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일기장

구정 연휴. 그리고 수요일에 하루 휴가를 써서 총 5일을 쉬게 되었다. 최소 반년 정도 되지 않으면 휴가로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천성이 백수인 나에겐 고작 5일짜리 휴가 따위 성에도 차지 않지만.

연휴 기간 동안, 나는 이 거대한 2층짜리 단독주택을 홀로 지켜야 한다. 엄마는 뉴질랜드로 파견을 갔고, 아빠는 안식년을 받아 엄마를 따라갔다. 동생은 작년 말에 미국의 대학으로 복학했다. 집안일을 봐주던 아줌마가 이 집의 관리인으로 들어오기로 했지만, 다음 일요일에나 이사를 들어 올 예정이다.

내가 가족을 떠나서 외국에서 생활한 적은 있지만, 가족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나고 홀로 한국에 남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말이다. 마당의 개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덤덤하다. 하지만 14년이란 시간 동안 온 가족과 북적이며 함께 살아 온 아지는 좀 기운이 없어 보인다.

TV나 오디오라도 크게 틀어놓지 않으면 집 안은 적막하다. 평소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비행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누군가 찾아올 사람도 없다. 당연히 누군가를 기다릴 일도 없다. 의자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아 이 고요 속에 몸을 묻고 있으면, 마치 시간마저 정지해 버린 것 같다.

주중에는 대전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으니, 집 안에 홀로 있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달랑 방 한 칸짜리 대전 원룸은 구석구석이 모두 내 관할 하의 영역이지만, 이 커다란 집은 누군가의 부재가 느껴지는 공간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나는 1층 거실과 부엌, 그리고 2층의 내 방을 왔다 갔다 할 뿐, 다른 방문들은 열어보지도 않는다. 세삼 이 집이 내가 사는 집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문득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회에 한 번 차분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지금의 이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언젠가는 정말 내 생활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2012/01/22 21:31 2012/01/22 21:31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첫 스파링.

말이 스파링이지 복싱 숙련자에게서 ‘몸으로 배우는 레슨.’

엄청 푹신푹신한 글러브를 주기에 이 정도면 맞아도 안 아프겠다 싶었는데, 한 대 맞는 순간,

“아, 이건 아니다.”

그래도 처음 한 두 대 맞았을 땐 “그래, 맞더라도 들어가서 나도 때리자!”했지만, 세 대, 네 대 쌓일수록 움츠러들고 움츠러들수록 더 맞고, 얼굴 막으면 몸 맞고 몸 막으면 얼굴 맞고, 맞고, 맞고, 맞고…….

그야말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니, ‘지옥에서 보낸 2라운드.’

아, 관장님, 저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오늘 스파링(?)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나, 앞으로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 평생 싸움질 안 하고 살아와서 다행이다. 누군가한테 맞는다는 거, 이거 엄청 슬픈 일이다. 강자에게 짓밟히는 약자의 심정이란…….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요즘 좀 몸에 익었다고 설렁설렁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체력도 근력도 민첩성도 더 길러야지. 아, 이 저주받은 육체.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삐끗했다. 힘이 안 들어간다. 내일 바이올린 레슨인데, 활을 지탱할 수 있으려나. 가뜩이나 파워 보잉이 필요한 브루흐인데.

아, 아직도 골이 울리는 것 같다.

2012/01/18 00:44 2012/01/18 00:44
Posted
Filed under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광안 대교


건물


동물


인물


야경

2012/01/17 00:34 2012/01/17 00:34
Posted
Filed under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차역


해변&바다


시장&거리


2012/01/17 00:00 2012/01/17 00:00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해운대 해변

부산에 다녀왔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게 될까?
2012/01/16 00:54 2012/01/16 00:54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3주 전쯤 동기 한 명이 이쪽으로 전속을 왔는데, 오늘에서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물론 계산은 동기 녀석이 했다. 전 소속 부대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온 것이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으라는 의미로 ‘전속 턱’을 받아낸 거다. 메뉴는 피자. 오랜만에 미스터 피자에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는 토마토소스와 치즈 토핑만으로 만든 마르가리타. 어렸을 때는 그냥 ‘치즈 피자’라고 불렀다. 요즘 메뉴판에 올라와있는 호화 현란한 피자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이것저것 되는 대로 아무 재료나 쌓아 올려놔서 한 입 베어 먹으면 만 가지 잡스러운 맛이 난다. 뭐든지 비벼 먹고 섞어 먹고 쌈 싸 먹는 한국의 음식 문화에 반대한다. 피자를 보쌈처럼 만들지 말아줘.

