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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의 향상 음악회가 있기 하루 전날, 연주 준비로 수고하는 후배에게 맥주나 한 잔 사줄 요량으로 학교에 나갔다. 과연 향상 전야라서, 대강당 복도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도 복도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악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훨씬 연습 할 맛이 난다.

후배 셋(학번으로 후배이지만 한 명은 입단 선배, 한 명은 입단 동기, 오직 한 명이 입단 후배다)과 함께 맥줏집에라도 가려 했지만, 맥주보다는 고기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다는 후배들의 바람에 길을 돌렸다. 다음 날 연주 잘 하란 의미에서 가볍게 한 잔씩만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네 사람이서 고기 두 근 반과 술 네 병을 해치웠다. 내친김에 2차까지 달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자중 시키고 해산해버렸다. 정작 연주 부담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말이다.

집에는 새벽 2시 반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주제로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 관련된 자료를 찾고 검토하다보니, 어느 새 동이 터버렸다. 아마 아침 7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대낮까지 자버렸고, 향상 음악회에는 지각 해 버렸다.

이번 향상 음악회는 1년 전처럼 대강당에서 열렸다. 2008년 가을 향상 음악회는, 내가 유포니아에 입단하고 나서 처음 참여한 공식적인 음악 활동이었다. 그때 나는 향상 팀으로서는 규모가 대단히 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연주 팀에 살며시 들어가, 연주까지 조용히 묻어갔다.

반년 뒤 2009년 봄 향상 때에도 나는 정보국 국원들이 모인 큰 규모의 팀에 들어가서 눈에 띄지 않게 연주를 했다. 그때의 곡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K136) 1악장. 나는 이때가 내가 경험하는 마지막 향상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당 그랬어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결국 나는 이번 향상도 보게 되었다.

마치 인생에 덤으로 주어진 기회 같은 것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어떤 향상 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단 과거 연주 때와 같은 대규모 팀이 조직되지 않은 게 이유다. 이번에는 유난히 많은 팀들이 향상 음악회에 참가를 해서 대규모 향상 팀이 생기는 것을 자제시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 나 역시 독자적으로 실내악 팀을 꾸려서 사중주든 오중주든 실내악에 도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실내악은, 교향악보다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부담이 지어지는 소규모 실내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곡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향상 음악회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현악 4중주’란 장르가 가장 난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악 4중주는 규모 면에서는 겨우 네 개의 악기로 구성되어 작은 편이지만,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의 구성은 성악으로 치면 소프라노에서부터 베이스까지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라, 짜임새 있는 음악이 가능하다. 결국 현악 4중주는 ‘짜임새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과 접해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는 이런 곡의 탄탄한 구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내악을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용기가 없는 나에 비해서, 유포니아의 많은 단원들은 상당히 거침없이 명곡들에 도전장을 내민다. 학생다운 패기라고 할까, 아마추어의 열정이라고 할까.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꼭 한 번 도전 해 보고 싶은 실내악곡이 하나 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다. 브람스가 만년에 작곡하여 브람스를 대표하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으면서도 구성 면에서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명곡 중의 명곡이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는 너무 높은 이상이고, 실은 한 번 진짜 팀을 꾸려볼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검토 해 본 곡은 따로 있다. 뭣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역시 모차르트라고,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A 장조’를 놓고 숙고를 했었다. 이 곡의 1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들어온 친숙한 멜로디가 아름답게 변주되어 가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거의 플루트의 독무대지만, 나중에 가면 악기마다 고루 배려가 되어 있어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모차르트 사운드’에 대한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 향상에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를 들고 나온 팀이 있었다. 내가 고려했던 K298은 아니고, D Major인 K285였는데, 멤버 구성이 드림팀 수준이었다. 연주가 훌륭해서 내심 ‘이 팀이 대상 타가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1등상이나 다름없는 특별상을 받았다. 뭐 이런 데서 단념하길 잘했다고 느껴봤자 나만 쓸쓸해 질 뿐이지만.

