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르너 헤어조크 <피츠카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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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카랄도 (1982년 작품)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출연: 클라우스 킨스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조스 루고이, 미구엘 앤젤

“‘카야하리 야쿠’, 정글 인디언들이 이 땅을 가리켜 ‘신이 아직 창조를 마치지 않은 땅’이라 불렀다. 그들은, 인간이 사라진 후에야 신이 다시 돌아와 창조를 마칠 것이라 믿었다.”

이 영화는 위의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모터가 고장난 보트를 손수 노 젓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1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틀 밤을 새며 강을 따라 이곳에 왔다. 노를 젓느라 살갗이 벗겨진 그의 손에는 붕대 대신 헝겊이 감겨 있었다. 그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가극장으로 달려간다. 표가 없다며 그를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안내인을 향해 그는 말한다.

“이퀴토스에 가극장을 세울 거요. 그리고 카루소를 주연으로, 그곳에서 개관 공연을 할 거요. 어느 극장보다도 근사할 거요. 그리고 당신도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될 거요.”

“현실이 오페라의 썩어빠진 모방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어!” 그는 외친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신이 온다면, 카루소의 목소리를 하고 올 것이다.”

피츠카랄도. 그는 오페라 광이다. 현실을 오페라 속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신이 오페라 가수의 음성을 하고 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려는 무모한 꿈을 가진 사람이다.

전축에 카루소의 레코드를 걸 때면 으레 다가오는 돼지에게 피츠카랄도는 약속했다. 언젠가 아마존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 너에게 객석 정 중앙에 붉은 벨벳으로 장식한 의자를 마련 해 주겠다고.

피츠카랄도는 가극장을 세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 그는 낡은 증기선 한 척을 구입하여 수리하고, 감히 어떤 배로도 거슬러 오를 수 없는 급류 너머의 고무 농장에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또 다른 지류를 타고 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윽고 두 지류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반대편 지류로 가기 위해 300톤의 증기선을 타고서 산을 넘는다.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미니어처의 사용 없이, 순수하고 또 고지식하게 인력만으로 배를 끌어 올려 밀림을 통과시키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스펙터클하며,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일 것이다.

배는 결국 산을 넘지만, 그의 모험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려 했던 피츠카랄도의 의지는, 어쩌면 다 끝마쳐지지 않은 카야하리 야쿠의 창조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는 한 서구인의 광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신의 진노를 다스리는 제사의 의미로, 이 거대한 배를 급류에 떠내려보내버린다.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 하고 사업 실패를 눈앞에 둔 피츠카랄도는, 강 하류로 내려와 배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극단의 단 1회 오페라 상연권을 산다.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선장에게 쥐어주며, 제일 좋은 시가와 붉은 벨벳 의자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실패한 사업자로서 이퀴토스의 항구로 돌아가는 피츠카랄도는, 배 위에서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를 상연한다. 관객은 오직 자기 한 사람. 그는 붉은 벨벳 의자의 등받이를 짚고 선 채, 시가를 태우며,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 공연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벨벳 의자에 앉지는 않는다. 이 의자는 그가 카루소를 좋아하는 돼지에게 약속한 그 의자이므로…….

피츠카랄도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화 과정에서 다소의 각색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영화 속 인물이 실제와 동떨어진 공상적인 인물이라 할지언정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의 인생,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그가 사업에 실패했다고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그가 인생에서도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모험의 증거는 “내가 그것을 했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거장 헤어조크는 배가 산을 타고 넘는 장면을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특수 장치 없이 인력만을 이용해 ‘실제로 배를 산 위로 넘기며’ 찍었다. 그리고 배가 급류에 휩쓸리는 장면도 정말 배를 급류에 내맡긴 채 그 안에서 찍었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힘들었다. 무척 긴 영화이며, 유럽 영화인만큼, 이야기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술술 풀리지 않는다.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의 느릿느릿한 항해 과정을, 우리는 역시 느긋한 호흡으로 함께 해야 한다. 그 대자연에 대한 응시, 자연의 소리에 대한 귀 기울임은, 피츠카랄도 개인의 거친 광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읽었던 아마존 강 항해 과정이 떠올라, 그 자연의 생생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깊은 숲’이란 정말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가.

피츠카랄도가 단 1회 상연권을 사서 연주토록 한 오페라는,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청교도’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이라는 아리아로, “내 사랑하는 이여, 한 때 나는 그대를 향해 남몰래 눈물지었지만, 이제 사랑의 신은 승리와 기쁨 속에서 나를 그대에게 인도하고 있소. 이제 그대는 나의 것이오.”라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오늘날 가쁜 호흡의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섣불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