결국 개인 오더를 내기로 했다. 토핑은 페퍼로니에 블랙 올리브, 버섯 그리고 치즈 추가. 결과적으로는 피자 한 쪽에 페퍼로니 한 조각, 올리브 한 쪽이라는 처참한 결과물이 등장했지만, 풍성한 치즈 토핑은 괜찮았다.

식사 후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이번 주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실에 나갔다. 낭만파 음악은 지루할 새가 없어서 좋다. 연습 후에는 운동.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는다. 왼손 잽은 여전히 말썽이다. 역시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다.

내일은 오후 반가를 냈다. 동기 세 명과 함께 부산에 놀러가기로 한 것. 특별한 계획은 세워놓은 게 없다. 다만 내일 저녁 스시 뷔페를 예약 해 뒀다. 저녁 식사 가격이 3만 5천원. 뷔페로는 평범한 가격이다. 스시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괜찮다니 일단은 기대를 해본다.

위스키와 드람뷔 한 병씩을 가져갈 생각이다. 식후주로 러스티 네일을 만들어 마셔야지.

2012/01/13 01:55 2012/01/13 01:55
Posted
Filed under 음악/공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을 위해 ‘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조직은 개인의 삶을 어느 선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또 어느 선까지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일까? 조직에 매몰된 채 살아가기보다는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기꺼이 죽겠다는 것은 생존 본능에 위배되는 태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일까? 나는 조직의 존속이 개인에 선행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단지 생존하는 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군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생활을 조직 문화 안에서 영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군인일수록 조직 밖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 하고, 그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30일(금요일) 같은 날에 회식 같은 걸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각 개인들에게 독자적인 송년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고려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날 저녁 7시 반에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대전 시향의 송년 음악회를 예매 해 둔 상태였다. 회식에는 불참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지만, 맛있는 공짜 밥을 거절할 필요는 또 없는지라(이 날 회식 장소는 샐러드 바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식당으로 달려가서 혼자서 식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도착해서 식사 메뉴를 고를 때에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지만 단 한 가지, 식당의 주차 시스템이 엘레 파킹이라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 했다. 주차해 둔 차가 나올 때까지 15분 정도가 걸려서 하마터면 연주회에 늦을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연주 시작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2011 대전시향 송년음악회 포스터


연주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과 합창 교향곡.

에디슨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전구를 발명하여 인류의 밤을 밝혔을 것이고, 상대성원리가 물리 세계의 자명한 원리라면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없었더라면 인류에게 합창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연말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예술이라는 것은 바로 그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 아닌가 싶다.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연주되는 합창 교향곡. 돈 벌이가 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하니까 괜한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인지. 하긴 나도 묘한 의무감 때문에 굳이 큰 기대가 없으면서도 합창 교향곡을 들으러 발걸음을 옮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주는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를 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아무런 긴장감도 고양감도 느낄 수 없었다. 연주 시작 전에 악장 간 박수는 삼가달라고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전광판에 친절하게 연주되고 있는 악장까지 표시 해 주었지만 관객들인 하나의 악장이 끝날 때마다 여지없이 박수를 쳐댔다. 차라리 안내 방송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덜 창피했을 것을.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라면, 언제든 치고 싶을 때 치십시오.”라고 말했더라면 훨씬 멋지지 않았을까. 굳이 교육이 안 되는 관중을 교육하려고 애쓰다가 창피를 당하는 꼴이란.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재채기 아저씨. 타고난 리듬감은 퍼커션 주자 이상이다. 보통 연주 중간에 재채기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짜증을 내게 마련인데, 절묘한 타이밍에 터져 나오는 재채기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주회 중 가장 재밌었어.

