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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couldn't have missed her recital. Of all concerts I have seen these days, Son's performance was the best. Every single touch on the keys overwhelmed audiences. With such virtuosic skill, she outfoxes most of her contemporaries. It seems that her heyday is beginning. I can't believe she is just my age! I'm pretty sure all the audiences in the concert hall shared the same feeling, a feeling of joyful anticipation that this young pianist before their eyes will become the piano giant in the near future.

A full review will be followed later!

첨삭

2013/03/06 02:45 2013/03/06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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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집 앞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예술의 전당 주차장까지 딱 30분 걸린다. 30분은, 음악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음미하며 운전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성남 아트센터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예술의 전당이 생활권 내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공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들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주말에도 막히는 일이 없는 171번 국도를 타고 양재로 빠져나오니, 예술의 전당이 금방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인가, 주차 공간도 여유로웠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선선한 바람을 쐬며 걷기도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분수도 구경하다가, 로비에 들어가서는 3,000원을 주고 산 프로그램북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니, 일전에 내가 구한 프로그램 목록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오늘 공연만 하더라도 서곡이 로시니의 곡에서 이인식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라는 알 수 없는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비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교향악 축제인 만큼 여느 때보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은 듯했다. 악기를 짊어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했지만, 이미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서 포기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문경새재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강좌인 ‘음악 감상’ 강의를 들었다. 그때 강의 과제로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고 감상문을 제출해야했는데, 내가 택한 공연은 힐러리 한과 함께 내한한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다. 그날 연주회에서는 현대 작곡가의 곡이 서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제목은 ‘The Linearity of Light’였다. 후에 과제로 제출한 감상문에서 나는 이 곡의 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은 ‘빛’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따라서 감상의 포인트는 역시 빛이 전달하는 감각을 얼마나 청각 신호로 잘 치환시켰느냐가 될 터였다. 높고 낮은 음정, 빠르게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음렬, 분산 화음 등이 우리의 감각 체계에 전달하는 자극은 분명 빛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만큼 이 곡은 색채감이 풍부하고 빛의 느낌으로 가득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곡이 그러하듯, 한 번 들어서는 곡의 의미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당시 ‘음악 감상’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는 작곡가였다. 나중에 돌려받은 감상문에는 “자신의 곡이 같은 청중과 두 번 이상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부분에 ‘agree’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청중에게 두 번 이상 들려줄 기회를 거의 갖지 못 하는 것. 그것이 많은 현대 작곡가들이 놓인 처지이다. 음악 감상 교수는, 이런 곡들도 언젠가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한 세기 후의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화적 공백기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옛날 선비들의 꿈과 희망을 재조명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순이 낮은 음으로 집요하게 반복하는 리듬만이 잠시 뇌리에 머물었을 뿐, 이내 이 곡은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난생 처음 듣는 곡에서 감동을 받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곡이든 한 번 듣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곡에 서린 한국적 정서와 작가의 의도를 읽어 낼 새도 없이 곡은 끝나버렸고, 그것을 다시 시도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막스 브루흐. 어쩌면 그는 불행한 작곡가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불행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젊어서 요절하지도 않았고, 슈만처럼 정신병을 앓거나 차이코프스키처럼 남모를 비극을 떠안고 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들보다 훨씬 덜 중요한 작곡가로 여겨진다. 브루흐는 살아서 자신의 한계를 느껴야 했고, 죽어서도 그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는 것이, 브루흐라는 작곡가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브루흐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지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한 곡에 얽매여 있다.

브루흐는 183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죽었다. 무려 90세 가까운 장수를 누린 것이다. 브루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사실상 이 곡이, 그의 작곡가로서의 정점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교향곡, 현악 사중주,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장르의 곡들을 썼지만 당대의 청중들에게도, 후대의 청중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 브루흐는 심지어 바이올린 협주곡도 두 곡이나 더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곡들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듯, 그의 1번 협주곡을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만 쓰고 죽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처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부른다.

클라라 주미 강

힘이 대단했다. 소리는 더 다듬어질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저돌성은 좋으나, 테크닉적으로는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뽐내는 그 존재감을 보니, 스타가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플랫 슈즈를 신고서도 큰 키를 자랑하며 무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남자 이상의 박력으로 바이올린을 때린다. 그 액션 덕분에 솔리스트의 음향이 한층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볼륨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건 협주곡의 어쩔 수 없는 성향인가.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귀에 익은 곡인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반주의 바이올린 곡이라면 거의 들어보지 않은 곡이 없을 텐데. 집에 들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멜로디가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그 규칙적이면서 긴박한 리듬. 음산함을 느끼게 하는 동기……. 무반주 바이올린 곡들을 죄다 재생시켜봤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불현듯 곡목이 생각이 났다. 슈베르트의 ‘마왕.’ 분명 마왕의 멜로디였다. 가곡은 통 듣지를 않으니 잘 기억이 안 날 수밖에.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편곡 버전이 존재한 것도 몰랐다.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쇼스타코비치 5번

TV를 통해서는 자주 접했지만, 직접 연주를 들은 것은 아마 처음일 거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총 출동하여 거의 매일 공연을 하는 만큼, 서로 비교 당하기에도 딱 좋은 자리인지라, 오케스트라가 긴장을 하고 연주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지한 자세로 연주에 임하는 만큼, 나도 진지한 자세로 감상을 했다.

사실 나는 이 날의 연주회에서 온통 협주곡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주회 당일 저녁까지 메인 곡이 무슨 곡이었는지도 몰랐다.

쇼스타코비치. 생존 당시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곡가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그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의 사후, 친구가 출판한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실은 쇼스타코비치가 자유사상과 예술을 억압하는 사회주의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재기됨에 따라, 그는 일약 자유주의 진영의 스타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사상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냉전 시절 대립하던 양 진영이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그의 교향곡 5번은 그런 논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탕함을 뽐낼 뿐이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7번과 더불어 자주 듣는 곡이지만, 라이브로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3악장 라르고를 이렇게 주의 깊게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금관이 배제된 채, 현과 목관에 의해서만 연주되는 선율들은, 마치 폭발을 예비하는 억눌린 내면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악장 말미에, 곧 숨이 끊어질 듯 겨우 이어지는 현의 소리는 악장을 차분히 정리하고 종결짓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최대로 고조시킨다. 이윽고 그 긴장은 4악장의 힘찬 팡파르와 함께 해결된다.

