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월 6일, 꿈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때로는 갖은 애를 써서 간신히 무언가를 기억 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애쓰지 않아도 불현듯 어떤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하나의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른 기억을 차례로 불러들이는가 하면, 어떤 기억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또 다른 기억과 뒤섞이거나 혹은 상상이 덧붙여져 모호해져버리기도 한다. 기억은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지도 않고, 영화처럼 장황하게 재생되지도 않는다. 기억은 찰라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만, 그 순간 생생한 스틸 컷의 이미지와 장황한 이야기의 서사적 구조와 그 당시 느꼈던 감정과 심지어는 신체 기관의 감각까지 모조리 되살아나고는 한다. 기억의 실체는 한 장의 사진이라기보다, 또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그저 하나의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꿈은 기억과 닮았다. 기억의 모든 재료가 이미 나의 뇌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면, 꿈의 재료 역시 모두 나의 뇌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내가 깨어있고 의식이 명료할 때에, 과거의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킬만한 자극이 주어진다면, 나의 의식은 재빨리 뇌의 전 영역을 탐색하여 가장 선명한 이미지와 감각, 감정을 환기시킨다. 아마도 내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나의 의식, 혹은 무의식은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을 부술 듯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종소리의 실체는 알람 소리였다. 나는 자면서 알람 소리를 먼저 들었고, 수면 상태의 뇌는 이 자극에 대한 기억을, 깨어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또 깨어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탐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식이 뇌 속을 헤집으며 순식간에 조합해 내는 가공의, 실재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생생한 기억. 환상. 꿈.



나는 꿈속에서 그대와 조우했다. 그대는 나를 게임에 초대했지. 그러나 게임의 룰을 설명 해 주지는 않았어. 만일 그대가, 당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정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로 따랐을 텐데. 나는 그저 그대의 행동을 눈치껏 따라 할 뿐이었지. 그 행위의 의미는 모른 채, 당신의 충실한 반영이었을 뿐. 철저하게 나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대의 행위가, 나에게는 하나도 해독이 되지 않았던 거야.



연휴는 앓으며 보냈다. 긴 꿈을 꾸고 났을 때 마주한 현실은, 내가 기다리던 것도 아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꿈을 꾸는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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