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노트북 교체: 한성TFX4470H

노트북을 바꾸었다. 그동안 내가 사용해 온 노트북은 2016년에 중고로 구입한 ACER의 Aspire V 13 모델. 인텔의 저전력 CPU인 I5-5200U가 탑재되어 있었는데, 대학원생이 논문 읽고 글 쓰는 작업을 하는 데에는 딱히 아쉬움 없는 노트북이었다. 다만 기본 장착되어있는 4기가 램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느껴져서 8기가 램을 하나 더 사서 달아주기는 했다. 내가 노트북을 사용하는 용도야 주로 pdf 파일을 읽고, 한글이나 워드로 문서 작업을 하는 것이니 이 정도 사양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고, 4년 이상 써오니 성능 저하가 체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이래저래 경력이 조금 쌓이면서 여기저기서 자문원고나 보고서 등 작성 의뢰를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료 수집과 정리를 위해서 십 수 개의 브라우저 탭과 수십 개의 pdf 파일을 열어놓고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를 수시로 오가며 작업을 하다보니 이 불쌍한 노트북이 cpu를 풀가동하다가 프리즈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노트북에서 마음이 들지 않았던 부분은 바로 디스플레이. 뭔가 어두컴컴하고 색감도 칙칙한 것이 영 마뜩하지가 않았다. 어차피 사진 보정이나 편집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노트북이라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을 사용할 때에는 데스크톱 pc를 사용했지만, 디스플레이가 워낙 엉망인지라 보정이 끝난 사진을 단순히 감상할 때에도 거슬렸다.

그런 이유로 노트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새 노트북을 고르는 기준은 첫째, 무조건 고성능 CPU와 최소 8기가 이상의 넉넉한 램 용량. 둘째, 무조건 1.5kg 미만의 가벼운 무게와 어댑터 휴대의 번거로움에서 해방시켜주는 pd충전 기능. 세 번째, 무조건 색재현율 NTSC 72% 이상의 색감 괜찮은 디스플레이.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노트북 중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로 구매하겠다고 결심했다.

새 노트북을 사는데, 기왕이면 성능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야 하니 가능한 cpu 성능은 최상급으로. 단, 게임은 하지 않으니까 gpu는 불필요. 자료 검색과 수집, 정리는 의외로 메모리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작업이기 때문에 램은 최소한 8기가 이상. 그리고 서울 대전을 오갈 때마다 백팩에 넣어 다녀야하니 제발 가벼운 무게. 솔직히 1.5kg도 무겁다. 마지막으로 cpu 성능이 좋고 램 용량도 넉넉하다면 이따금 라이트룸이나 포토샵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사진 보정과 편집이 가능한 수준의 색재현율을 가진 디스플레이.

이런 기준을 정하고 시장에 나와있는 노트북을 살펴보니, 마침 AMD에서 최근 노트북용 CPU인 르누아르 시리즈를 새롭게 출시했는데, 성능면에서 이미 인텔 10세대 CPU는 르누아르 라인업에 상대가 되지 않아서 고민 없이 르누아르 노트북을 사기로 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 노트북 중에는 르누아르 CPU를 사용한 노트북 자체가 없었고(있었다 한들 가격 때문에 결코 구입하지 않았겠지만), ACER나 ASUS, 레노버 등 고만고만한 업체의 르누아르 노트북들은 가격대는 저렴했지만 꼭 위의 기준 중 어느 하나를 만족하지 못했다. 특히 100만원 이하의 노트북의 경우 대부분 색재현율이 떨어지는 보급형 디스플레이를 채용하고 있었다.

결국 세 번째 조건을 포기하더라도 레노버의 슬림5나 ACER의 스위프트3 같은 모델을 골라야 하나 싶었는데, 웬걸 ‘한성컴퓨터’에서 나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노트북을 무려 두 종이나 출시해놓고 있지 않은가. 6코어 12스레드의 4600H CPU를 사용하는 TFX4450H 모델과 무려 8코 16스레드의 4800H CPU를 사용하는 TFX4470H 모델. CPU성능만 보더라도 6코어 6스레드의 저전력 CPU인 4500U를 압도하는데, 램도 교체가 가능한 슬롯이 2개가 제공된다. 즉 16기가 램 두 장을 꽂으면 무려 32기가까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노트북에서 그럴 일은… 있을까?). 그러면서도 무게는 겨우 1.1kg에, pd 충전까지 지원하니까 그야말로 휴대성은 최고다. 마지막으로 디스플레이까지 NTSC 72%의 괜찮은 품질. 그런데 가격은 4500U나 4700U CPU를 탑재한 여타 보급형 노트북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70~80만원대. 어떻게 이 노트북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스펙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저렴하면 역시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체 무슨 하자가 있어서 이렇게 싼 거야?“

그래서 열심히 리뷰와 사용기들을 뒤져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우선 가장 큰 이슈가 소위 팬 갈림 현상이라고, 노트북에 장착된 두 개의 팬 중 하나가 얇디얇은 노트북 하판과 맞닿아서 갈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 단, 이 현상은 노트북의 특정 부위(왼쪽 팬이 위치한 부분의 하판)를 꽉 잡았을 때만 발생한다고 한다…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황당한 마감 상태로 제품을 출시하는 데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냥 바로 구매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한성에서 이 문제를 인지하고 팬과 하판 사이에 고무 패드를 덧대주는 A/S를 실시하고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가? 그렇다면야 뭐 오케이. 그 정도 작업이면 내가 직접 할 수도 있겠는데.