앙코르

문경새재로 막을 올린 연주회는 아리랑으로 끝을 맺었다. 진정한 아리랑은, 70대 할머니가 탁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아리랑이다. 그 정서는 결코 수학적으로 계산된 음계와 리듬으로 연주되는 아리랑 속에 담길 수 없다.

2011/04/11 23:48 2011/04/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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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교향악축제의 시즌이 다가왔다. 4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열어 4월 20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총 18개의 교향악단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총 출동하고, 더불어 국내 유명 연주자 및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연주자들의 협연도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클래식 애호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축제의 장이다. 하지만 군인은 놓치겠지…….

2010 교향악축제 시즌에 나는 진주의 시퍼런 하늘 아래서 점호장과 연병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실제 공연은 보러갈 수 없었지만, 임관 후에 교향악축제 공연을 줄기차게 방영해 준 Arte TV를 통해 대부분의 공연을 감상했다. 올해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러 갈 생각이지만, 뭐? 시간이 허락?

다음은 교향악 축제 일정. 현재는 모든 프로그램이 확정되었지만, 각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표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 달력 칸마다 오케스트라 이름을 예쁘게 새겨서 클릭하면 자세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해 놓기는 했다. 디자인의 시대라는데, 겉멋을 좇고 실용성, 편의성은 상실하고 있다.





1. 기대되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금번 출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를 꼽자면, 아마 ‘클라라 주미 강’일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기대주였지만, 내 기억으로는 2009년도 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후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면서 지금은 ‘기대주’에서 ‘스타’의 반열로 발돋움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그녀가 연주할 곡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010년도에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했었다. 그 때는 훨씬 체격(?)이 좋았는데, 이후 다이어트를 했는지 지금은 아주 날씬해졌다.



 

신현수

2008년도 교향악축제 때 들었던 신현수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잊을 수 없다. 이후 2009년 유베르트 수당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는 한층 더 심도가 깊어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종종 그 미모가 더 회자되기는 하지만, 정말 무게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실력파 연주자다. 가끔 경쾌한 음악까지 너무 무겁게 연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클라라 주미 강과 묘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작년 대원음악상 시상식 무대에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사라사테의 곡을 듀엣으로 연주했다. 그때 이 두 사람을 촬영하던 카메라맨들 사이에서 누가 더 예쁘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는 일화도……. 신현수도 역시 이번 무대에서 브루흐를 연주한다! 바로 스코틀랜드 판타지. 실은 그녀가 연주하는 ‘브루흐 1번’이 더 듣고 싶다. 1악장은 신현수의 연주 스타일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




권혁주

음악 외적인 것으로도 주목을 받는 위의 두 바이올리니스트와 달리, 이 투박한 외모의 남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직 그의 음악성만으로 주목을 받는다.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4번의 그 또랑또랑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보면 엄청난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인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다. 이번에 그가 연주할 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무난하게만 연주해도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곡이지만, 개성을 보이기에는 쉽지 않은 선곡일 수도 있다. 좀 더 특별한 차이코프스키 연주가 되기 위한 그 무엇을, 그는 가지고 있을까.

2. 오케스트라 & 지휘자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의 대표 오케스트라. 협주곡 없이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은 다소 오만 해 보이기까지 한다. 프로그램은 확정되었는데, 드뷔시의 La Mer와 라벨의 La Valse,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다. 드뷔시와 라벨의 선곡은 확실히 의도적인 것 같다. 작년 신년 음악회 때에도 같은 구성으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았나? 그 때는 이 두 곡이 메인이었고, 신현수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었다. 이번에는 메인 곡이 차이코프스키로 바뀌었다. 비창은 최근에 유포니아가 연주한 곡. 연주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들으러 가기를 권하고 싶다.

성남시립교향악단, 새 상임 지휘자 임평용

내 고장의 교향악단. 그러나 연주회를 그리 자주 보러 가지는 않았다. 2009년 말, 베토벤 9번을 연주한 송년 음악회는 실망을 안겨줬을 뿐이다. 최근에 성남시향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상임 지휘자가 바뀐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특히 이번에는 위에서 언급한 기대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협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더욱 기대가 크다. 하지만 난 역시 몇 달 후에 TV를 통해서나 볼 수 있겠지.

울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김홍재

내 음악 생활의 원점,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감격의 연주 무대에서 지휘를 해 준 분이 바로 김홍재 지휘자였다. 유학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공교롭게도 한국인이라니. 그러나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 했다. 연습 때 음악적 지시 외에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 과묵한 스타일. 메트로놈처럼 완벽하고 정확하게 타점을 찍는 지휘. 언젠가 한 번은 이 지휘자가 지휘하는 프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꼭 보러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벌써 수년이 흐르도록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 하고 있다. 이번에 울산시향은 스타 첼리스트인 송연훈과의 협연으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메인으로는 말러 5번을 연주한다. 월요일 연주라 이것도 TV로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3. 프로그램

