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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독서노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답은 “예스!”

사강을 좋아하세요?

대답은 “글쎄?”

시몽은 매우 잘생겼지만,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외모가 출중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상상이 간다. 그런 캐릭터가 범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점 말이다.

시몽은 14살 연상의 여인 폴에게 반한다. 소설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인 것, 그리고 시몽과 폴의 나이 차이가 14살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보다 꼭 14살 나이가 많았다.

스스로 인생에서 해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이 무기력하고 허무적인 청년이, 폴과 만난 이후로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의미이며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그녀와의 사랑에 매달린다. 이 맹목적인 청년이 운운하는 ‘행복’이란 것에, 나는 반하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이지만, 시몽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폴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 못 하며, 앞으로도 영영 브람스를 사랑할 기회를 상실 해 버렸다. 그건 그녀가 39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늙은’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메마른 건초 밭으로 달려드는 불 수레바퀴의 경고장.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짜릿짜릿하고 감정은 폭발한다.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형’도 아니고 ‘고독 형’도 아니다. 다만 재가 남을 뿐…….

소설 속에서 시몽과 폴이 함께 들으러 간 ‘브람스’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 곡은 브람스가 생애동안 단 한 곡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힘차고 아름다워 수많은 거장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호들갑스러운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곡의 가장 유명한 3악장을 올려본다. 언젠가 There will be blood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유전에서 기름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 3악장이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영화의 시종 암울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 음악이 마치 태양의 반짝이는 빛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셰링.

2009/06/21 20:35 2009/06/2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