앙코르 곡은 올드 랭 사인. 참 훌륭한 연주였다. 메인 곡도 그렇게 좀 연주 해 주지.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바이올린 연습을 하면서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손가락을 바라볼 때 느끼는 절망감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을까?

어쨌든 한 해를 보내기 전에 해야 할 것은 해버렸다는 느낌.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의무감 같은 걸 지고 연주회를 보러가는, 타성에 젖은 나 같은 관객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 카 오디오로 베토벤 9번을 재생시켰다. 평소보다 볼륨을 몇 단계 올린다.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 이게 진짜 음악 감상이지.

2012/01/12 00:41 2012/01/12 00:41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내가 살면서 외식을 10번을 했다면, 그 중 5번은 돈가스를 먹었을 것이다. 저녁을 뭘 먹을까 어슬렁거리다가 새로운 돈가스 집을 발견하게 되면 꼭 들어가서 먹어보는데, 물론 대부분은 실망을 하고 만다.

얼마 전에 방 근처에 ‘우마이’라는 돈가스집이 새로 생겼는데, 이 집이 개중 괜찮다. ‘저온에 은은하게 튀겨내어 깊은 맛을 내는’이라는 문구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지만, 맛도 훌륭하고 메뉴 구성도 마음에 든다. 돈가스가 튀겨지는 동안 작은 컵에 담긴 수프와 샐러드가 나온다. 샐러드드레싱은 땅콩과 키위 두 종류가 제공된다. 메인 메뉴인 돈가스에는 공기밥과 함께 비록 한 젓가락의 양이긴 해도 우동이 딸려 나온다. 후식은 딸기 잼 한 티스푼을 넣은 요구르트. 이런 훌륭한 구성에 가격은 (빌어먹을)미소야의 정식 세트메뉴보다 저렴하다.

예정에도 없던 시간 외 근무를 하고 방에 들를 새도 없이 바로 연습실로 직행해서 역시 뭐로 저녁을 때울까 하며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돈가스집을 발견했는데, 속을 줄 알면서도 결국 들어가고 말았다. 결과는 대실패. 돈가스에 사이드 메뉴로 ‘쫄면’을 제공하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쫄면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주인아줌마에게 쫄면이 딸려 나오지 않는 메뉴는 없냐고 물었더니 ‘감자튀김’이 대신 딸려 나오는 메뉴를 추천 해 줬다. 양은 푸짐했지만, ‘꾸역꾸역’ 먹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아무튼 먹어야 사니까. 문득 사보텐의 돈가스가 그리워진다. 대전에는 없으려나.

바이올린 연습은 여전히 난항. 브루흐로 끙끙 앓고 있다. 10시쯤 연습을 접고 운동으로 하러 갔다. 시간 외 근무 탓인가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마침 스파링이 있어서 구경하면서 한 숨 돌렸다. 나는 언제쯤 링 위에 오르게 될까. 사실 별로 올라가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 맞고 싶은 생각도, 누구를 때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 복싱은 왜 배우는 거지.

내일은 2주만에 레슨.

2012/01/11 00:59 2012/01/11 00:59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인간에게는 생체 시계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심박 수나 체온, 호르몬의 분비 등은 일정한 주기를 따라 변한다고 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 리듬도 일정한 주기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생체 시계는 밤과 낮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자전 주기(24시간)가 인간의 생체 시계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한편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동굴 속에서는 인간의 생체 시계가 혼란을 일으켜서 그 주기가 한없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동굴 속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의 생활 주기는 약 50시간까지 늘어났다. 즉 피실험자가 동굴 안에서 하루라고 느끼고 생활한 시간은, 실제로는 이틀정도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자연의 힘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대단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위적인 힘들이 얼마든지 자연의 지배력을 물리칠 수 있다. 가령 알람은 확실히 인간의 생체 시계를 지배할 수 있다. 그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계를 봤을 때 알람 울리기 불과 1분 전이었던 적은 꽤 많다. 내 생체 시계는 지구의 자전이라는 우주적 현상이 빚어내는 낮과 밤의 변화와는 무관한, ‘알람 타이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내 방은 채광이 나쁘다. 반 지하는 아니고, 지상 2층이지만 창 밖에는 건물 벽이 버티고 있어서 한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방 안은 어둑어둑하다. 이게 나에게 딱히 나쁜 점인지는 모르겠다. 화창한 햇살이 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황홀한 시간대에는, 애당초 내가 이 방에 있을 일이 없다.

