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보내는 편지3


나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훌륭한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보다 열 살 어린 사람 앞에서 현인(賢人)이 아닌 사람도 없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 읊조릴 수 있었던 주문을,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외우고 있다. 나는 이미 믿음을 잃었기에 사람들의 지리멸렬한 훈계에 대해 귀를 닫고 나의 황폐한 삶을 끌어안은 채 은거하기로 했다.



대낮에 태양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지만, 태양을 등지는 것은 간단하지. 결국 마음속 동굴이 우주에서 가장 후미진 곳이다. 한 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그 동굴 속에서 차갑고 쓸쓸한 내면을 관조하는 칩거의 생활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의 관습에 따라 동굴 벽에 하루하루를 새겼다. 혹시 나의 달력에는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동굴 속 생활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길었을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짧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헤아린 시간에 오류가 있다 하여도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차피 내가 느낀 시간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다.



한 번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을 잤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이틀에 한 번 잤을 수도 있다. 일주일이나 한 달 같은 시간의 단위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동굴 속에도 1년이란 시간의 주기는 존재했다. 그것은 희미한 빛이다. 어떤 우주의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쩍도 않고 있어도, 어느 순간엔가 동굴 입구에서부터 희미한 빛줄기가 들어오는 일이 있다. 태양의 잔광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별의 흔적인지, 어쩌면 그것은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연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필연에 의한 것이든 그 조광(照光)은 내 마음 속 동굴로 뚫고 들어오는, 외부로부터의 유일한 침범이었다. 어떤 때는 1년이 700일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수를 제대로 헤아렸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섯 번의 조우, 나의 셈법에 따라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굴 속 인간은 새로운 신화를 창작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들쳐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대. 나는 당신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세상과 달라지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특별한, ‘읽을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동굴을 비우게 될 때에, 벽에 빼곡히 적힌 글들은 너에게 남겨주겠다. 그것은 낭비되고 잘못 사용된, 그러나 겸허하고 진실 된 인생의 기록이 될 것이다.



깊고 어두우며 적막한 동굴에, 빛을 들고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너를, 나는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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