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요시다 슈이치 『사요나라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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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인근 가쓰라가와 계곡에 있는 오래된 공동주택단지에서 한 아이가 살해되었다. 당초 정신이상자의 범행쯤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경찰의 추가적인 조사에 따라 아이의 어머니인 사토미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스캔들로 번져갔다. 기자 와타나베는 아이 살해 사건을 취재하면서 사토미의 옆집에 살고 있던 슌스케, 가나코 부부에게서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것을 느낀다.



경찰 조사를 받던 사토미는 자신이 옆집 남자 슌스케와 내연 관계에 있었다고 자백하고, 경찰은 조사를 위해 슌스케를 소환한다. 이어진 슌스케의 아내 가나코의 증언. 슌스케는 사토미와 빈번하게 관계를 가졌고, 사토미의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는 가나코의 증언에 따라 슌스케에게는 내연녀 아들에 대한 살인 교사의 혐의가 짙어지게 된다.



한편 우연한 기회에 슌스케의 과거에 대한 단서를 쥐게 된 와타나베는 본격적으로 뒷조사를 진행하여, 한때 대학 야구부 선수였던 슌스케가 부원 여럿이서 한 여자를 집단으로 강간한 사건을 저지르고 제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타나베와 같은 사무실의 고바야시를 비롯하여 슌스케의 과거를 알게 된 사람들은 점점 그에 대한 혐의를 굳혀가고, 도덕적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와타나베만은 그런 주위의 분위기에 쉽게 동조할 수 없다.



슌스케는 이번에는 강간 사건의 피해자였던 나쓰미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사건의 가해자였던 남자들과 피해자인 여성이 걸어간 길이 극명하게 차이가 있음에 놀란다. 슌스케는 제명 후 선배의 연줄을 통해 중견 기업에 취직, 성과를 올리며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상관의 딸과 약혼까지 했다. 피해자인 나쓰미 역시 대학 졸업 후 금융 회사에 취직하여 과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듯 보였으나, 혼담이 오간 상대의 부모가 과거를 알게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일방적으로 파혼당하고 작은 직장으로 이직, 이후 거래처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의 상습적 폭행으로 불우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 후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한 끝에 몇 년 전 돌연 행적을 감추어버린 상태였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인 남성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지만,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너무나도 매몰차고 차가운 사회의 시선과 대우에, 와타나베는 모순을 느끼지만 자신으로서도 심정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 한다.



한편 와타나베는 한참 출세 가도를 달리며 혼담까지 진행 중이던 슌스케가 갑자기 직장도 관두고 외진 곳에 위치한 낡은 공동주택단지에서 다른 여성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슌스케와 나쓰미,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집요한 추적은 그에게 현재의 상태를 설명할 놀라운 가설을 제공하는데…….



강간 사건을 저지른 슌스케는 제명 후 선배의 연줄로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과거를 잊기 위해 일에 매진했고, 일에 쫓기듯 쫓듯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몇 년 후 슌스케는 거리에서 우연히 나쓰미를 보고, 무작정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 앞에 선 슌스케는 용서를 구하지만, 나쓰미에게서 돌아온 말은 ‘용서 받고 싶으면 죽어’라는 매몰찬 한 마디 말 뿐이었다. 슌스케는 나쓰미가 과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거라고 애써 믿으며, 다시 무미건조한 자신의 생활에 매몰된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 함께 사건을 저질렀던 후배로부터 나쓰미가 남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전해 듣게 된다. 슌스케는 나쓰미가 입원 해 있는 병원을 찾아가고, 그날로부터 매주 주말마다 병원을 찾아 꽃다발과 쪽지를 전한다.



슌스케가 결혼 상대자의 부모와 만나고 있던 어느 날, 나쓰미로부터 불쑥 연락이 온다. 시내의 거리에 생활복 차림으로 나타난 나쓰미. 그녀는 다짜고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 때부터 슌스케와 나쓰미의, 목적을 알 수 없는 동행이 시작된다. 슌스케의 저축이 바닥 날때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던 둘은, 결국 가쓰라가와 계곡에 있는 낡은 공동주택단지에 정착한다. 그러나 그곳은 묘하게 주거의 느낌이 나지 않는, 어딘가 비일상적인 생활의 공간이었다.



