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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나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니. 그만큼 생활이 바빴던 거라고 생각하여야 할까. 그 사이 5일 일정으로 통역 수행을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한일 중급 장교 교류회의로, 대령의 인솔 하에 중령 두 명과 소령 두 명 등 총 5명이 방한했다. 그 동안 2성이나 3성 장군을 주로 모셔왔으니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부담 없는 행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역이 쉬운 일은 아니니, 조석(朝夕)으로 찬바람이 불고 낮에는 더운 봄 날씨 속에 서울, 대전, 청주, 김해를 오가는 일정을 따라다니다 결국 목도 상하고 몸살도 나고 말았다. 그나마 본부는 출장비를 잘 챙겨줘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5일 수행에 출장비만 대략 20만원이다. 물론 통역이라는 엄청난 정신노동의 대가치고는 소략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답사

날씨도 제법 따뜻해졌으니 슬슬 출사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볍게 몸 풀기로 몇 군데 답사를 다녀왔는데, 2주 전에는 창덕궁을 다녀왔고 지난 주 화요일에는 공주시를 찾아서 공산성을 둘러보았다. 공주까지 간 김에 무령왕릉도 들렀으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 했다. 저녁 식사는 공주대학교 앞에서 먹었는데, 3월 신학기인 만큼 대학가는 활기에 넘쳤다.

도서관

요즘에는 퇴근 후에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계룡대 근처에 있는 엄사 도서관이라는 곳이다. 5시에 칼 퇴근해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6시 즈음에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8시까지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면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간다.

바이올린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노은동의 연습실에서 바이올린 연습. 올해 초에 시작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1악장을 3개월 째 붙잡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 덕택에 연주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역시 시간과 노력 앞에 버티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선생님도 칭찬을 많이 해준다. 연습이 끝나면 이제 운동하러 간다.

복싱

10시 40분부터 12시까지는 장대동의 체육관에서 복싱. 복싱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살이 조금도 빠지지 않다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성실하게 다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도이폐(中道而廢)하지는 않았다. 이제 비로소 조금 어깨에 힘이 빠지고 펀지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한바탕 뛰고 땀을 쭉 빼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 비록 체중은 줄지 않았어도 예전보다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에서 등산을 갔는데, 길이 험한 천왕봉 등반이었지만 다음 날 가벼운 근육통 하나 없었던 걸 보면 평소 전신의 근육을 골고루 쓰고 있는 모양이다. 제대할 때까지는 그만두지 말고 착실히 운동하자.

도시락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벌써 새벽 1시에 가깝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안친다. 다음 날 싸갈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다. 밑반찬이야 대부분 주말 중에 만들어 놓으니, 반찬 통에서 도시락 통에 옮겨 담기만 하면 그만이다. 가끔 특별한 반찬이 먹고 싶을 때는 생선 한 도막 굽기도 한다.

향후 계획

뉴질랜드

여행 허가도 받았고 여권도 무사히 발급 받았다. 항공권도 이미 예매했다. 4월 7일에 출국하여 15일에 귀국하는 8박 9일의 일정으로 뉴질랜드에 다녀온다. 부모님이 계시는 오클랜드 일대와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고 올 예정이다.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초점 거리 10-20mm의 초광각 렌즈도 거금 40만원을 들여 장만했다.

중국어

본부에 영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어 통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선배가 한 명 있는데, 중국어를 제법 잘 한다. 이 선배와 함께 중국어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나 선배나 일이 그리 바쁘지 않은 한량들이라서 근무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30분 정도라도 공부를 하기로 했다. 제대하기 전까지 기초 회화는 가능할 정도로 실력을 쌓는 게 목표다.