한국 오케스트라들의 프로그램 구성은 안이하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익스플로러 시리즈니 마스터피스 시리즈니 여러 기획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서울시향 정도가 프로그램 구성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가을이면 온통 브람스, 겨울이면 온통 차이코프스키로 프로그램을 짜버리는 건 짜증까지 나게 한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곡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오케스트라가 비슷비슷한 곡들을 연주하면 차별성이 없어져서 오히려 관객 몰이에 해가 될 뿐이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클래식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인 교향악축제에서 참신한 프로그램 구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지만, 교향악축제의 역사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클래식 저변 확대’란 목표는 대체 언제까지 들고 갈 것인가? 이제 점차 지방 연주단체들의 실력도 향상되는 추세이니, 이런 대규모 축제일 수록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독창적인, 그러면서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임으로써 대중과 클래식 애호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이번 프로그램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나 낭만 쪽에 치중되어 있고 간간히 모차르트 등의 고전파 작곡가가 눈에 띌 뿐이다. 현대 작곡가로는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페트루슈카나 교향곡 5번(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같이 유명세를 떨친 곡들 위주로만 선곡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스트라빈스키의 곡들이라면 불새나 페트루슈카 말고도 얼마나 다양한 곡들이 있는가? 듣기 편한 곡 중에서 고르자면 E 플랫 교향곡도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훌륭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듣고 싶은 곡들은 참 많지만,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2011/03/23 01:20 2011/03/2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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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크고 작은 공연들을 자주 보러 다닙니다. 학생 때부터의 취미 생활이었고, 지금은 단조로운 군 생활의 낙이죠. 하지만 저는 꽤 까다로운 관객이라, 항상 후련하게 박수치고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건 아닙니다. 저야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연주회장을 찾는 것이지만, 어떤 연주자에겐 연주가, 제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상이고 일인 모양입니다. 그런 연주자는, 제가 매일 아침 무미건조한 보고서를 타이핑 하듯, 무표정하게 한 음 한 음을 그저 소리 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무대 위의 유포니아 여러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연주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겠지만, 반쯤은 아련한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상념에 젖어, 반쯤은 여러분들의 열정에 취한 채 보낸 감상의 시간은 제게도 정말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제가 복무하고 있는 부대의 스포츠 센터 건물에는 강당이 하나 있습니다. 피치가 거의 1도 가까이 내려간 고물 피아노와 끊어진 전선을 억지로 이어 붙인 건반이 한 대 있는 이 강당에서, 저는 매일 퇴근 후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병사들이 문 열고 들어오려다 놀라서 돌아가기도 하죠.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유포니안들의 연습 소리로 가득했던 마술방, 요술방, 푸른샘(추억 속에서 다소 미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에 비하면 오죽이나 쓸쓸한 연습 장소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연습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의 연주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고마워요. 저도 꾸준히 연습해서 2013년 가을 연주회를 노려…….

아무튼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공연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의 공연은 멋졌어요!

공연 관람 후 유포니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


맥락

군 생활을 하다보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혼동하게 된다. 2월의 마지막 날, 상황실 한 벽에 걸려있던 달력의 페이지를 누군가 하루 먼저 넘겨버렸다. 지휘관이 브리핑을 받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을 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숫자 “3.” 그건 정말 중요한 것이었을까. 한 번 넘어가면 좀처럼 되돌릴 일이 없는 달력의 페이지를 거꾸로 넘기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을 던져 넣어도 가득 채워지지 않을 광대한 인간의 사고가, 사방이 흰 벽으로 가로막힌 수평 남짓의 비좁은 방 안에 갇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잠식당한다. 공허함. 공허함은 끊임없이 팽창하여 모든 가능성의 영역을 남김없이 침범하고 이내 앗아가 버려, 결국 인생을 무의미함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내 인생의 독자성을 인정받기 바라는 것은 유치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되뇌지만 쑥스러워 감히 입 밖에는 섣불리 내지 못 하는 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지금 할 수 없는 걸까. 우리의 인생은, 대체 어느 순간에 그렇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린 걸까?

세상에 쫓겨 다니며 살지 말자. 브리핑 때, 지휘관의 테이블 위에는 반드시 탁상시계가 놓여있어야 하지. 티슈는 항상 꺼내기 쉽도록 한 장이 반쯤 빠져나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나는 문 앞에서 45도 각도로 바라보며 차려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 혀를 반쯤 내밀고 있는 티슈 갑(匣)과 책상 모서리와 각을 맞춘 탁상시계와 45도 방향을 튼 채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는, 있어야 할 위치에 정리정돈 되어있어야 한다는 질서 아래서 동급의 사물이다. 가치와 우선순위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세상에서야 살든 살지 않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의 인생이 최소한 자기 자신을 감상자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조형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섬세함과 인내심이 필요하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아마도 그 순간만이, 인생에서 기억될 빛나는 시간일 거야.

후기

연주회가 끝났다. 한바탕 인사와 촬영의 시간이 펼쳐지지만, 인사 나눈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었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할까 싶다. 그만큼 연주회 직후는 정신이 없다. 더 이상 인사 할 사람도 없다싶을 때쯤 이번 연주회에 서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따로 모여 가볍게 한 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전체 뒤풀이는 연주자들의 여운을 위한 연회. 연주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가 보았자 돈 써주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으니.

3월 첫째 주 금요일. 신입생 환영회다 오리엔테이션이다 뭐다 해서 신촌 바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볍게 맥주 한 잔 걸칠 장소도 마땅치가 않아서 결국 바를 찾아 들어갔다. 월급쟁이는 어디를 가나 물주가 되는 법이라, 멤버들에게 칵테일 한 잔씩 돌렸다. 나는 ‘블랙 러시안’을 주문했다.

나는 05학번이지만, 08년도에 유포니아에 들어갔다. 당시 나와 함께 입단했던 08학번 새내기들이, 어느 덧 졸업 학년을 맞이했다. 그러니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더 늙었단 말인가. 요새 부쩍부쩍 시간은 나를 놓아둔 채 쏜살 같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성장은 지체되어 있는데.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다가 12시쯤 헤어졌다. 새벽 2시를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한 번 쓰다듬고, 그날은 그대로 잠들었다.

2011/03/14 22:34 2011/03/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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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의 번잡함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이 엷어지더니, 이제는 가끔 그것을 그리워하게까지 되어버렸다. 화려한 불빛, 시끄러운 소음,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납작이 붙어 달리며 검은 매연을 토해내는 자동차들, 도시의 그림자를 형성하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저 높은 곳에 별 대신 빛나는 것은 불 켜진 창(窓) 하나.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내가 도시에 마음이 이끌리고 마는 것은 겉모습이 때문이 아니야. 한 꺼풀 벗겨놓고 보고 싶은 것이다. 손을 넣었을 때 뜨겁다고 해서 반드시 끓고 있는 것은 아니지. 도시의 공허함, 뜨겁지만 결코 끓어오르지 않는 이 도시의,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1도’의 부재를, 나는 애달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에 굶주려 있는 걸까.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내게서 존경심을 기대한다. 내가 그에 대해 고개 숙이고 경탄하며 그의 일과 그의 능력과 그의 열정을 존경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 나름의 위치에서 존중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천성이 무언가에 들뜨는 것과 거리가 먼 나는 제아무리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그 열정의 이면에 숨겨진 권태로움, 지루함, 평범함 그리고 인간적인 약점들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토해내는 열변은 무대 위의 대사처럼 지리멸렬하고, 그 과장된 몸짓들은 한낱 그림자 연극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무심하게 바라보아 왔다. 그리고 항상 깨닫게 된다. 더없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 대해 품는 지독한 경멸의 절반쯤은 항상 나를 향해있다. 타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숨 막히는 권태로움과 평범함이 실은 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때로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안 생겼다>