나는 객석에 자리를 잡고, 인터미션 때를 제외하곤 꼼짝도 않으며, 아름다운 감상용이 아닌 단순 기록용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초반 몇 팀의 연주는 놓쳤지만, 그래도 거의 스무 팀에 가까운 연주를 모두 들었다. 아무리 동아리 내부 행사라지만, 이런 진지한 관객도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향상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브람스의 현악 4중주, 5중주, 6중주가 모두 연주되었다는 점(신기하게도 모두 2번이었다). 역시 가을이라는 것일까. 특히 6중주 1악장은 지난 연주회 때 각 현 파트의 수석을 맡았던 파트장들이 모여 연주를 했다. 덕분에 첼로 한 대 대신에 베이스가 들어갔다.

향상 음악회에서는 다양한 곡들이 연주되는데, 지난 4년 여 동안 줄기차게 음악을 들어온 나도 접해보지 못 한 음악들이 연주되어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인데, 이번에 어떤 팀이 이 곡을 들고 나왔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그가 죽던 해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쓴 곡이다. 워낙 괴상하게 작곡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그가 미쳐버린 나머지 제대로 작곡을 하지 못 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는데, 쇤베르크 같은 사람은 이 곡을 극찬했다고 한다. 무조주의 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에게는 이 곡이 미래를 예견한 곡으로 이해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쇤베르크마저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에조차 이 곡은 사람들로부터 별로 환영을 받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들이 이 곡을 꺼내어 연주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정말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과 내용은 다르지만 음산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곡도 있었다.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이다. 멘델스존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누나가 죽고, 그 충격으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쓴 곡. 그리고 멘델스존 역시 이 곡을 완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멘델스존의 밝고 아름다운 악풍과 완전히 다른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지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곡은 내가 놓쳐버린 몇 개의 곡 중에 하나였다.

그밖에 드보르작의 피아노 5중주곡(이것도 놓쳤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4번과 7번,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3번(로자문데)과 14번(죽음과 소녀) 같은 유명한 곡도 있었다. 물론 유명한 곡은 그만큼 연주에 위험 부담이 따른다.

향상 음악회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면 역시 비올라 향상이나 금관 향상 같이, 어딘가 좀 어설프지만 노력이 빛나는(그러나 실제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주를 듣는 것이다. 비올라 팀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몸에 눈(雪 )을 연상시키는 흰 공들을 붙이고 나와서 캐럴 메들리를 연주했다.

이번 향상 음악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팀이라면, ‘솔로의 자조’를, 적절한 배경 음악과 스케치북 소품을 이용해 유쾌하게 풀어낸 솔로 남자들의 팀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용기가 가상했던 한 사람이 있는데, 혈혈단신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중 6번곡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내려온 녀석이 있어, (장난 섞인)기립 박수를 받았다. 나도 ‘10년 동안 레슨을 중단하지 않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한 번쯤 솔로 연주에 도전 해 볼까. 뭐 넉넉잡아 앞으로 6년 후의 일이다. 그때까진 꿈도 꾸지 않으련다.

오후 2시 반에 시작한 향상 음악회는 저녁 7시 무렵에야 끝이 났다. 가까운 고기 뷔페에서 뒤풀이를 하고 9시를 조금 넘겨 해산했다.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빛난 연주회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음악과 접하면서 쌓아온 저들의 역량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모하다 싶은 도전도 거침없이 해버리는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어느 것이나 나에게는 부족한 것들이다.

다음 연주회 곡이 발표되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다.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내부 정보를 들은 이후로 나는 브람스를 열렬히 응원 해 온 터여서, 이 발표를 듣고는 허탈해졌다. 나는 보통 남들 앞에서 나의 호불호(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는 식의)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브람스에 대한 나의 애착을 노골적으로 피로하고 다녔다. 어떤 곡이 주어지든 나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만, 덤으로 주어진 이 마지막 기회에 나는 꼭 브람스와 만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바라던 것과 달랐고, 어떻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2009/11/15 22:42 2009/11/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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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연도(年度)는 둘. 하나는 1797년. 남자라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따위의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버리는 불굴의 무인에 대한 동경을 품는 바보 같은 시기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인간이 되는 거고, 그렇지 못 하면 짐승이 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나폴레옹이 왜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지,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나?

나는 ‘나폴레옹 멋져’란 생각 때문에 이 연도를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1797년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해도 아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그 전 일이니까 처음 알프스를 넘은 것은 1797년 이전일 것이고, 저 유명한 일화는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를 위해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 때의 일이라니까 좀 더 후의 일일 것이다.