서예

1주일에 한 번 공주에 있는 서예 교실을 찾아 서예를 배우려고 한다. 단순히 붓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고전 텍스트를 본 삼아 그것을 베끼면서 글씨 연습도 하고 고전 공부도 하는 곳이라 한다. 텍스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역시 사서(四書) 중 입문서인 대학(大學)부터 시작할까 한다. 아마 너무 바쁘지만 않으면 다음 주 중에 첫 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2012/03/24 15:45 2012/03/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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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하고도 반 개월 만에 레슨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 겨우 두 번째나 세 번째 레슨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간 개인 연습을 열심히 해둔 덕택으로, 소리가 많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다.

감히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대곡을 건드려 보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대체 왜 이 지난(至難)한 곡을 연습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악기 연주가 지금처럼 취미 수준에 머무르는 이상 여기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너무 제한되어 있고, 결국 성취의 한계도 너무 빤하다. 그런데 브루흐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 아닌가.

2012/02/23 01:10 2012/02/2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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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明天我搬家。
ming t?an w? b?n j?a?
내일 나는 이사한다.

12. 我明天去???。
ming t?an w? qu ban q?angzheng?
나는 내일 비자 신청을 하러 간다.

13. ?我一半,行??
g?i w? yi ban, xing ma?
나에게 반을 줄 수 있나요?

14. ?的?法不?。
n? de ban f? bu cuo?
너의 방법이 좋다.

15. 我???互相?助。
w?men y?ngag?i hu x?ang b?ng zhu?
우리는 반드시 서로 도와야 한다.

16. ????我。
qing n? b?ng b?ng w??
나를 도와주세요.

17. ?求是??人最喜?的??之一。
bang qiu shi han guo ren zui x?huan de yun dong?
야구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이다.

18. 我吃的包。
w? ch? de b?o?
배 부르게 먹었다.

19. ??少女孩?在抱着一??娃娃。
zheu ge sh?o nuhaier baozhe y? ge yang wa wa?
이 어린 소녀는 인형을 안고 있다.

20. ??在看??。
baba zai kan bao zh??
아버지는 지금 신문을 보고 계신다.

2012/02/23 00:43 2012/02/2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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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的手机?好看?!
n? de sh?u j? zh?n h?o kan a!
네 휴대폰 정말 예쁘다!

2. 他的?子?矮。
t? de gezi h?n ?i?
그의 키는 매우 작다.

3, 我??。
w? ai n?。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4. ?是中?人?。
n? shi zh?ng guo ren ba?
당신은 중국인이죠.

5. ????全力做好每件事。
n? y?ngga? jin quanli zuo h?o m?i jian shi?
너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6. ?是一把雨?。
zhe shi y? b? y? s?n?
이것은 (하나의)우산이다.

7. ?位是我??。
zhe wei shi w? baba?
이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8. 不要百百浪???了?
bu yao bai bai lang fei shi j?an le?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라.

9. ?白天干什??
n? bai t?an gan shenme?
너는 낮에 무엇을 하니?

10. ?每天?点上班?
n? m?i ti?n j? di?n shang b?n?
너는 매일 몇 시에 출근하니?

2012/02/22 00:33 2012/02/2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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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2세기 동안 서구 문명이 세계를 휩쓸며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켜 놓았는데, 장차 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는 시대가 펼쳐지면 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어떤 문명적 진보를 선사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중국의 저 십 수억 인구를 배경으로 장사나 해먹는, 돈 자랑하고 힘 자랑하는 깡패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위치는 중국이라는 조폭 우두머리 아래에서 콩고물이나 주어먹는 조폭 똘마니 정도가 되어버리겠지.