불충분한 채광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새벽녘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대체 몇 시쯤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더더욱. 이럴 때는 항상 시계를 확인하기가 두려워진다. 알람 울리기 1분 전에 깨는 것은, 차라리 더 이상 숙면을 취하기는 글렀을지언정 알람 울릴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맘 편히 눈을 감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다.

알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알람은 지금이 생체 리듬 상 활동해야 할 때인지, 혹은 낮인지, 밤인지, 오전 7시인지, 오후 8시인지 상관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을 고지한다. 내 경우, 대게는 출근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잔혹한 경고다.

겨울 철 출근은 힘들다. 외투에 목도리, 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갖추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 아마 알람 울리는 순간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끔찍한 순간일 것이다. 간밤에 꽁꽁 언 차가 녹고 히터가 내뱉는 공기가 따뜻해 질 때까지는, 음악을 들어도 듣는 것 같지가 않다.

여름에는 에어컨에 인색한 사무실이지만, 겨울 히터 인심은 넉넉한 편이다. 옷을 사복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일종의 체념 같은 것에서 오는 안락인 듯하다.

컴퓨터를 켜고 커뮤니케이터(군 내에서 쓰는 메신저)에 접속하니, 곧 메시지가 쇄도한다. 이번 주말 부산 여행을 함께 가기로 한 사라들로부터다. 땅 덩어리가 좁은 이 나라의 장점이라면 어디든 저렴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이라면 이 땅을 지배하는 계절로부터 도망 칠 구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부산이라면 조금은 따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총대를 메고 부산 해운대에 있는 군 휴양시설인 그린나래 콘도를 예약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보는데, 사람들은 이제 여행 계획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뻔뻔스럽기는.

추운 겨울에 남쪽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다. 무슨 계획이 필요한가. 맛있는 회나 먹고, 쓸쓸한 바닷가 풍경이나 카메라에 담으면 그만이다. 밤에는 광안 대교를 배경으로 야경을 찍어야지.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어디를 갈까’와 ‘무얼 먹을까’에 집중됐다. 고급 스시 뷔페와 수산시장 바닥의 광어회 혹은 시장 뒷골목의 돼지국밥이 서로 상충했다. 나는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지만.

퇴근 후 잠깐 방에 들렀다가 악기를 챙겨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이 있는 건물은 좀 비정상적으로 춥다. 다행이 연습실에는 전기난로가 있는데, 전기를 많이 먹게 생겼다. 악기만 놓아두고 일단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지는 날씨였다. 근처에 ‘아리가토 마마’라는 일식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라면, 우동, 돈가스, 카레,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카라아게 등등 일본 요리는 거의 망라하고 있는 음식점이었다. 오사카식 카레우동과 야키교자(군만두)를 주문했다. 카레우동이 오사카 요리였던가? 오사카에서 1년을 산 나이지만, 대체 뭐가 오사카식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인스턴트 카레에 우동 사리를 담가놓은 것 같았다. 야키교자는 싸구려 냉동만두를 대충 튀겨낸 느낌. 음식의 퀄리티에 비해 값이 너무 비싸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바로 연습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추워서 난로를 최대로 틀어놓고 방 안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악기를 꺼냈다. 손 풀기로 생상의 백조. 그 다음 B 플랫 메이저 스케일을 연습. 이윽고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곡인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의 악보를 펼쳤다. 적당한 난이도는 의욕을 고취시키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곡은 오히려 의욕을 상실시킨다. 이건 아무래도 못 오를 산처럼 보인다. 중음이 난무한다. 8도 화음을 정확하게 짚으며 내려오는 건 정말 불가능하다.

