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이야기: 시그마 10-20mm F4-5.6 EX DC HSM

시그마 10-20mm F4-5.6 EX DC HSM 니콘 마운트 렌즈

근 10년 만에 카메라 기변을 단행하고, 예전 장비들을 하나씩 방출하기 시작했다. 중고 매물로 올리자마자 제일 먼저 팔려나간 녀석은 시그마 10-20mm F4-5.6 EX DC HSM 니콘 마운트 렌즈였다. 이 렌즈를 구입하기 이전에 이미 일명 삼식이라 불리는 시그마 30mm f1.4렌즈와 시그마 50-150mm f2.8 렌즈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광각, 표준, 망원 렌즈를 하나씩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어디서 잘못 주어듣고(?) 기어이 마지막으로 지른 렌즈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2년 초에 대략 30~40만원 정도를 주고 중고로 구입했던 것 같다. 드넓은 화각으로 멋진 풍격 사진을 펑펑 찍고 다닐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거래 장소인 한남역 인근 어느 편의점으로 향하던 날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이 렌즈의 영입은 썩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광각, 표준, 망원을 고루 갖춘다는 게 말로는 이상적이지만, 세 개나 되는 렌즈를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다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렌즈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무거운지. 결국은 나에게 익숙한 화각의 렌즈만 주로 쓰게 되는데, 내 경우에는 크롭 30mm, 그러니까 풀프레임 환산 기준으로 대략 50mm의 표준 렌즈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게 됐다. 그다음은 50-150mm였는데, 어디 여행을 갔을 때, 인물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어서 자주 사용했다.

10-20mm는 화각이 너무 넓어서 찍을 때 별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렌즈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다 사진에 담아내니, 특별히 어떤 것을 부각해서 찍을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할까. 그만큼 풍경에 특화된 렌즈라고 할 수 있는데, 풍경 사진이라는 게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몇 컷 찍으면 그만이지, 눈앞에 들어오는 광경을 어정쩡하게 모조리 담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어정쩡한 결과물이 나오는 건 나의 어정쩡한 실력 때문이었지만…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은 이 넓은 화각을 가지고도 구도 잘 잡아서 멋진 사진 찍더라. 또 넓은 풍경 안에 가까이 있는 피사체를 근사하게 배치하기도 하고, 광각 특유의 왜곡을 재밌게 활용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에게는 이 왜곡이 또 문제였다. 10mm 화각으로 찍으면 온 사방이 사진 중앙으로 쏟아지는 듯한 왜곡이 발생하는데, 이게 영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왜곡이 좀 덜한 20mm 화각을 더 많이 썼다. 아무튼, 익숙하지 않다 보니 덜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쓸 때마다 어색한 렌즈였다. 그럼에도 어디 멀리 여행을 갈 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챙겨가게 되는 그런 렌즈 .

이번에 풀프레임으로 기변하면서 35mm, 55mm, 70-200mm 세 개의 렌즈를 갖추었다. 풀프레임의 35mm 화각이 꽤 넓은 편이기는 하나, 광각에 대응할 수는 없다. 사실상 익숙지 않은 광각의 화각을 포기한 것이다. 하긴 이러다가도 또 언제 아쉬운 마음에 광각 렌즈를 들이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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