만일 우리가 말하는 세계의 주도권이나 패권이라는 것이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힘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시아의 패권은 오히려 세계사적인 불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라는 것은 제국주의 같은 오점, 공산주의나 파시즘 실험이 낳은 과도한 폭력으로 많은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투표권을 행사하며 우리의 정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는 것, 사소하게는 이렇게 자유롭게 입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거주하는 이 삶의 양태까지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과연 아시아의 세기는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중국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세계의 패권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제국주의적인 야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 한 일본이, 이 새로운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해 나가서도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더더욱 이 두 나라가 더러운 과거라고 하는 분열과 불화의 씨앗을 안은 채 파워 게임에 경주하다가 결국 힘 있는 어느 한 쪽의 승리로 끝나는 게임을 쳐다만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은 짱개라 욕하고 일본은 쪽바리라고 욕하는 사이에 상황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어떤 사명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 주도해 나갈 힘이 아시아로 넘어오는 이 시점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역할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한국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일본에 대하여 철저한 역사적 반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배와 이념 대립으로 인한 민족상잔의 내전,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서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일당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민주화의 선배로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이런 위치와 역할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 하고 단지 기업의 금력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만 주변 나라와 경쟁하려고 들고, 우리의 우위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우리의 복장은 이미 충분히 가볍다. 헐벗은 연예인들이 더 벗고 설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무를 즐길 자유를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방종하게 놀이의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닮을 필요는 없다. 엔터테인먼트는 돈 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에, 나아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이 고작 그런 연예인들의 춤사위뿐이란 말인가. 보다 차원이 높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2/02/21 01:02 2012/02/2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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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기회만 있으면 약자를 약탈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제도라는 제어 장치가 있어야 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선거 제도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주의란 권력구조를 구성하는 절차적 방법론의 하나이다. 한 때는 그 절차의 확립 그 자체만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다. 당시에는 민주화가 목표였다. 민주화를 이룩하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그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은 1인 1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 땅의 민주화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끝나지 않은 것은 민주화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높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미완의 과정 속에서 경주하고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민주화 이후에 추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인 1표의 권리를 얻었지만, 아직 그걸 무엇을 위해 써야할지를 모른다.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권력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돈이 위력적인 것은, 보통 금력으로 인력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력으로도 지배할 수 있고, 이념으로도 지배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권력이란 다수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소수가 누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수가 소수에게 굴복하는 것은 분명 모순된 역학구조이다. 혁명가의 눈에는 이것이 필히 다수의 혁명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구조로 보였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소수의 권력자란 다수가 힘의 균형과 안배, 조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이 안에서 구조적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보았다.

선거라는 절차는, 소수의 권력자를 투표권을 가진 민중이 직접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직접 선택한다고 하는 이 전제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에 대한 완벽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민주 사회의 지도자는 기실 과거 그 어떤 왕이 지녔던 권력보다도 더 막강하고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다만 그 권력을 가지고도 통치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울 수 없는 것은, 그 권력에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선거철은 돌아오게 되고, 이를 통해 낡은 권력은 심판대에 오른다. 이 억제와 자정의 능력이야 말로 민주적 선거라는 절차가 지니는 가장 찬란한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고, 그것을 사용하게 한 다음, 잘못 사용하면 그 힘을 다시 뺏어오면 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정화 작용을 방해하는 수많은 눈가림식 장애들이 있다. 이를 테면 케케묵은 색깔론, 이념대립, 국가 위기론 따위 말이다. 권력의 오용을 목도하고도 끊임없이 그 부도덕한 권력이 재생산되도록 국민을 오판하게 하는 세력들을 우리는 한 번도 시원하게 청산하지 못 했다. 나는 이런 부도덕한 썩은 무리들이 현 정부나 여당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둘러싸고 있는 벌레 무리들은 정계, 재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헛소리에 호도되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화 그 다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이루어야 할 목표는 깨끗하고 정당한 권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다. 법률에 위배되고, 나아가 도덕률에 위배된 채 부도덕하게 부당 취득된 권력과 부를 시민들이 빼앗아 재분배하는 것은 결코 빨갱이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정치인이나 재벌은 양반 같은 신분 귀족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다. 이처럼 불법적인 권력 및 자본의 독점이 항구적인 상태로 고착되는 것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용인될 법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순환되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2012/02/17 01:15 2012/02/1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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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초까지만 해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활력에 넘쳤다. 하루 5시간을 자면서 퇴근 후에 바이올린 연습과 복싱을 병행하고, 매일 도시락을 만들고, 점심시간과 잠 잘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자투리 시간에 키케로 서간집 번역에 착수하는 등 정말 쉴 틈이 없을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다가 수요일 눈 휘몰아치는 날씨 속에 트래킹을 하고 몸살이 났는데, 그와 함께 모든 기력을 잃어버렸다. 감기는 주말까지 날 괴롭혔다. 약을 먹으면 잠시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르기를 반복. 결국 며칠을 약에 의지한 채, 약에 취해 보냈다.