프로그램

J.S. Bach : Partita No.3 in E Major, BWV 1006

L.V. Beethoven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5 in F Major, Op.24 <Spring>

D. Shostakovich : Five Pieces for Two Violins and Piano

J. Brahms : 3rd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d minor, Op. 108


지난 일요일, 연주회를 보러 갔다. 오랜만의 연주회. 보통 솔리스트의 리사이틀은 잘 보러가지 않지만, 근래에는 괜찮은 오케스트라 공연이 없었고, 간혹 있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아 보러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통역 업무의 스트레스로부터 간신히 해방된 주말, 나는 녹았다 굳은 캐러멜처럼 침대나 소파 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연주회 당일인 일요일 오후까지도 나는 달콤한 무기력함에 젖어 표를 예매할 생각도 않았다. 그러나 리사이틀의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고, 결국 공연 시작 6시간 전에 표를 예매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식당에서 바로 예술의 전당을 향해 출발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하우스가 모두 휴관이었던 예술의 전당에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도 사람 없는 공연장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공연 시작 40분 정도를 남기고 로비로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디저트로 먹을 케이크 한 조각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커피숍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리사이틀 홀 앞에는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늘 이런 무명 연주자의 독주회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었다. 연주자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일까? 저마다 인사 건네고 담소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직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홀로 연주회장을 찾은 나는,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유일하게 문을 연 가게인 앨범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괜히 힐러리 한의 신보를 한 장 샀다. 히그던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녹음된 앨범이었다.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해석의 연주로 대단한 실망감과 그 이상의 의아함을 안고 공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과연 힐러리 한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앨범에 담은 해석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연주 시작 10분 전에 리사이틀 홀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을 들어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혹 유명 연주자들의 리사이틀을 보긴 했지만, 명성 있는 연주자들은 리사이틀이라 해도 객석이 몇 안 되는 리사이틀 홀이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다. 그 거대한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지 못 하는 솔로 악기의 소리가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 아담한 리사이틀 홀을 가득 채울 솔리스트의 연주가 기대되기도 했다.

연주자가 등장했다. 첫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3번. 무반주의 솔로곡이다. 첫 악장 프렐류드는, 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동경하고 목표로 삼았던 곡. 이 곡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주는 처참했다. 내 생애, 프로의 연주로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인 연주는 처음 들었다. 첫 마디부터 불안한 음정에,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고, 홀의 음향을 의심했고, 악기의 조율 상태를 의심했다. 불안한 음정은 연주가 계속 되면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추어처럼 먼저 소리를 내고 음정을 찾아가면 어쩌잔 말인가? 성부간 밸런스가 전혀 잡히지 않은 것은 곡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기본 기량의 부족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흐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마치 연주회 2~3일 전에 처음 악보 펼치고 대충 읽은 다음 무대에 올라온 느낌이랄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구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곡을 고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프렐류드만 두고 말할 것 같으면, 내게 한 달의 시간만 준다면 이 날 이 연주자의 연주보다 더 잘 연주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연주회는 망쳤다. 뒤이어 연주된 베토벤이나 쇼스타코비치, 브람스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 연주들의 수준도 하나 같이 엉망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연주 때는 웬 고등학생 제자 한 명을 데리고 나왔는데, 잔뜩 얼어붙은 어린 학생을 옆에 세워 놓으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연주자 자신은 신나게 연주를 했지만, 덕분에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은 학생의 소리는 완전히 묻혀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브람스 연주 때는 반주자와의 호흡마저 불안 해 보였다. 특히 리듬의 매력을 살리는 3악장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4악장에서는 활 털이 두 가닥이나 끊어져나가서 비주얼 적으로는 격정을 잘 표현했지만, 그뿐이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나는 하마터면 옆에 앉은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을 할 뻔했다. 혹시 연주자와 친분이 있어서 오셨냐고. 나는 연주를 들으러 왔지만, 이렇게 처참한 연주회는 처음이라고…….

이날 연주만 놓고 본다면, 나는 이 연주자가 재학 시절에 오케스트라 수석까지 맡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수석을 얼굴로 뽑지 않는 한에야 말이다. 그러나 만일 이 연주자가 그래도 기본 기량은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날 연주회에 대한 준비가 소홀, 아니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건 감히 티켓을 판매한 연주자에게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박수를 쳐댔던 관객들은 음악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보통은 연주회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객들이, 이날은 로비에 모여 사교의 장을 열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서 탤런트도 두 사람이나 발견했다. 중견 연기자 이정길과 박상원. 이들도 오늘 연주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가?

옷 잘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장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시시덕거리는 소위 상류층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용하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사교의 장이라도 그 핵심이 되는 연주회가 정작 이 꼴이어서는 이 모든 모습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멋졌어요.’ 홀을 빠져나오면서도 몇 번은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데, 정말 엉망이었어요.’

2011/02/22 02:15 2011/02/2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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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내 지갑은 좀 더 가벼워졌지만, 11월은 조금 더 즐거울 겁니다.

2010/10/23 03:21 2010/10/2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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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전

휴일도 아니고 근무 오프도 아닌 평일. 여느 때라면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장 2일차. 오늘은 서울에서 일이 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공군전우회 주관 한일교류 행사 통역 업무에 대비해서 사전 업무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도록, 말러 2번 3악장을 크게 틀어놓았다.

1층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여니, 지난 일요일에 사온 맥도날드 머핀이 그대로 남아있다. 차가운 머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년 여름 맥도날드에서 받아 온 커다란 콜라 컵에 어름을 가득 채우고 콜라를 따랐다. 가사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아주 오랜만에 봤다.

12시 반, 최대한 말쑥한 느낌으로 차려입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낮의 도로는 대체로 한산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으로 갈수록 교통 사정은 좀 복잡해졌다. 대방동 공군회관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정문에서 헌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4층 공군전우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 충주의 선임에게 전화 한 통을 넣었다. 선임은, 일이 일찍 끝나거든 충주로 내려와서 사무실에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라고 했지만, 저녁 7시 반 연주회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해 두었다.

