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 17일 心不在焉


하늘이 두 동강 나도 나는 내 할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늘이 두 동강 나는 일은 없었다. 오직 내 마음이 두 동강 날 수 있을 뿐.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요, 오직 그대의 마음이나니.”



그래도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혼자 세상 살아가는 거 아니니, 무슨 일에도 요란은 떨지 않으련다. 정신 수양을 위해, 대학교 1학년 때 살며시 집어 들었다가 거칠게 집어던진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적 성찰’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보니 수 년 전에 내가 왜 ‘입문’ 챕터에서 책을 집어던졌는지 기억났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부르크하르트가 원래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인가?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는 이 정도로 난해하진 않았는데! 번역이 이상한 건가? 하긴 서문에다가 자신의 수년 전 번역은 중도 해임을 당한 황당함으로 급히 내놓은 거라 개판이었고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 해 몇 년 만에 다시 수정 운운 하는 걸로 봐서 역자가 보통 똘아이는 아닌 것 같다. 무엇에서 해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교수나 강사였겠지. 학문을 하는 사람이 해임 당했다고 황당함과 분노에 눈이 멀어 명저를 개판으로 번역해놓고 그걸 출판까지 했다니(혹은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다니), 이제 와 무슨 애프터서비스를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양이다. 젠장 서문 정도는 읽어보고 구입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 아니다. 문제는 부르크하르트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이름은 까먹은 역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내게 있는 것이나니. 주자의 사서집주를 해독하는 그 집중력과 탐구심을 가지고서 국문을 꼼꼼하게 해체해서 읽으면, 난해하게 번역된 칸트의 개떡 같은 도덕론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더냐. 그저 지금 내게는 그 정도의 집중력이 없는 게지.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그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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