지금은 저 모든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나 싶다. 1주일 째 운동을 가지 않았다. 오늘 간신히 바이올린 연습을 재개했지만, 두 시간 연습은 상당히 고됐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퇴근 후에 방에 돌아오면 몸은 저절로 침대로 향한다. 생각해 보면 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게으르게 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생산적인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하루라는 시간이 의외로 참 길다.

쉬는 동안, 도올 김용옥의 ‘대한독립운동사’라는 몇 년 전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애호는 어디까지나 취미 수준에서 억눌러 두고 있지만, 이렇게 ‘인간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나의 사명은 학업에 있는 것일까? 온통 학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집안에서 나 혼자만은 큰돈을 벌어보겠다고 경영학과로 진로를 택했건만, 지금 내게는 돈이며 집이며 차며 온갖 부귀와 영화보다도 저 연해주 벌판에 내버려져있는 연자방아의 화강암 맷돌에 얽힌 한 조각 이야기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것보다 진리를 알고 싶다고 했던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생각이 난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다. 군대에서 어깨에 단 계급장과 남을 부리는 권력을 인생 성공의 척도로 삼는 저 졸렬하고 멍청한 인간들을 너무 많이 보고 살기 때문일까. 하지만 바깥세상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자본주의 사회라고, 자본에 그렇게 거대한 힘을 쥐어주면서 정작 그 자본의 획득이나 사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도덕적인 책임도 묻지 않는 이 폭력적인 사회를 보라. 힘 있으면 깡패 짓을 하고 살아도 된다는 조직 폭력배들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그 옛날 일본은 대동아공영이니 탈아니 하는 논리를 펴면서 주변국들을 침탈하고 인민을 학살하고 가혹하게 수탈했다. 그것은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 자본,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과 ‘생존’을 기치로 내걸고 중소기업과 중소 상인들을 다 잡아먹으면서 전 국민을 자기 노동력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대기업들의 행태는 과거 그 악랄했던 약탈자들의 행위와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잘 살기 위함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그 옛날 일본의 제국주의가 농업 사회였던 이 땅에 백화점, 카페를 세우며 허망한 근대화의 환영을 퍼뜨렸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재벌들이 사람들에게 금융이니 부동산이니 유통이니 하는 말들과 함께 자본주의의 환상을 심고 있다. 빵 한 조각, 전구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일은 비천하게만 생각하면서 큰돈을 굴려서 투자 수익을 내는 것은 능력이라고 칭송한다.

나는 저 빌어먹을 사회주의도 싫고 공산주의도 싫다. 하여튼 ‘주의’랍시고 무언가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그런 광신적인 태도가 역겹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자본주의가 종교인가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믿고, 불교는 불(佛)을 섬긴다는데, 자본주의는 자본교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나. 맹신자는 신앙의 대상에 대해 도덕적 검증을 하지 않는데, 자본교의 많은 신자들도 그렇게 자본을 믿고 있을 것이다.

