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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집 앞마당에 내걸린 잭오랜턴


Happy Halloween!!!

‘할로윈’ 앞에 ‘해피’라는 수식어가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다.

모든 사령(邪靈)들의 날인 ‘할로윈’이 모든 성인들의 날인 ‘만성절(11월 1일)’ 전날인 것이 재밌다. 사실 ‘Halloween’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라는 뜻의 ‘All Hallows Eve’가 줄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밤중에 온갖 잡귀들이 인간 세상으로 나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동이 틀 무렵부터는 다시 성인들이 세상에 고요와 안정을 찾아준다는 것일까.

이런 성(聖)과 사(邪)의 뚜렷한 대비 때문에 할로윈 시기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1940년, 디즈니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다. 총 8곡의 클래식 음악에 그 음악의 성격을 잘 살린 애니메이션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일종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인데, 비록 공개 당시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 했지만,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명작 애니메이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곡이 바로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다. 해설자는 ‘profane’과 ‘sacred’의 대비라는 표현을 썼다. 말 그대로다. 보름달이 뜬 밤, 하늘은 온통 요기(妖氣)로 가득하다. 불협화음이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산 정상에서 마왕(魔王)이 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로 산하(山下)를 뒤덮어 잠들어있던 귀신들을 깨운다. 기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 모두 산으로 모여들고, 이윽고 산에 피어오른 지옥의 화염을 둘러싸고 광란의 축제가 시작된다. 마왕은 지옥의 불길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귀신들을 희롱한다.

그러나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멀리 마을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지옥의 불길은 순식간에 잦아들고, 귀신들은 움츠러든다. 밤의 축제가 끝났다. 귀신들은 흩어지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손에 등불을 밝힌 순례자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성절은 835년에 생긴 이래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축일로 남아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친숙한 것은 ‘할로윈’이 아닐까 싶다. 귀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위인도 아닌 ‘성인’이 비기독교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인데 비하여, 잡귀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고, 또 잡귀들에 대한 위령제의 성격을 띠는 제식이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할로윈의 개념 자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Mussorgsky (1839 - 1881)

Night On Bald Mountain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장난스럽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할로윈’보다는, 차라리 ‘파우스트’에 묘사된 ‘발푸르기스의 밤(4월 마지막 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축일인 ‘성 요한 축일 전야제’인데, 이 날 역시 명칭과 날짜만 다를 뿐 ‘발푸르기스의 밤’이나 ‘할로윈’과 성격이 같다. ‘축일의 전야’라는 것은 할로윈과 판박이고, 마귀들이 ‘트라고라프’라는 바위산 정상에 모여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는 것은 ‘발푸르기스의 밤’ 전설에서 산 이름만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이 곡은 본래 무소르그스키의 미완성 오페라인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삽입될 예정이었던 곡이라고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고, 작곡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뒤로도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서 도중에 쓰다가만 곡들이 여럿이다. 역시 천재(天才)가 있었던지 착상이 뛰어났지만, 빈약한 이론 지식 때문인지 착상한 멜로디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완벽히 완수하지 못 한 경우가 빈번하다. 한편 오케스트레이션의 귀재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나 라벨 같은 이들이 무소르그스키가 생전에 남겨놓은 음악의 파편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현악곡으로 다시 편곡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벨이 관현악 판으로 편곡한 ‘전람회의 그림’ 등이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을 했다.

2009/10/31 06:49 2009/10/31 0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