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이야기: (렌즈이야기)시그마 30mm F1.4 EX DC HSM

두 번째로 방출하게 된 렌즈는 시그마 30mm F1.4 EX DC HSM, 일명 ‘삼식이’라 불리는 렌즈다.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쓰면서도 정작 ‘렌즈를 교환할 줄’ 몰랐던 내가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구입했던 렌즈. 약 8년간 내가 찍은 사진의 7~8할은 아마도 이 렌즈로 찍지 않았을까. 내 주변 사람들은 50-150mm 준망원 줌렌즈로 찍어준 사진을 훨씬 좋아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래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상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준 것은 이 렌즈였다.

구입한 것은 2011년 가을 무렵이었다. 그 당시 공군장교로 계룡대 공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통역장교였던 나는 한일 군사교류가 없는 평소에는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지극히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무시간 중 몇 안 되는 낙이라고는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카메라 관련 제품들 리뷰를 읽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 인트라넷에 왜 그런 코너가 있었던 것인지 불가사의하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카메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딱히 비싼 장비를 사겠다는 의지도 없었음에도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리뷰를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갔다. 그런데 남아도는 시간에 리뷰를 읽고 또 읽고 또 읽다보니 조금씩 지식이 쌓이게 되고, 그러다보니 장비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 렌즈를 선택하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표준 단렌즈’라는 설명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카메라 지식이 얼마나 일천했냐면, ‘줌’이 불가능한 렌즈가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때까지 내 평생에 줌이 안 되는 카메라는 초등학생 수학여행 때나 써본 일회용 카메라 외에는 경험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줌이 안 되는 렌즈가 있다는 게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세상에, 줌이 안 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사진을 찍지? 막 뛰어다니면서 찍어야 하나? 이런 궁금증에 처음으로 렌즈의 ‘화각’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사용했던 번들렌즈의 초점거리는 18-55mm로, 풀프레임 기준으로 환산을 하면 30mm부터 85mm의 구간을 모두 커버하는, 사실상 풍경이면 풍경 인물이면 인물 모두 찍을 수 있는 전천후 표준줌렌즈였다(괜히 입문용 카메라에 번들로 주는 렌즈가 아니다). 그렇다면 만약 초점거리가 고정된 단렌즈를 구입해야 한다면, 어떤 화각의 렌즈를 구입해야 할까? 넓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광각 렌즈일까? 아니면 멀리 있는 것을 찍을 수 있는 망원 렌즈일까?

군대란 곳은 무언가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깨달은 것은, 어떤 카메라를 살까를 고민할 때보다 어떤 렌즈를 살까를 고민할 때, 비로소 “나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진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과는 달리, 내게 사진은 단지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렌즈들은 내가 평소 보지 못했던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게는 내가 직접 본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줄 렌즈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람의 눈’과 가장 비슷한 원근과 화각을 가지고 있다는 표준줌렌즈에 끌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해 줄 이 단렌즈를 구입한 이후로, 사진은 단순히 기록을 위한 ‘방편’에서 조금은 더 나아가 ‘취미’가 될 수 있었다. 이 렌즈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P모드’에서 벗어나 셔터 스피드, 조리개값, ISO를 직접 조절해보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50mm 화각에서 그 어떤 화각보다도 내 눈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제 내 사진 생활의 시작과도 같았던 이 렌즈를 방출하지만, 새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가장 먼저 장만한 55mm 렌즈가 그 역할을 계승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