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ffaello] Marriage of the Virgin(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Raffaello, Sposalio (Marriage of the Virgin or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o

Raffaello, Sposalio (Marriage of the Virgin or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o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정식 명칭은 Pinacoteca di Brera)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피렌체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면 밀라노에는 브레라 미술관이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그곳에는 만테냐의 「죽은 예수」 카라바조의 「에마우스에서의 저녁」, 하예츠의 「키스」 같은 놓칠 수 없는 걸작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고대하던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이었다. 이탈리아 땅을 밟은 후, 꿈에라도 보기를 갈망했던 걸작 예술품들을 실제로 보게 될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이 작품을 만날 때는 특히나 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당시 내 나이는 만 스물.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약 500년 전인 1504년 경, 라파엘로가 「성모의 결혼」을 그렸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만 스물 하나. 라파엘로 같은 천재와 나 같은 범인(凡人)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500년 전에 나와 나이가 같았던 사내가 이룩한 업적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는, 과연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 나이에 와 있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그저 잠재워두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스승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그린 두 개의 작품을 참고 해 그린 것이 분명하다. 하나는 마찬가지로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장면을 그린 동명의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주는 예수」다. 이 두 작품, 특히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의 결혼」과 라파엘로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라파엘로가 스승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배경은 거의 똑같고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에도 거의 차이가 없다. 인물들의 배치나 심지어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까지도 유사하다. 어쩌면 라파엘로의 그림은, 스승의 그림을 모방해서 그린 습작(習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Perugino, Marriage of the Virgin 1500-04 Oil on wood, 234 x 185 Musee des Beaux-Arts, Caen

Perugino, Marriage of the Virgin 1500-04 Oil on wood, 234 x 185 Musee des Beaux-Arts, Caen





그러나 한결 자연스러운 원근의 표현, 경직되지 않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지는 인물들, 그림의 스토리 속으로 관객을 빨아들이는 장치의 활용(가령 페루지노의 그림에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나무 막대를 부러뜨리는 사내가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는 전면에 배치, 강조되었다. 이 사내의 움직임이 단조로운 좌우 대칭에 파격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등 여러 면에서 라파엘로는 이미 스승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준다.



라파엘로의 그림과 너무나도 유사한 페루지노의 그림은, 제아무리 라파엘로라도 태어날 때부터 거인은 아니었으며, 그 역시 하나의 난쟁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거인의 어깨, 즉 인류가 축적한 역사의 정점 위에 서는 것이 허락되는 것도 어쩌면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조르조 바사리, 「미술가 평전」)” 라파엘로 같은 천재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덧 내 나이는 라파엘로가 「성모의 결혼」을 그린 나이로부터 멀어져서 그가 죽음을 맞이한 나이(만 37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로의 그림을 바라보며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던 스무 살 적으로부터 지난 6년여의 인생은 대체 무엇을 향해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나아간 시간이었을까? 때때로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그 안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 적은 듯 느껴진다. 이 광대한 세상, 무궁한 역사 속에서 평범하기만 한 한 개인의 인생이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힘껏 발돋움 해 보아도 결국 거인의 발치에서만 머뭇거릴 뿐인가?



그러나 어느 날 사람들이 무심히, 감흥 없이 지나쳐버리고 마는 하나의 미술 작품 앞에 오래도록 가만히 서서, 그 작품을 뚫어져라 응시하였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어쩌면 나의 인생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화가가 낮은 지대를 그리고자 할 때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굽어보지만, 높은 산을 그리고자 할 때는 오히려 낮은 곳에 위치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 하는 높고 먼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나 거인의 발아래 있는 나는 바로 여기에서 높은 곳에 선 자들을 바라본다.



어느 시대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그에 걸맞은 명예를 안겨주고 부당하게 명예를 누리는 자에게서는 오히려 그것을 빼앗는 것은, 자기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니라 그 개성 넘치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모두 관조할 수 있는 관객, 바로 나 같은 역사가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응원하고 또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위대한 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종종 스스로는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그들을 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바로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과 미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나는 나의 소임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