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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시청하는 Arte TV의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바흐 페스티벌. 지난 토요일에는 바흐 페스티벌 공연 중 하나인 ‘바흐를 위하여’를 보고 왔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바흐의 칸타타를 노래했고, 메튜 홀스가 지휘하는 레트로스펙트 앙상블(Retrospect Ensemble)이 연주를 했다.

레트로스펙트 앙상블의 전신은 1980년에 창단된 영국의 고음악 연주단체 킹스 콘소트(Kings Consort). 20년 넘게 이 팀을 이끌어온 로버트 킹이 2007년에 물러나고, 2009년에는 이름까지 레트로스펙트 앙상블로 바꿨다고 한다.

고음악 연주단체 답게 악기도 바로크 시대 악기를 사용한다. 하프시코드(쳄발로)와 바로크 바이올린, 바로크 오보에와 바로크 바순 등…….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자리는 맨 뒷 열 좌측에서 두 번째 자리. 사실 티켓링크 쪽에 더 좋은 자리가 여럿 남아 있었는데, 티켓링크의 그 팝업 플래쉬 예약 시스템이 내 컴퓨터에서는 지랄 맞게 느려서 좌절. 티켓 한 장 예약하는 데 거의 30분쯤 걸렸다. 겨우겨우 끝마치고 결제 하려는데 무슨 보안 프로그램 안 깔렸다면서 액티브액스 떠주시고 처음부터 다시. 욕을 바가지로 퍼부은 다음 인터파크에서 예매해버렸다.

연주 프로그램은

칸타타 <바로 그 안식일 저녁에> BWV 42 중 신포니아

칸타타 <내게 주신 복에 만족하나이다> BWV 84

<오보에 다모레와 현을 위한 협주곡 A 장조>, BWV 1055

-인터미션-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 C장조> BWV 1066

칸타타 <이제 사라져라, 슬픔의 그림자여> BWV 202

사실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 하나 바라보고 간 연주회였다. 오보에 협주곡은 제목만 오보에 협주곡이지, 원래 악보는 소실되어서 주로 쳄발로 협주로 연주된다. 그런데 이 날은 정말 오보에 협주로 연주를 하더라. 하지만 솔직히 오보에의 연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 가장 발전한 악기가 관악기라는 것을 절감할 만큼, 바로크 오보에의 소리는 현대 오보에의 그 청아한 소리 대신 어딘가 짓눌린 듯한 갑갑한 소리가 났다. 악기의 한계를 제쳐두고라도 연주자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났다고 볼 수도 없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실수가 있었던 것. 엉뚱한 것 가지고 트집 잡을 생각은 없지만, 자기 쉬는 부분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거만한 태도를 보일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바로크 시대의 오보에. 현대의 오보에와는 생김새부터가 많이 다르다.>

BWV 42 신포니아는 이날의 기악 음악 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다. 하기야 성악곡 분야에 대해서는 통 무지한 나이니,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참고로 덧붙이자면, 바로크 시대에 ‘신포니아’라고 하면 오페라나 칸타타 같은 성악극의 시작 부분이나 중간에 삽입되는 기악 음악을 의미했다. 요즘 말로 옮기면 ‘서곡’이나 ‘간주곡’ 정도가 될까. 곡은 좀 심심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니까, 낯선 것도 있고.

그래도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은 상큼했다. 또 지휘와 연주를 같이 한 것을 처음 봤는데, 이것도 인상 깊었다. 건반 악기 연주자들에 한해서 이렇게 지휘와 연주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고음악 연주단체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것을 ?き振り(히키후리)라고 한다. ?く는 피아노 등을 ‘치다’란 의미이고, 振る는 지휘봉을 ‘흔들다’라는 의미에서 ‘지휘하다’의 뜻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합쳐서 ‘치며 지휘하기’가 된다. 영어나 한국어에 이런 표현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관객을 등지고 쳄발로 앞에 앉아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한편, 지휘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번 연주회의 수확이라면 역시 소프라노 임선혜의 칸타타였다. 성악은 별로 즐기지 않아서 모두가 생소한 곡들이었지만, 과연 명불허전이라 음색이 고울 뿐만 아니라 기교도 완벽해서 처음 듣는 곡들임에도 감명을 받았다.

이날은 연주 실황이 라디오로 방송 되었는지, 객석 뒤편에 설치된 데스크에서 진행자가 연주 사이사이에 계속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연주회는 주로 큰 홀로 다녔고, 체임버 뮤직을 실황으로 즐길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이런 분위기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연주회까지 찾아 올 정도 관객들이니 매너도 좋았고 말이다.

100% 만족한 연주회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좋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

2009/10/19 03:55 2009/10/19 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