1797년은, 바로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해이다. 이로써 1200년 존속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진부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유럽 제일이었던 국가의 부와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파상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생존했던 이 국가는, 결국 유럽 국가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평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이, ‘바다와의 결혼식’ 행사 때 베네치아 통령이 타던 선박인 ‘부르키엘로’는 호화롭다고 바다 위에서 불살라버렸다. 참고로 이 부르키엘로의 아주 작은 모형이, 이탈리아 해군 기지인 아르세날레 남쪽에 위치한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혹 베네치아에 관광 가는 사람이 있거든, 한 번 쯤 들러보라.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연도는 1812년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해이다. 사실 이 사이에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있고 한데……. 이 1812년이라는 해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다음에 소개할 곡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차이코프스키 작곡 ‘1812년 서곡’ 작품 번호 49번.

‘1880년에 작곡된 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곡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대한 러시아 군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써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를 병치시켜 양국 군대의 치열한 전투와 러시아 군의 최종적 승리를 생생하게 그려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그런데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도 구분 못 하는 애들한테 러시아적인 선율이 어쩌고 해도 사실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란 말이다. 결국 실제 대포를 가져와 펑펑 쏴대고, 교회 종을 울려가며 연주했다더라 하는 ‘일화’ 정도나 기억하면 아는 척 거들먹거릴 수 있단 얘기지.

사실 이 곡은 정말 단순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 곡에는, 정치적 선전이라는 의도도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한 것만큼’ 이에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아 차이코프스키’란 느낌의 선율이 연주되다가, 잠시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더니, 요란한 대포 소리와 함께 힘찬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이 연주된다. 그러다가 마치 러시아의 민족의 각성을 암시하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이 연주되더니, 이번에는 프랑스 군의 고전을 암시하는 듯 라 마르세예즈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삽입된다.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국가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의 주제가 힘차게 연주되는 가운데, 승리의 팡파르로 장식된다.

혹시 여기 삽입된 멜로디가 러시아 국가가 맞는지 확인 해 보겠다고, 러시아 국가 찾아 듣는 짓은 하지 말기를. 차이코프스키 시대의 국가가 현대 러시아 국가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재밌는 것은, 정작 전투가 벌어졌던 1812년엔 러시아에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러시아 국가는 1815년에 처음 지정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시대에는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가 1833년부터 새로 국가로 지정되어 불리고 있었다. 이후 소련 시대에 국가가 무려 네 차례나 바뀌었고,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1년에 국가를 새로 정했으나, 2000년 푸틴 대통령 때 다시 한 번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도, 분명 혁명기 때부터 널리 불렸으나 국가로 지정된 것은, 1812년 서곡이 작곡되기 불과 1년 전인 1879년이었다. 그 힘차면서도 호탕한 선율 때문에 사랑받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가 뿌리자’라든가…….

곡만 들으면 러시아 군의 통쾌한 승리가 연상된다. 그러나 어디 러시아 군이 이렇게 칭송할만한 기념적인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보르디노 전투’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쿠투조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맞닥뜨려 서로 비슷비슷한 피해를 입고 결국 결판을 내지 못 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쿠투조프가 퇴군을 하는 바람에 결국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게 됐으니, 이 싸움이 어디 이렇게 웅장한 음악으로 치장할 만하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事實)이 아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에게 거의 죽임을 당할 뻔 하고, 겨우 상대방의 실수로 목숨을 건져 ‘평화 조약’을 맺는 것으로 체면치레 했으나, 이집트 전역에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찬란하다 못 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의 기념 부조들로 자아도취의 향연을 펼쳐놨으니, 후대 사람들은 그를 정녕 위대한 승리자요, 이집트의 자주적 혼이라 여기지 않는가.

다섯 권짜리 ‘전쟁과 평화’로 읽는 것보다도 이렇게 15분 정도의 음악으로 듣는 이야기가 뇌리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정치 선전이란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해야’하며, ‘반복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하지만 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정작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쓴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현명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두뇌에 가장 직접적이고 위력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을 혐오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그저 예술 작품의 하나로서 감상하면 될 것이다.

바로 이 곡이, 유포니아의 가을 정기 연주회 서곡이며, 나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서 연주하게 된다.

2009/07/21 04:15 2009/07/21 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