9시 반, 연습을 마쳤다. 연습을 마무리 할 시간 즈음이면 한 음 한 음 켤 때마다 오늘은 운동을 쉴까 하는 생각이 뇌를 스쳐지나가지만 결국 체육관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사람이 좀 많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먼저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고 줄넘기 4라운드로 열을 좀 낸다. 8방향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잽, 훅, 어퍼, 바디를 적절히 섞어 세도우 복싱을 한다. 이미지 속의 내 모습은 꽤 날래고 멋지지만, 거울에 비치는 정직한 내 모습은 영 둔탁하고 어설프다. 6~7라운드 정도 숨 가쁘게 운동하고 나면 이제는 샌드백을 칠 시간이다. 오른손 잽은 괜찮은데, 왼손 잽이 영 부실하다는 지적을 거듭 받고 있는 터라, 왼손에 신경 쓰며 샌드백을 때린다. 하지만 힘이 실리는 것도 잠시, 근육의 글리코겐을 급속하게 소모해버리고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내 왼팔. 아, 근력 운동을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마무리 운동은 역시 줄넘기.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12시가 넘어버렸다. 월요병을 앓을 새도 없이 지나가버린 월요일.

아빠는 지금쯤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탑승 해 있겠지. 이제 한국에 나 혼자 남았다.

2012/01/10 01:21 2012/01/10 01:21
Posted
Filed under 술/와인

Villa M Julia


품명 : 빌라 엠 줄리아 Villa M Julia

종류 : 화이트 와인(비노 비앙코)

생산지 : 베네토(베로나)/이탈리아

수입자 : (주)아영FBC

품종 : 가르가네가/트레비아노 등

당도 : ★☆☆

바디 : ★☆☆

등급 : -

도수 : 11도

시중가 : 17,000\ / 750ml

국내에서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있는 빌라 엠 와인. 웹 상에서 종종 보게 되는 스위트 와인 추천 목록에 꼭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와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목록 속의 빌라 엠은 보통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빌라 엠’이나 혹은 브라케토 품종으로 만든 ‘빌라 엠 로쏘(레드 와인)’다. 두 와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들을 보면 대체로 맛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높게 책정된 가격에는 수긍할 수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사실 두 종류 모두 판매가가 4~5만원 대여서, 마트에서 장보다가 선뜻 집어 나오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반면 오늘 소개할 와인인 빌라 엠 줄리아는 판매가가 2만원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다. 마트의 와인 진열대에서 당당히 빌라 엠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저렴한 와인을 보고 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 혹하여 저지르는 충동구매는 실망만 안겨 줄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빌라 엠 시리즈 와인이지만, 이 와인은 전혀 ‘스위트’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을 뜻하는 ‘Vino Bianco’라는 글씨 아래에 또렷이 ‘Semi Dolce’라고 적혀있다. 돌체는 이탈리아어로 ‘달콤한’이라는 뜻이니까, 세미 돌체는 ‘조금 달달한’ 정도의 의미 일 것이다. 빌라 엠의 당도에 기준점을 둔 사람들이라면 이 ‘세미 돌체’의 당도를 평가절상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 와인은 굳이 분류하자면 드라이 와인에 가깝다. 코르크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스위트 와인 특유의 달콤한 향기 대신 시큼털털한 향이 올라온다. 한 모금 마셔보면 분명 단맛이 살짝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맛이다. 입 안에 잠시 머금고 있어도 달달함이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큼한 맛이 미각을 압도한다. 이 시큼털털함은 완전히 삼킨 뒤에도 한동안 식도 언저리에 남아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이런 드라이 와인도 선호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딱히 어느 하나 장점이 없는 와인이다.

2012/01/05 23:30 2012/01/05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