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스즈키 졸업, 바이올린 1400일

“이제 스즈키는 그만 하고, 곡 들어가죠. 다음 시간에 모차르트 아델라이데 콘체르토랑 비오티 23번 악보 사오세요.”



긴 시간이었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3년 9개월. 드디어 ‘스즈키 교본’을 졸업했다. 뭐 말이 졸업이지, 전 10권의 교재 중 7권까지만 했고, 그나마 7권까지의 곡들을 모두 제대로 켤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니까.


[#M_스즈키 교본으로 보는 나의 바이올린 레슨 연대기|less..|2005년 8월 3일,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잡다.

2005년 11월 11일, 스즈키 1권의 ‘작은 별 변주곡’을 시작으로 스즈키 교본에 돌입.


2006년 2월~4월, 호주로 한 달 간 어학연수, 귀국 후 수술 등으로 레슨이 파행을 거듭.


2006년 5월 1일, 스즈키 2권 첫 레슨. 헨델의 ‘개선의 합창’과 바흐의 ‘뮈제트.’


2006년 6월 23일, 약 한 달 반 만에 스즈키 2권의 마지막 곡 레슨을 받음.


2006년 7월 3월, 스즈키 3권 시작. 마르티니의 ‘가보트.’


2006년 7월, 2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


2006년 8월 11일, 레슨 재개.


2006년 8월 19일, 일본 교환학생이 확정되고, 떠나기 전까지 스즈키 3권을 마치기 위해 레슨을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림.


2006년 9월 19월, 내 첫 번째 바이올린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바흐의 ‘부레.’ 이것으로 스즈키 3권을 어영부영 마침.


2006년 9월 20일, 일본으로 출국.


2006년 10월 6일,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 아오야마 선배 앞에서 스즈키 3권에 수록된 바흐의 ‘부레’를 연주해 보였으나, 걱정 어린 표정만이 돌아옴.


2006년 11월 7일, 토요나카의 세이케 음악 학원에서 레슨을 재개. 일본에서의 첫 바이올린 선생님 ‘아사이’씨를 만남. 일단 스즈키 3권의 바흐 작곡, ‘가보트 라 장조’부터 복습하기 시작함.


2006년 11월~12월, 오케스트라 입단 후 바이올린 맹연습. 한국에서의 1년보다도 이때의 한 달 동안 실력이 더 많이 는 듯.


2006년 12월, 한 달간의 복습을 마치고, 비로소 ‘마(魔)의 4권’을 받음. 책을 받자마자 두 번째 수록곡인 자이츠 협주곡 1악장을 아사이 선생님 앞에서 초견으로 연주해 봄. 상냥한 아사이 선생님의 칭찬도 칭찬이었지만, 스스로도 실력이 는 것에 놀람. 그날 기숙사로 돌아와 CD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악보를 수십 번 읽음.


200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사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레슨. 세이케 음악 학원에서 여는 학생들의 학예회에 참가하기로 결정. 어떤 곡으로 도전하겠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스즈키 4권에 수록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를 고름. 이 곡 첫 레슨 후, 나는 다루이 선생님에게 인도됨.


2007년 2월, 설 연휴에는 잠시 귀국하여 가족들 앞에서 실력을 피로. 두 달째 연습하고 있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를 연주함.


2007년 3월, 학원 발표회를 위해 석 달째 같은 곡을 연습. 반짝 성장하는 것 같던 실력은 주춤. 하루 2시간을 미니멈으로 잡고 연습에 매진했지만, 매너리즘과 슬럼프에 빠짐. 박자 감과 음감 없음에 스스로 좌절.


2007년 3월 13일, 아사이 선생님과 짧은 재회.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칭찬에 다시 힘을 얻음. 이후 아오야마 선배도 노력을 조금 인정해 줌.


2007년 3월 25일, 세이케 음악 학원 발표회. 석 달간 연습한 비발디의 협주곡을 연주함.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좋은 추억거리.


2007년 3월 29일,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여름 정기연주회까지 D-100일. 레슨 보다는 오케스트라 연습에 더 치중함.


2007년 4월 17일, 비발디 협주곡의 3악장을 끝내고 자이츠 협주곡 5번 3악장으로 후퇴. 레슨 의욕 대폭 상실.


2007년 6월, 지겹디 지겨운 자이츠 협주곡을 끝내고(2번 3악장은 넘기고),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제2 바이올린 부분을 시작. 고토 및 코노와 언젠가 맞춰보기로 함(그러나 결국 좌절됨).


2007년 7월 4일,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계속 맞춰나가는 한 편, 스즈키 5권에 들어가기로 함. 교재에서 아무 곡이나 골라보라는 말에, 결국 또 비발디를 선택. 이번에는 협주곡 사장조 1악장.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대비하여 시작한 연습이 119일차를 맞이. 누적 연습 시간은 299시간을 기록.