2012/02/16 00:57 2012/02/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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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났다. 군인이 되기 전에는 잔병치레 없었는데, 군인이 되고나서는 뭐만 하면 감기 몸살이다. 훈련소 병사들 연병장의 사열대에 내걸려 있던 구호 “정예신병”을 우리는 종종 거꾸로 읽고는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몸살의 원인은, 어제 눈보라 휘몰아치는 그 험한 날씨 속에 무리해서 감행한 체련 활동 때문. 트래킹이랍시고 약 1시간 반 정도를 눈 맞으며 걸어 다녔다. 그리고는 밤 9시까지 이어진 회식. 방에 돌아온 순간부터 몸살을 예감케 하는 오한이 시작됐다. 새벽에는 열까지 올라, 아침에 결국 사무실에 전화하고 하루 휴가를 냈다. 한낮까지 자고, 병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약 지어 와서 먹고는 또 잤다. 그랬더니 지금은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요즘은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주위의 반응들이 가히 폭발적이다. 졸지에 부지런한 사람, 1등 신랑감 따위로 칭송되고 있다. 평생 혼자 살 각오를 하고 배운 요리인데, 이걸로 1등 신랑감 소리를 듣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도시락을 싸는 이유로는 다이어트도 있었지만, 어째 도시락을 싸면서 더 잘 먹게 되는 것 같다. 반찬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만드니. 그래도 밥은 건강을 생각해서 현미밥으로 하고, 반찬도 고기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생선, 두부 등 밸런스를 고려 해 구성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 집에 올라가면 몇 가지 밑반찬을 더 만들어야겠다.

요즘은 엄마 차인 미니 쿠퍼를 내가 쓰고 있는데, 오늘 뉴스에 미니 쿠퍼를 리콜 한다는 소식이 실렸다. 혹시 이 차도 리콜 대상인가. 냉각 펌프에 문제가 있어서 잘못하면 화재가 날 수도 있다는데 불안하다. 고물 마티즈를 타고 다니면서 도로에서 몇 번 죽을 뻔했던 나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

어제 오늘 운동도 바이올린 연습도 못 했다. 몸 상태가 호전된 것 같으니, 내일은 컨디션 봐서 운동이라도 하고 서울 올라가야겠다.

2012/02/10 00:22 2012/02/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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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8년 11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사촌 동생 루키우스1)의 죽음으로 나는 비통에 빠져있네. 그 아이의 죽음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나를 잘 아는 자네라면 지금 내 기분을 헤아려줄 수 있겠지. 타인의 훌륭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흐뭇함을 나는 오롯이 그 아이를 보면서 누릴 수 있었다네. 자네도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생각하네. 내가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네 역시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추고 진정으로 헌신적이었으며, 또 내 말에 따라 자네를 마음속으로부터 경애하던 친척2)이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느낄 테니.

자네의 여동생3) 얘기를 써줬으니 말이지만, 동생 퀸투스4)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마 누구보다도 자네 여동생이 잘 증언 해 줄 거라 생각하네. 동생이 약간 자네 여동생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형으로서 달래기도 하고, 연장자로서 충고도 해보고,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는 질책도 했지. 그 이후 동생도 나에게 자주 편지를 써 보내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데 모든 게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네.5)

편지가 뜸하다고 나를 책망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네. 폼포니아는 편지를 부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알려주지도 않고, 나도 에페이로스로 가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네. 게다가 자네가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아쿠틸리우스 건6)에 대해서는 자네가 출발하고, 내가 로마로 돌아온 직후에 자네 지시대로 일을 처리 해 두었네. 다만 일이 긴급을 다투는 사안도 아니었고, 자네도 충분히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보다도 페두카에우스7)가 자네에게 편지로 조언을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대체 며칠씩이나 아쿠틸리우스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여준 나인데-그가 말을 늘어놓을 때 어떠한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자네에게 그 불평들을 전달하는 게 세삼 귀찮을 리가 있겠나. 그의 불만을 들어주는 게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괴롭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편지가 적다고 나를 책망하는 자네야 말로 겨우 편지 한 통 보낸 게 다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자네가 나보다 편지를 쓸 여유도 있고, 편지를 맡길 인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아무개씨8)가 자네에게 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풀어줘야 한다고 쓴 거 말이네. 자네가 말하는 아무개씨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고, 그 일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그자는 뭔가 아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어.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해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줬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세게 나가야 할지는, 자네 결심에 달린 일이지. 그러니 자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 자세히 얘기 해 주게.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그냥 방치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자네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도 없다는 걸 내 몸소 증명 해 보일 테니.

