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보고


1.



이스탄불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휴대전화를 체크하니, 간밤에서 한국에서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와 엄마로부터. 내용은 어학 장교로 선발된 것을 축하한다는 것. 얼마 후에는 면접 일시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결국 내가 뽑혔다. 왜 나였을까? 글쎄, 어쩌면 한국어에 출중해서일지도.



2.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부터 헤아려도 꼬박 5년을 끌며 공사만 하던 도로가, 내가 여행 가 있던 3주 사이에 개통됐다! 이로써 분당구민인 내가 차를 몰고 분당의 생활권으로 진출하기는 훨씬 편해졌다. 하지만 코앞의 헬스장이나 마켓에 다녀오는 것은 훨씬 불편해졌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3.



여행 전에 했어야 할 일이지만, 뒤늦게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 안경을 맞추러 가면 으레 듣는 소리. 시력을 측정하기 전, “시력이 더 나빠질 나이는 아닙니다.” 시력측정 후 “눈이 많이 나빠지셨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양안 시력은 2.0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무엇보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체력, 근력, 지구력, 시력, 후각, 청각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던 때라, 나는 유목민의 시력을 동경했고, 내 눈이 좋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6학년 때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오늘 측정해 보니, 시력이 -5.0 정도가 나온다. 오른쪽 눈에는 경미한 난시까지 생겼다고 한다.



4.



바이올린이 물먹은 소리를 낸다. 여름 장마철에 제습기 하나 없이 케이스에 넣어둔 채로 3주를 방치했더니 이렇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무뎌진 손의 감각이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걱정이다.



5.



저녁거리로, 엄마가 금방 뜬 회 한 접시를 사다주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양이 녹아드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먹은 연어 요리는 일품이었다. 흑해의 관문 사리예르에서 먹은 보스포르스산 청어와 쏨뱅이 구이의 맛은 잊지 못 할 것이다. 금각만을 따라 걸으며 한 입씩 베어 문 고등어 케밥조차도 황홀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를 먹지 않는 것은 아무튼 유감이다.


6.



해외 나들이가 잦은 편인 우리 가족은, 더 이성 귀국할 때 선물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오는 일이 없다. 대체로 우리 가족을 위한 여행 선물은 면세점에서 구입한 초콜릿 정도로 정해져 있다. 내 동생은 술이 든 초콜릿을 잘 사오지만, 나와 엄마는 무조건 고디바 초콜릿 한 상자로 정해져 있다. 이번에는 고디바의 Truffe를 사왔다. Truffe는 송로 버섯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버섯 중에서 가장 비싼 버섯이라는 송로 버섯은 땅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육안으로 살펴가며 딸 수가 없다. 중학생 때 읽은 ‘장미의 이름’에는 돼지를 이용해 이 송로 버섯을 캐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그 이후로 난 줄곧 송로 버섯을 돼지가 캐는 줄로만 믿고 있었다. 몇 해 전 무슨 여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니, 돼지가 아니라 개가 사용되고 있었다. 별 차이는 없지만, 돼지가 좋아하는 송로 버섯 쪽이 더 재밌는데 말이다. 어쩌면 돼지는 송로 버섯을 찾자마자 먹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해서 개를 대신 훈련시키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왜 초콜릿에 ‘송로 버섯’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지? 생긴 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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