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성남집 2박 3일

202087일 금요일.

윤이를 데리고 성남에 다녀왔다. 엄마와 떨어져서 두 밤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도 밤이면 엄마를 찾는 윤이라 조금 걱정을 했지만, 2박 3일 동안 아주 잘 지내다 왔다.

금요일 오전에는 유희가 윤이를 데리고 밀가루 놀이를 하는 곳에 다녀왔다. 어린이집 친구들인 찬빈이와 준호네도 같이 갔다고 한다. 오전부터 바쁘게 놀고 온 때문인지 기차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대전역 인근에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발표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혼잡함을 뚫고 역 안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댔다. 윤이가 조금만 더 잘 수 있도록 차 안에서 쉬다가 기차 시간이 임박해서 나왔다.

SRT를 타고 수서역으로 도착하니, 아빠가 나와 있었다. 아빠 차를 함께 타고 성남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윤이는 “빨리 보미랑 놀고 싶어.”를 연발했다. 보미가 정말 좋은 모양이다. 보미를 만나면 간식을 많이 주자고 얘기했다.

성남집에 도착하니, 뒤뜰이 온통 진흙탕이었다. 벌써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마당에 풀도 제법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수리를 맡겨놓은 잔디깎는 기계를 찾으러 출발했다. 집에는 엄마가 와 있었다.

꽤 오래 전에 사놓은 보미 간식이 바닥이 나서, 엄마가 보미 간식도 사고 겸사겸사 저녁에 먹을 고기로 사러 나갔다. 잠시 집이 빈틈에 윤이와 함께 보미 목욕을 시켜줬다. 보미는 태어나서 목욕을 몇 번 해본 적이 없을 텐데, 윤이만 오면 목욕을 하게 되는 보미다.

저녁 때는 엄마가 사 온 고기를 구워 먹었다. 윤이는 값비싼 소고기보다도 소시지와 냉동 만두를 더 좋아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먹었다.

윤이는 아직 할아버지와는 사이가 서먹서먹한데, 할아버지가 소시지로 보미 간식을 같이 만들자고 했더니 좋다면서 같이 간식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낯가림이 엄청 심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많이 좋아졌다. 윤이 할아버지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니까 다가가서 이게 뭐냐며 만져보기도 하고 소리도 내보았다.

202088일 토요일.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윤이가 일어났다. 일찍 잠들든 늦게 잠들든 윤이는 언제나 7시~7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대단한 아이다. 바깥이 조금 환해졌다며 어서 내려가보자고 한다. 아마 보미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방문을 열자마자 보미가 먼저 2층으로 올라와 방 안으로 쑥 들어온다. 보미가 자기를 보러 왔다며 윤이는 또 좋아했다.

아침에는 아빠와 나, 윤이, 보미 넷이서 산책을 다녀왔다. 보미를 쫓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윤이를 보고 있자니 영락없는 시골 소녀다. 요즘 시대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참 기쁘게 느껴졌다. 나도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모기에 뜯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휘젓고 다니곤 했었다. 산책길 중간중간 꽈리도 따보고 옥수수 꽃에서 꿀을 따는 벌도 구경했다.

낮에는 애비뉴프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지난번에도 갔었던 ‘후라토식당’을 다시 찾았다. 규카츠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윤이는 지난번에 이 식당의 ‘우삼겹 덮밥’을 잘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찾았다. 대체로 잘 먹기는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고기가 질기다며 몇 번 씹던 고기를 뱉었다. 설마 고기가 달라졌나?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윤이는 혼자서 초코 아이스크림 한 컵을 다 해치웠다. 컵을 들어서 아이스크림 녹은 물을 마시는 마무리까지 완벽.

윤이 할머니가 윤이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고 해서, 근처 롯데마트로 갔다. 롯데마트 장난감 코너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윤이는 별로 신중하게 고르는 기색도 없이 스티커 세 장(공룡스티커, 바다생물 스티커, 옷 갈아입히기 스티커)과 비누 방물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옥토넛 구조대’ 장난감을 보더니 갑자기 그걸 또 사겠단다. 가격을 보니 거의 5만원이었다. 할머니는 얼마든지 사줄 기세였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부피도 부피라 다른 마땅한 게 없을까 찾다 보니 키키묘묘 구조버스가 있었다. 키키묘묘는 요즘 윤이가 한창 빠져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유튜브 추천 동영상을 타고타고 가다가 보게 된 건데, 척 보기에도 뭔가 중국스러워서 찾아보니 정말 중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 사온 키키묘묘 구조버스 장난감을 가지고 거의 2시간 동안 구조대 놀이를 했다. 하다하다 지쳐서 결국 유튜브로 키키묘묘 구조대 영상을 틀어줬다. 점심을 잘 먹어서 저녁은 잘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저녁도 잘 먹었다.

202089일 일요일

윤이는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좀처럼 7시 반 넘어까지 자는 일 없는 윤이가, 아무래도 꽤 피곤했나 보다. 아침부터 거세게 비가 내렸다. 벌써 한 달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다. 비가 안 내렸으면 어제처럼 산책을 다녀왔을 텐데, 아쉽게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산책도 나갈 수 없었다. 1층에 내려가서 아침도 먹고, 보미 간식도 주고, 술래잡기 놀이도 하면서 아침 시간을 보냈다.

점심에는 판교에는 ViVi라는 스페인 식당에 갔다. 영이네 부부도 온다고 했는데, 남편은 바쁜 일이 있어서 못 오고 영이 혼자서 왔다. 윤이 고모부가 윤이에게 용돈을 줬는데, 하트 스티커가 붙은 예쁜 편지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윤이는 편지를 받았다며 대단히 기뻐했다.

스페인 요리는 윤이에게는 조금 난이도 높은 도전이었다. 먹어본 적이 있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 맛있는 꿀꿀이 고기가 나올 거라고 기대를 심어줬는데, 정작 나온 이베리코 돼지 고기는 육질이 너무 단단해서 윤이가 먹기에는 무리였다. 어른들 입맛에는 잘 맞았지만. 대신 윤이는 그동안 잘 안 먹던 새우도 먹었고, 약간 매콤한 소스를 찍은 바게트도 먹었다. 그리고 검은색 빠에야. ‘볶음밥’이라고 얘기해줬더니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하다며 안 먹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혼자서 몇 숟가락 떠먹었다.

가장 잘 먹은 것은 애피타이저로 나온 타르트와 디저트로 나온 오렌지. 사장님께 혹시 애피타이저 타르트를 한 개만 더 주실 수 없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타르트를 세 개나 더 꺼내 주셨다. 윤이는 하나만 더 먹고 두 개는 포장을 했다. 두 개를 어쩔거냐고 물어보니 하나는 윤이가 먹고 하나는 엄마를 줄 거라고 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중에 윤이는 또 잠들었다. 피곤하긴 되게 피곤했던 모양이다.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에 윤이는 그저께 쿠팡 로켓배송으로 주문해서 어제 성남 집에서 받은 핑크색 헤드폰을 쓰고 영상을 봤다. 소리를 너무 키우면 주위에 민폐가 아닐까 걱정되고, 소리가 너무 작으면 윤이가 짜증을 내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으니 편했다.

대전역에는 유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많았지만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며칠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