사전 협의는 20분 만에 어이없으리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너무 빨리 끝나서 어쩌면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쪽에서는 상관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최근에 국내 개봉했다는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이라도 볼까 싶어 가까운 영등포 롯데시네마를 찾았지만, 낮 시간에는 상영 스케줄이 없었다. 결국 다시 차를 몰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으니 오후 4시였다. 그제야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업무가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다. 기왕이니 서점도 들르고 저녁도 해결하고 천천히 출발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일단 이것으로 행동에 제약은 없어졌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연주회 시작 전까지 무료함을 달래 줄 소설책도 한 권 사고, 좀 이른 저녁도 먹었다. 그 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소설책을 읽었다. 연주회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15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스테판 피 재키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회. 원래 이 연주회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임지 배속을 받은 후, 평일에는 꼼짝없이 충주에 갇혀 지내야 했다. 8월 한 달 동안이야 매일 같이 야근을 했으니 더욱 그랬지만, 비교적 정시 퇴근을 보장 받은 9월에도 평일 저녁 서울로 올라가 공연을 보는 건 근무 오프라도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한 얘기였다. 나는 주말 저녁 열리는 저렴한 연주회들을 찾아다니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런던필의 공연일인 9월 16일, 출장 의뢰가 들어왔다. 아니, 실은 그 언저리 평일 아무 때나 골라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가 16일로 확정지었다. 15일 수원 출장과 함께 처리하면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출장지는 서울, 업무가 일찍 끝나면 그대도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 런던필과 스테판 재키브의 협연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S석 자리를 예매 해 두었다(R석은 매진이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 16일 출장 허락을 받았고, 업무는 일찍 끝났다. 일이 일찍 끝나거든 사무실로 돌아와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지시는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넘겼다.

연주회

연주회 시작 30분 전에 세종홀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주차권부터 샀다. 공연관람객에게 한해서 7시간 주차권을 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주차권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10분에 500원씩의 주차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프로그램북을 구입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진열 해 놓고 팔고 있는 리코딩을 봤는데, 용재 오닐은 <노래>라는 타이틀로 또 다른 소품집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스테판 재키브의 앨범은 이미 구입한 브람스 소나타 앨범이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2층 D블럭 143번 석. 솔리스트들의 생생한 표정이나 연주를 감상하거나 그들의 소리를 듣기에는 그리 좋은 자린 아니었지만,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또 홀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듣기에는 괜찮은 자리였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들은 참 즐겁게 연주를 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먼발치에서도 그들의 표정이 생생히 읽히는 듯 했다. 스테판의 2악장 연주는 기대했던 것만큼 멋졌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소리를 넉넉하게 받쳐준 비올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아직 젊은 만큼, 주위의 다른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을 음악을 위해 온전히 할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배타성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순수하게 연주하게 하며, 오직 음악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인 모양이다.

고전파 협주곡답게 곡은 오케스트라의 긴 제시부 연주로 시작된다. 여느 협주곡이라면 이 때 솔리스트들이 손 놓고 쉬고 있겠지만, 이 협주곡은 다르다. 두 사람은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의 선율을 함께 연주했다. 3악장에서도 보통의 경우 솔리스트의 부분이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종결구를 연주하며 곡을 끝맺지만, 이때도 두 솔리스트는 마무리까지 함께 연주했다. 생각해보면 솔리스트가 주인공인 협주곡인데, 오케스트라만 덩그러니 종결구를 연주하고 곡을 끝맺는 것은 어딘가 민망하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매우 좋아하지만, 3악장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묻어나는 1악장에 이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의 2악장이 연주된 뒤에 이어지는 3악장은, 어딘가 1악장의 재탕 같고 개성이 없이 밋밋한 느낌이다. 2악장에서 한껏 고조된 감정이, 3악장에서 전환되고 발산되었다면 좋을 텐데, 뭔가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선택을 앞두고는 그냥 옆길로 새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두 솔리스트의 훌륭한 앙상블을 끝까지 관람하는 것만으로 흡족한 연주였다.

차이코프스키 5번

좋은 연주라는 것은 어떤 연주일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즐거운 연주’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떤 연주가 즐거운 연주인가 하면, 일단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해야 한다. 나는 이따금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서, 마치 내가 사무 보듯 그저 직업적, 기계적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놀랍지만 솔리스트 중에도 그런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연주자에게 항상 감상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열정과 지적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주회장을 찾는 관객은, 분명 연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음악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주자의 맥없고 사무적인 태도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관객이 그토록 동경하는 세계에 앉아있으면, 프로는 설령 그것이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더라도 관객이 기대하는 바에 맞춰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구석구석을 눈여겨 보다보면, 연주회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사람들의 연주가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할 수 없다.

악장부터 맨 뒷자리의 연주자까지, 적어도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만큼은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다는 듯한 적극적인 태도. 그것은 연주회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연주회에 빠져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먼저 연주자들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런던필의 클라리넷 연주자. 마치 메트로놈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온 몸으로 연주를 했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 지극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풍채는 거의 지휘자급이었는데, 그저 음악이 너무 좋다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플루트의 음색은 반짝였다. 금관 쪽에서는 큰 실수가 한 번 있었다(트럼펫인지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의욕이 앞선 결과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연주를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또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에게서 순간을 즐기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자연히 관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1악장의 연주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다. 클라리넷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악장인데, 연주자의 액션이 정말 컸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 해 주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2층의 먼 객석에서도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2악장의 호른 솔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한 바탕 운명의 동기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이어진 바이올린의 노래는 황홀했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서는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한 차례 큰 실수가 있었는데, 금관 쪽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빰’이 들렸던 것이다. 실수는, 곡에 대한 집중도를 한 순간 완전히 깨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이 잘 갖추어진 탄탄한 연주에서라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연주회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크게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찌릿하는 전율을 느끼며, 무언가 격렬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연주회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2악장 왈츠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3악장을 연주했다. 메인이 교향곡 5번이었는데, 4번의 한 악장을 통째로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것은 의외였지만, 4번의 3악장은 길이도 5분 남짓으로 짧을 뿐만 아니라 현악기군 전체가 활을 내려놓고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대단히 재미있는 악장이라 앙코르 연주로서 효과는 만점이었다.