와타나베는 가나코가 나쓰미임을 알고, 필시 그녀가 슌스케와 사토미의 관계에 대해 경찰에게 증언한 내용은 거짓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게 된다.



강간 사실을 주홍 글씨처럼 평생 지고 살아야 했던 나쓰미. 어떤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과거가 언제 탄로 날까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다. 이 사회는 차라리 가해자인 남성들에게는 관대했지만,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냉혹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사람들은 동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상으로 거리가 가까워지려 하면, 사람들은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남성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나쓰미에겐 여러 차례 쓰라린 경험을 안겨줬다.



과거를 숨길 필요도 없고, 자기의 죄가 아닌 과거로 인해 죄책감을 느껴야 할 필요도 없는 유일한 상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강간한 남성, 슌스케였다. 자신의 부모조차도 강간당한 나를 이해해주지 못 했다. 원인의 일부를 제공했기 때문이든, 혹은 단순히 결과를 지고 살아가야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든, 부모 앞에서 딸은 죄인의 심정이었다. 오직 슌스케만이, 지난 과거를 나쓰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쓰미는 결국 슌스케의 품에 머문다.



나쓰미, 아니 세간에 가나코로 알려진 여성은 증언을 번복하고, 슌스케는 풀려난다. 와타나베는 놀라운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게 되지만, 이것을 기사로 쓰지는 않는다. 어느 날, 와타나베는 다시 한 번 슌스케를 찾는다. 더없이 평온한 표정의 슌스케는,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와타나베에게 말한다, 가나코가 떠났다고. 와타나베는 나쓰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언젠가 자신이 사라진다면 그건 슌스케를 용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에도 불구, 행복을 바랐던 와타나베는 먹먹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슌스케는 단호히 말한다. 그녀를 다시 찾아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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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일본 소설 코너에서 자주 발견하는 이름이다. 권위와 대중성을 모두 갖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로 널리 홍보되는데, 몇 권의 책 서평을 읽어본 결과 상당히 기발하면서 반전이 있는 소설을 잘 쓰는 모양이다. 이번에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해 보았는데, 이 한 권으로 미루어 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지만, 솔직히 이런 작가에게까지 아쿠타가와 상을 시상해야 할 바에야 매년 수상자를 내지 않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요시다 슈이치 본인인이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확실히 연애소설은 두 번 다시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소설 대강의 플롯은 전체의 3분의 1도 읽기 전에 그려졌고, 전개는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이, 어떤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소재는 확실히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소재의 독특함이 결코 소설 자체의 독창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 한 것에 비해, 인간의 심리에 대한 고찰은 어딘가 작가 자신의 시각에 매몰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대체 어디가 ‘작가 자신과 작품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단 말인가?



소설의 전개도 뭔가 중간중간 잘라먹은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캐릭터들도 생동감이 떨어진다. 그 중에서도 와타나베란 캐릭터는 최악이다. 기자답게 집요함으로 꽉 찬 캐릭터로 그릴 것이 아니었다면, 아예 텅 비어서 완벽한 관찰자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소설 전반에 와타나베의 의식이 상당히 많이 흐르고 있는 것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 이건 뭔가 독자가 소설 속 사건과 배경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방해하면서도, 역으로 독자가 충실하게 따라갈 길은 깔아주지 않는 불친절함이다.



덧붙이자면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가 과연 여성, 여성의 심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이건 나로서도 뭐라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건 여성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


상상 속에서 그녀는 사내 남자직원에게 교제하자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 자기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그녀의 이야기로 변해갔다. 자기가 누군가와 사귀면, 상상 속의 그녀도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십 수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아니다. 무언가를 십 수 년간 계속 생각하는 것쯤은 인간에게는 간단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