타디우스 건9)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그와 얘기 나눠본 바로는 자네가 그에게 그 땅은 사용취득에 의해 취득한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써 보냈다던데. 하지만 그의 딸은 법적 후견을 받고 있네. 그런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는 사용취득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자네가 몰랐다니 놀랍군.

에페이로스에서 땅을 산 것에 만족하고 있다니 기쁘군. 또 자네도 써 보내줬듯이 내가 일전에 부탁한 투스쿨룸의 별장에 어룰릴만한 것을, 자네가 너무 번거롭지 않은 범위 안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네.10) 내가 온갖 번잡스러움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니까.

요즘은 매일 같이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네. 테렌티아11)는 관절통이 심해. 테렌티아가 자네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님을 얼마나 마음속 깊이 아끼는지는 잘 알걸세.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군. 귀여운 툴리오라12)도. 모쪼록 건강하게. 나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나 역시 자네를 형제처럼 아끼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 해 주게.


1) 루키우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 작은 아버지의 아들. 젊은 시절 키케로 형재와 함께 아테네에 유학하였음.
2)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가 아티쿠스의 여동생 폼포니아와 결혼하여 성립한 인척 관계를 말함.
3) 뒤에 언급되는 폼포니아.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의 처.
4)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3-43). B.C. 65년에 평민조영관, 62년에 법무관, 61년부터 59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역임.
5) 두 사람의 혼인은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사이를 긴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작 두 사람의 부부사이는 나빠서 결국 B.C. 44년 무렵에 이혼하였다.
6) 상세 불명
7) 섹투스 페두카에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구.
8) 67년도 법무관이었던 키케로의 친구 루키우스 루케이우스. 아티쿠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불명.
9) 난해한 부분으로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곤란함.
10) 투스쿨룸의 별장을 장식할 미술품을 아티쿠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일.
11) 키케로의 처. 부유한 명문가 출신.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음.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46년 경 키케로와 이혼한 후에도 두 명의 남자와 결혼하였고, 103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짐.
12) 키케로의 딸 툴리아(B.C.77-45)의 애칭.

2012/02/08 01:45 2012/02/0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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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일기장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런 창조에 대한 열망이야 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열정이 아닌가 싶다. 비록 바이올린 연주가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을지라도 끝내 악기를 손에서 놓지 못 하는 것은 나날의 연습이 이러한 욕구를 어느 정도 달래주기 때문이겠지.

요즘은 요리에 빠져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 가서 써먹으려고 익혀 둔 요리 실력을 설마 한국에서 쓰게 되다니. 지난 주 토요일에는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토요일 저녁의 이마트는 아비규환. 나도 대기업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어떤 문제의식을 품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진중권 같은 사이비 지식인이야 대통령과 해적 방송 진행자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꼬는 등 가십 거리 따위나 물어뜯지만, 정말 배웠다 하는 대학 교수들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정치인이며 언론이며 재벌 손녀들이 운영하는 한낱 빵집이나 물고 늘어질 줄 알았지, 이 기형적인 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비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진정한 지식인들이 단지 함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애당초 그런 자들은 이 나라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교수처럼 나불거리는 인간들이 이렇게 많아진 것은 바로 지식인들의 오랜 부재, 역할의 상실로 인하여 지성의 권위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샤브샤브를 해 먹을 생각이었지만, 샤브샤브 1인분 재료를 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냥 닭볶음탕을 하기 위해 닭 한 마리를 샀다. 밑반찬 재료도 좀 사서 장조림, 두부오뎅조림, 계란말이 같은 간단한 반찬도 만들었다. 내친김에 맛없는 식당 밥을 먹는 대신, 당분간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오늘은 갈치 한 토막도 구워 놨다. 밥은 백미에다가 현미를 좀 섞어서 지었다.

2012/02/07 01:27 2012/02/07 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