연주회 후

응어리져 있던 것을 후련하게 발산하고, 개운한 상태에서 연주회장을 빠져나왔다. 멋진 저녁.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빼려는데, 출구 쪽으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다. 15분가량을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차를 다시 주차시켜놓고 연주회 전에 사둔 소설책을 들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슬쩍 보니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사인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두 연주자의 사인은 일전에 받아 두었으므로, 대기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심야까지 영업을 하는 커피 빈에 들어가 티라미스 케이크 한 조각과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소설책을 읽으며 먹었다.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서울 시내에는 많은 차들이 돌아다녀서 예상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플레이 리스트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 6번을 올려놓고 재생시켰다. 느긋하게 주유를 하고, 혼잡한 서울 시내를 인내심을 가지고 빠져나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내일은 다시 출근. 이전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 이 꿈같은 하루는, 그 반복적인 하루하루와의 부대낌을 몇 달은 더 지속할 수 있는 활기를 부여해 주었다.

2010/09/19 22:54 2010/09/1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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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화와 함께하는 가족음악축제

오래되어서 이미 리뷰를 쓰는 의미는 퇴색되어버렸지만, 일단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쓴다.

8월. 덥거나 비 내리거나. 아니 숨 막힐 듯 더우면서 항상 비는 내리고 있었다. 새해 벽두를 강타한 전국 대폭설부터 시작해서 유난히 기상 변덕이 심한 올해. 지긋지긋한 장맛비와 뜨거운 공기에 만물이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가까워서야 퇴근을 하는 버거운 교육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지칠 뿐인 8월, 위안거리가 되어준 것이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가족음악축제. 8월 한 달 동안 매주 주말마다 오케스트라 공연 하나씩을 무대에 올렸는데, 전석 1만 5천원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주중에는 수면도 제대로 못 취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지만, 주말이면 모든 것을 잊고 연주회장을 찾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물론 연주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인 유정아라는 사람이 서곡 연주가 끝나면 등장해서 당일 프로그램에 대해 약간의 해설을 했는데,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는 내용 이상의 것을 언급한 게 거의 없다. 그럴 거라면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켜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해설 중에는 무대 뒤편에 빔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워놓았는데, 작곡가 생몰 연대 등이 엉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가령 베토벤의 사망 시기를 1820년으로 적어 놓는다든가, 베버의 경우에는 전혀 엉뚱한 연대를 적어 놓기도 했다(아마 막스 브루흐와 혼동을 한 것 같았는데). 연주와는 무관하지만 이런 실수 하나하나가 전반적인 연주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연주 시작 전, 해당 곡의 작곡가 생몰 연대부터 틀려버리는데, 대체 관객에게 어떤 진지한 감상의 자세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1. 8월 8일 충남교향악단

지휘/구모영 바이올린/유시연

모차르트-오페라 <코지 판 투테> 서곡

브루흐-바이올린 협주곡 1번

베토벤-교향곡 8번

지휘자 구모영. 내가 유포니아에서 첫 연주회를 섰을 때 지휘를 맡아주었던 분이다. 시종 진지하고, 연습 중에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 일본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 그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연습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당시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서는 훨씬 부드럽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연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보니, 이 지휘자 선생님이 그리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지한 만큼 꼼꼼했다. 전체 연습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학교로 찾아와 파트 연습을 지도해 주는 등, 그 성실함이 돋보였다.

연주회는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으로 발랄하게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훈련 중 특별외박 나와 본 연주회 이후 약 석 달 만의 연주회라, 단지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는 자체만으로 황홀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중에 ‘딱 한 곡만 유명한 작곡가’란 주제로 글이라도 써 보면 어떨까 싶은데, 실현된다면 브루흐를 그 안에 넣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 사실 브루흐라면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나 콜 니드라이 같은 유명한 곡들이 있지만, 널리 알려지고 연주되는 그의 대표작이라면 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꼽을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3악장만의 선율만이 너무 유명하고, 콜 니드라이는 아무래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기에는 지명도가 약하다. 그러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만큼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상당히 자주 연주되는 만큼, 바이올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 접하게 되는 음악이다.

1악장은 상당히 장중하면서도 바이올린의 매우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구성이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예견케 하는 다소 민요적인 느낌의 선율이 간간히 들려오는 아름다운 2악장. 그리고 절로 어깨들 들썩이게 만드는 신나는 3악장. 이제 와서 연주가 어땠는지 논하는 게 의미가 없겠지만, 약간 거친 면은 있어도 흡족한 연주로 기억한다.

이 날의 메인 곡은 베토벤 8번이었다. 6번과 같은 F major로 작곡된 곡. 6번에 비해 길이가 짧다는 의미인지, 베토벤은 친히 “My little Symphony in F”라고 언급한 바 있다. 모차르트 풍의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한 마디로 유쾌한 음악의 베토벤 판이라고나 할까, 심각하지 않고 흥겨우면서 베토벤다운 강렬한 리듬과 힘이 깃들어있는 음악이다. 비록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5번, 6번, 7번 다음 9번으로 이어지고 말지만…….

앙코르 곡은 따로 준비되지 않았다. 대신 8번의 4악장 일부를 다시 연주했는데, 다시 들려줘도 좋을 만큼 준비가 잘 됐다는 뜻일까. 구모영의 지휘는 상당히 깔끔했고, 오케스트라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2. 8월 14일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최수열 피아노/박수진

베버-오베론 서곡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4번

시벨리우스-교향곡 2번

가족음악축제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 연주로 클래식에 대한 흥미 유발”을 기치로 내걸고 있었는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일까?

연주회에 집중하기에는 나는 격무로 너무 지쳐있었고,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결국 연주회에서 졸아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 오베론 서곡부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까지는 거의 제대로 듣지를 못 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도 집중해서 듣다가 간간히 정신이 다른 차원의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연주회장의 분위기도 안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이라 예술의 전당에는 주차할 공간조차 부족했고, 연주회장 안에는 초등학생들이 넘쳐났다. 세상을 온통 자기중심적으로 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어린 녀석들. 연주회장에서 버젓이 휴대전화를 꺼내놓고 만지작거린다. 그 불빛은 정말 거슬린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놓는 것이 싫증이 나면 연주를 조금 듣는 척하다 이내 잠들어버린다. 자는 것에 관한 한, 이날만큼은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4악장이 연주될 때만큼은, 이 하나로 초점이 모아지지 않던 부사한 객석에도 순간 통일된 평화의 순간이 찾아오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지적 감수성의 수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뿌리는 그 감동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놀라운 집중의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었지만.