두 번째 단점은 키보드. 일단 키보드 가운데가 불쑥 부풀어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정말 스펙과 가격을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노트북인가? 불량 배터리가 부풀어 오른 모습은 본 적이 있지만, 부풀어 오른 키보드가 디폴트인 노트북이라니. 하판은 팬과 붙어먹고, 노트북은 위로 솟아오르고… 생각할수록 웃긴 녀석이다. 하지만 이것도 뭐, 타이핑에 지장을 주지만 않는다면 오케이. 대학원생이 타이핑 칠 일 많기로는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 들겠지만, 그런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키보드가 좋다고 좋은 글이 써지는 게 결코 아니다. 타이핑의 절대 양은 많지만, 타이핑 속도가 곧 생산성은 아니기 때문. 속기라든지 혹은 텍스트를 눈으로 읽으며 그대로 타이핑을 쳐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손에 피로도도 덜하고 오타율도 낮출 수 있는 좋은 키보드가 필수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 되는 글 한 줄 쓰기 위해서 복도를 한 시간씩도 서성이는 대학원생에게는 키보드는 그저 눌렀을 때 글자만 출력되면 된다. 글 잘 써질 땐 키보드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도 그저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걱정되는 것은 내구성인데, 2년 정도 탈 없이 쓰면 만족하는 스마트폰과는 달리, 내 경험상 노트북 구매 주기는 거의 4~5년이나 되기 때문에 내구성도 꽤 중요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구성은 무게와 어느 정도 반비례하는 측면이 있다. 한성 TFX4470H는 무게가 1.1kg으로 여타 보급형 노트북과 비교해도 단연 무게가 가벼운데, 마감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처참한 수준. 이래서야 4~5년 고장없이 쓸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혹시 어느 날 백팩에 꺼내보니 상판과 하판이 분리되어 있다든가… 하지만 내가 기본적으로 물건을 잘 안 망가뜨리고 오래 쓰는 편인 데다가 약간의 자가수리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그냥 감수하기로 했다. 어차피 보급형 저렴한 노트북의 내구성이라는 게 고만고만한데, 그렇다면 약간의 리스크를 더 안고 가더라도 1.1kg이라는 압도적으로 가벼운 무게를 선택하겠다는 것.

마지막 선택은 6코어 12스레드의 4450H를 사느냐, 8코어 16스레드의 4470H를 사느냐였는데, 두 모델은 CPU를 제외하고도 SSD 용량(256 vs 512)과 기본 장착된 램 용량(8gb 싱글 vs 16gb 듀얼)에 차이가 있었다. 가격 차이는 약 15만원 정도. 거의 모든 자료를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는 나에게 SSD 용량이야 별 상관이 없었지만, 램은 싱글 8gb로는 부족할 게 뻔해서 어차피 16gb로 업그레이드가 불가피해보였다. 램 추가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CPU 한 등급 업그레이드 하는 비용은 약 10만원 정도. 10만원을 더 주고 4800H이라는 게이밍 노트북에 들어갈 수준의 CPU를 탑재한 노트북을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할 것도 없이, 중고나라에 4470H 신품이 81만원에 올라와서, 그것을 사버렸다. 지금 대략 일주일정도 사용했는데,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팬과 하판의 접촉 현상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굳이 팬이 최대 속도로 돌아가는 빡센 작업을 하면서, 노트북을 들어서 그 부위를 잡는 테스트를 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라면 팬 접촉을 경험할 일은 별로 없을 듯.

우려했던 키보드는 확실히 그저 그랬다. 키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키보드의 5, 6, 7, R, T, Y 키 부분이 정말 불쑥 솟아올라있다. 다나와 댓글 등을 보면 한성에서는 원래 디자인이 이렇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는데, 정말 헛웃음만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퀄리티다. 내가 하판을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부풀어 오른 부분에서 약간 열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cpu가 장착되어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정말 ‘스펙’과 ‘가격’ 보고 고른 노트북이지만 이래서야 오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밖에는 딱히 흠잡을 부분은 없다. 디스플레이도 밝고 깨끗하다. 아무튼 기존에 사용하던 아스파이어보다는 훨씨 낫다. 성능은 두말할 것도 없다. 라이트룸과 포토샵까지 설치해서 사진 보정도 좀 해봤는데 매끄럽게 잘 된다. 하긴 8코어 16스레드면 내 데스크톱 PC의 i7-8700 보다도 뛰어난 cpu인데…

기대하던 PD 충전은 90W 이상으로만 충전하라고 되어 있어서 아직 테스트를 못 해봤다. 120W짜리 충전기를 주문해놨는데, 도착하면 테스트해 볼 예정. 그래서 아직은 무거운 90W짜리 충전용 어댑터를 함께 들고다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볍다. 디스플레이 크기가 14인치로 아스파이어 V 13보다 1인치 더 크지만 오히려 노트북 전체 크기는 더 작아졌다. 무게, 휴대성은 정말 대만족.

아무튼 저렴하게 산 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최소한 3년 정도만 무탈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