떤 카메라였을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사용에 엄청난 제약이 따르는, 당시에도 이미 구형인 모델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신중한 고민 끝에 아버지는 1,000달러가 넘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카메라를 골랐다. 그것이 바로 도시바의 PDR-M70 모델. 무려 330만 화소를 가진, 당시로써는 꽤 높은 사양의 카메라였다.

 



 이 카메라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집안에서 굴러다녔다
2000년대 전반기는 그야말로 '똑딱이'라 불린 콤팩트 디카의 전성시대였는데, 그런 콤팩트 디카(이를테면 우리 집안에서 그야말로 막 굴러다니던 카시오의 EX-S100 같은 카메라)에 비하면 PDR-M70은 센서 크기도 큰 편이고, 렌즈 구경도 큰 편이어서 그랬는지 어지간한 똑딱이 카메라들보다는 괜찮은 화질을 보여줬고, 결정적으로 모양도 '카메라다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2019/10/28 01:29 2019/10/28 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