3. 8월 22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이종진 첼로/홍성은

코다이-갈란타 무곡

드보르작-첼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심포닉 댄스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코다이라는 작곡가 자체가 일반에는 생소한데, 좀 규모가 있는 음반 가게를 가더라도 코다의 녹음으로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바르톡과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지만, 사실 작곡가로서보다는 음악 교육자로서 더 유명했고,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상 모든 첼로 협주곡들 중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곡. 그러나 연주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라흐마니노프. 생각해보면 그는 상당한 대작곡가였다. 장기인 피아노 협주곡 분야에서 걸작 2번과 3번을 비롯하여 네 개의 작품을 남기고 있고, 교향곡도 세 곡이나 썼다. 심포닉 댄스는 교향곡 3번 이후에 작곡된, 그의 마지막 교향악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향 받아 독특한 리듬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 한 것 같다. 뭔가 쿵쾅거리다가도 항상 음악 같은 음악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게 라흐마니노프다운 것이지만.

편성에 알토 색소폰이 있어서,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색소폰이 연주되는 색다른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이상 음악축제 기간에 열린 여섯 번의 공연 중 세 번의 공연을 관람했다. 저렴한 가격에, 기분 전환하기에는 적절한 기회였다.

2010/09/19 00:06 2010/09/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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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피 재키브

내가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독 한국에서 그의 미들 네임을 꼭 표기하는 것은,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에게 ‘피’라는 이름을 물려준 사람이 한국 수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피천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천득의 수필에는 그의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스테판 재키브는 바로 그 ‘서영이’의 아들이다. 사람들은 피천득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그 따스함을 스테판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서 찾으려 하는 듯하다. 문학과 음악은 언연히 다르지만, 한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문인의 감성이 그 외손자에게로 이어져서 이제 그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켜쥐는 음악을 들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천득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호와 이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관심은 별 관계가 없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고, 그에게 청중을 집중시키는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리사이틀 소식이 들렸을 때, 주저 않고 표를 샀다. 그 리사이틀에서 그는 브람스의 FAE 소나타와 3번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5번과 생상스의 카프리스를 연주했다. 브람스 소나타 전곡 녹음을 마친 후인만큼, 그의 연주는 여유로우며 확신에 차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들뜨거나 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중후하다고 느껴질 만큼 침착하게 연주했다. 내공이 있다고나 할까. 생상스의 카프리스는, 아마도 테크닉적으로도 전혀 밀릴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 브람스도 생상스도 좋았지만, 청중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쇼팽의 녹턴 20번이었다. 이 연주자가, 청중의 심장을 서서히,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움켜쥐었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다시 피가 돌도록 놓아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연주였다.

피천득과 닮은 점? 글쎄. 돌이켜보면 피천득의 수필이 마냥 따스한 정감이 넘쳐흐르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필은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정한 것이 사람의 눈 아니던가. 그 담담한 필체로 본 것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할 때,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테판 재키브가 때론 감성이 넘쳐흐르는 연주를 하지만, 그는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브람스를 잘 연주하는 젊은이라니,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이미 비올라계의 슈퍼스타이며,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인 중의 한 명이다. 나는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보러 간 일이 없다. 다만 딱 한 번, 무라지 카오리의 기타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 게스트로 등장하여 무라지 카오리와 그 날의 메인곡이었던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한 것을 들은 적은 있다. 솔직히 그와 무라지 카오리의 연주가 잘 어우러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연주회의 주인공은 무라지 카오리였지만, 이 곡을 연주할 때 만큼은 리처드 용재 오닐 쪽이 훨씬 여유롭고 확신에 차 보였으며, 리드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순박해 보이는 인상, 다소 어눌한 말투(아마 이건 한국어가 서툰 데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협주곡이나 소나타 같은 대곡의 녹음 보다는 소품집으로 인기 몰이를 한 탓도 있어서 그가 광고하는 커피 향만큼이나 부드럽고 유들유들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이지만, 나는 그의 연주가 마냥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정열적이며 가차 없는 연주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고전파 시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초인적인 기교를 자랑하는 솔리스트들과 비현실적 열정을 불사르고 싶어 했던 작곡가들이 만난 낭만파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고전파 시대부터 낭만파, 이후 국민악파 시대까지 많은 협주곡들이 작곡되었지만, ‘이중 협주곡’이라는 형식의 곡은 그리 자주 작곡되지 않았다. 이런 형식은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에서 발견되는데, 여러 악기군에 돌아가며 솔로 부분을 연주하도록 하는 콘체르토 그로소가 그런 양식이다. 콘체르토 그로소 형식 안에서 솔로 부분을 연주하는 그룹을 솔로 그룹 혹은 콘체르티노라고 부른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할 동안 손을 놓고 쉬는 게 아니라, 함께 합주를 하다가 자기의 솔로 부분이 있을 때에만 솔리스트로 변신을 한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서도 이런 콘체르토 그로소 양식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원래 악보상에는 협주자도 솔로 파트 외의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주하도록 되어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은, 이중 협주곡 중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힘든 희귀한 조합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바이올린족의 악기 중에서 서로 가장 가까운 친족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올린과 첼로의 대비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왜 하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을 택했을까.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해는 1779년. 이 시기는 모차르트가 1777년부터 시작한 유럽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도 방문했는데, 당시 만하임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연주 테크닉을 선도하는,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였다. 즉각적인 영감을 워낙 순식간에 곡으로 구체화시켜버리는 모차르트이니만큼, 이 기간의 여행을 통해 새삼 비올라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다.

3악장 구성이며 연주 시간이 3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1악장과 3악장은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함이 묻어나지만, 2악장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롭고 쓸쓸하다. 1악장에서는 두 솔로 악기에 완전히 균등하게 비중이 분배되었다. 하나가 달려가면 다른 하나가 쫓는 숨바꼭질 같은 느낌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따라 잡으면, 이번에는 좀 전과는 또 다른 호흡, 다른 보폭으로 새롭게 뜀박질을 시작한다. 시종 즐거운 분위기에서 놀이하듯 곡은 흘러간다.

