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월 5일, 눈 내리는 날


눈이 많이 내렸다. 부서 체육 활동으로 실시할 예정이었던 트래킹은 취소되었다. 원래 체련일이기도 하고 눈도 많이 내리니,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어차피 사무실에서 공부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했지만, 폭설을 예상하고 차를 가져오지 않은 몇 사람을 태워주기 위해 결국 일찍 사무실을 나오고 말았다. 그래놓고 어차피 내가 향한 곳은 도서관.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날이었는데, 선생님에게서 눈이 많이 오니 하루 쉬자는 연락이 왔다. 레슨은 취소됐지만, 나는 눈 속을 뚫고 연습실에 가서 기어이 악기를 1시간 연습했다.



논어 팔일(八佾)편 너 댓 장(章)을 읽었다. 이제 해석을 참고하지 않고도 제법 독해가 가능하다. 내가 찍은 구두점도 얼추 들어맞는다. 어떤 토를 달아야 할지는 늘 헷갈리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내년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논어는 완독해야겠다. 이탈리아 갈 때는 맹자를 들고 가겠다.



그렇다. 그런 날이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기운이 감도는 시간,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색(色)을 잃고 하얘졌지만, 신열(身熱)에 들뜬 내 두 눈은 붉었다. 모든 소리마저 눈에 덮여버리던 날, 그 고요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있으면 빈 페이지를 긁는 펜촉의 서걱서걱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그런 아름다운 날이 있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