2악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1악장이 마냥 즐거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면, 2악장은 잔혹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이올린은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것 같고, 비올라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타이르는 것 같다. 이 2악장의 슬픈 대화를,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과연 어떻게 표현 해 줄지, 기대된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하면 베를린 필을, ‘오스트리아’하면 빈 필을 떠올린다. 음악의 본고장 유럽이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각 나라의 왕이며 제후들은 각자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거느렸고, 수많은 작곡가와 전문 연주자들을 배출했다. 독일의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어디 베를린 필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고, ‘지존의 존재’를 바라는 법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최고 오케스트라는? LSO인가? LPO인가? RPO인가? 아니면 BBC? 당최 구분도 가지 않는 이름들이다. LSO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PO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덤으로 RPO는 요즘 위상이 많이 추락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말하고, BBC는 물론 방송국 BBC의 교향악단이다(KBS나 NHK 교향악단을 생각하면 된다).

20세기에 비틀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음악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자괴감에 젖어있던 영국은, 역설적으로 유럽 대륙 음악의 가장 열성적인 수요자였다. 그런 만큼 영국 내에는 굴지의 오케스트라들이 많지만, 그 어느 하나도 베를린 필이나 빈 필처럼 세계인을 압도할 명성을 지니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은(한 마디로 ‘고만고만’하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오케스트라의 대중적 인지도나 잡지에 오르내리는 순위표는 호사가들이나 집착하고 좋아하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오케스트라들은 깊은 역사를 지녔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잘 계승해 오고 있다(LPO는 다소 파격의 길을 걷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들의 유명세가 아니다. 지휘자의 이름도 아니다. 그들 공연의 티켓 값도 아니다. 오직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오케스트라를 평가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하룻밤에 20만원 돈을 지불해가며 듣기에는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비싼 티켓 값이 황홀한 감동을 선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기만적인 감동을 부르짖으며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리 돈의 위력이 막강하더라도 감동을 억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티켓 값이 비싸든 싸든, 그건 하나의 가능성을 구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LPO가 좋은 오케스트라인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다. 설령 그 명성을 믿는다 하더라도, 연주회 날 정작 감동적인 연주를 선사할지 어떨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몇 번의 무대에 섰고, 꽤 여러 곡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라면 역시 첫 연주회를 꼽을 수밖에 없겠지만, 가장 즐거웠던 연주회를 꼽자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마지막 연주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한심할 정도로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악기 연주 실력이 늘지 않는데, 그래도 마지막 연주회 때는 첫 연주회 때보다야 실력이 향상 된 상태였다. 부분부분 스스로도 연주하는 기쁨을 조금씩 느끼며 참여했다.

한 번이라도 연주를 해 본 곡은, 언제 들어도 남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그게 음악의 재미겠지만, 알 면 알수록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연주를 기대해 본다.

2010/09/14 01:07 2010/09/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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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렇게 되도록, 운명을 관장하는 누군가의 종이 위에 쓰여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개인의 처신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가측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은, 항상 이중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전날, 선임이 몰고 가던 내 차가 도로 위에 서버렸다. 만일 차가 말썽을 일이키지 않아서, 차를 찾으러 가기 위해 40~50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2부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을까? 혹은 목요일 저녁의 우연한 회식이 아니었더라면 내 고물 차는 주말 저녁 정체를 빚는 고속도로 위에 떡하니 멈춰 서서 정체를 더욱 극심하게 만들며 57분 교통정보에 ‘고장 차량’ 소식을 띄우게 되었을까?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주행 중에 목숨을 걸고 카드를 물린 하이패스 단말기. 한 번 충전하면 두세 달은 끄떡없다던 녀석이, 잭을 제거한 지 1주일도 안 되어 방전되어버렸는지 침묵이다. 수리를 받았지만 여전히 상태 불량인 차. 오르막길에서는 아무리 액셀을 힘껏 밟아도 속도가 80km를 넘지 못 한다. 정체 구간에 들어서니 그나마도 속도를 낼 수 없다. 해가 기운다. 하늘은 눈부신 주홍빛에서 점차 깊은 바다의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해간다. 이윽고 잿빛이다. 내 마음도 그렇게 어두워져간다.

서울은 변함이 없다. 주말 저녁의 극심한 시내 교통 체증까지도. 1부 공연이 이미 끝났을 시간이다. 기름 게이지가 바닥을 친다.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인공의 불빛들만 환하다.

생상스 3번 2악장이 들려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단히 닫혀있다. 나는 우측 복도를 통해 무대 뒤편 연주자 대기장소로 갔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악기 케이스. 조금 전까지 이곳을 가득 메웠을 긴장의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음악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3악장, 시작이다.

무대 옆벽의 뒤편에 서서, 작은 틈새로 무대를 엿보았다. 힘차게 타점을 내리찍는 지휘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지휘자의 모션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휘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악장의 모습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활이 상하로 춤춘다. 뒤에서 바라보니 그 높이가 제각각인 것이 좀 많이 티가 난다. 피아노 소리도 들려온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전자 오르간은 바로 눈앞에 있다. 연주자는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풍부한 C 코드의 울림! 4악장 Maestoso(사실은 2악장의 두 번째 파트) 시작이다.

도취를 걷어내고 바라보면, 현실의 모든 것들이 하찮아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저 안에 있을 때, 함께 땀을 흘리고 연주하며 동경에 가득 차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던 때와 교하면, 이 날 이 자리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솔직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 ‘실체’를 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이고, 추억과 상상력이 부여하는 환상은 연주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어떤 감동의 파장을 더한다. 그래, 당신들에게 열정이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가득 찬 무대, 숨죽인 객석, 그리고 텅 빈 연주자 대기실에서 무대 벽에 기댄 채 좁은 틈으로 다른 세상을 엿보는 관객 한 사람. 이것은 썩 괜찮은 그림이다. 나는 취하기 위해 왔으니, 잔을 들어 올리겠어. 이것은 편파적이지만, 술 취한 사람은 오직 감정에만 솔직하니까.

브라보!

2010/09/05 01:44 2010/09/05 0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