2007년 7월 7일. 숫자 7일 세 번 겹친 날.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89회 정기 연주회.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그날. 바그너의 오페라 ‘마이스터징거’의 서곡을 제2 바이올린 주자로서 연주함.


2007년 7월~8월, 연주회 끝난 후 주어진 여분의 시간. 수업도, 시험도 포기. 그러나 바이올린 연습만은 지속.


2007년 7월 31일, 세이케 음악 학원에서의 마지막 수업.


2007년 8월 8일, 마지막으로 세이케 음악 학원을 찾아 원장 선생님 및 아사이 선생님에게 인사. 전별금 5천 엔을 받음.


2007년 8월 20일, 귀국.


2007년 9월 3일, 개강.


2007년 9월, 연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유포니아에 입단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봄. 며칠 후 전화를 받고 환호했으나 ‘떨어지셨습니다. 혹시 호른을 불어보실 생각은 없나요?’란 통보 및 제의를 받음. 거절함.


2007년 10월 4일, 한국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재개함. 학교 근처의 ‘그린 아트 음악’ 학원에 등록.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막 스즈키 5권에 들어간 상태라고 하자 ‘스즈키 3, 4권을 가져오세요.란 충격적인 소리를 들음. 첫 날 ‘스즈키 4권’만 챙겨서 감. 시험 삼아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를 연주. 활 쓰기가 경직되어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지적을 받고, 스즈키 4권의 곡들을 복습하기로 결정. 그러나 복습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2007년 11월, 스즈키 5권을 다시 시작. 지긋지긋한 비발디 협주곡을 계속 연습함. 아무 곳에도 적(籍)을 두지 않고, 홀로 쓸쓸이 연습하는 나날이 반복됨. 학원에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성실함으로 평판이 높아짐.


2008년 3월 24일, 레슨 시작한 지 2년 7개월 째, 스즈키 6권 돌입. 전 10권의 과정 중 비로소 절반을 넘어섬.


2008년 4월, 선생님으로부터 학원 발표회에 나갈 것을 권유 받음. 별 생각 없이 수락. 곡은 스즈키 6권에 수록된 ‘라 폴리아’로 결정.


2008년 5월, 발표회를 3주 앞두고, 다른 학생이 나와 똑같은 곡으로 발표회에 나가기로 한 것을 알게 됨. 결국 내 쪽에서 곡을 바꿈.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1, 2악장.


2008년 6월 14일, 그린 아트 음악학원 발표회에 참가. 세이케 음악 학원 발표회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 바이올린 연주자는 나를 포함 단 세 명.


2008년 9월 11일, 스즈키 7권에 돌입.


2008년 9월, 조기 졸업이 좌절됨. 1년 만에 두 번째로 유포니아의 오디션에 응시.


2008년 9월 18일, 유포니아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다.


2008년 12월 3일,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를 대비한 첫 연습. 곡은 말러의 교향곡 1번. 나는 실력과 무관하게 임의로 제1 바이올린 주자로 선정됨. 첫 연습 후 절망.


2008년 1월~3월, 레슨 보다는 정기 연주회에 매진. 이 기간 동안 스즈키 진도는 포기하고, 레슨 시간에는 스케일과 보잉 체크만 받음. 2월 한 달간 레슨을 쉼.


2009년 3월 6일,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함.


2009년 5월 28일, 스즈키 7권을 끝마침.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한 지 1395일째 되는 날. 스즈키 교본을 시작한 날로부터 1295일만의 일.


2009년 6월 1일, 명동 대한음악사에 가서 모차르트의 ‘아델라이데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와 비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23번’ 악보를 사옴.


2009년 6월 2일 현재,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1400일째를 맞이함. 내 바이올린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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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스즈키 교본들 그리고…|less..| 


스즈키 교본 1권부터 7권까지. 1권부터 3권까지는 한국에서 구입한 것. 4, 5권은 일본에서 레슨 받으면서 구입했고, 6, 7권은 2008년 2월에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90회 정기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 사온 것이다. 보다시피 한국판과 일본판의 표지가 다르다. 내용은 같지만, 가격은 일본판이 한국판에 비해 약 3배 정도 비싸다. 그래도 한국판의 저 촌스러운 색감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스즈키 교본 수록곡들



제1권


작은 별(변주곡)/나비 노래/예쁜 새/주먹 쥐고 손뼉 치고/크리스마스 노래/봄바람/그 옛날에/ 알레그로/무궁동 가장조/노래는 즐겁다/즐거운 아침/에튀드/바흐 미뉴에트 제1번/바흐 마뉴에트 제2번/바흐 미뉴에트 제3번/즐거운 농부/가보트(고세크)



제2권


개선의 합창/뮈제트/사냥꾼의 합창/그 옛날에/브람스 왈츠/부레/두 사람의 척탄병/요정의 춤/마뇽의 가보트/가보트/베토벤 미뉴에트 사장조/보케리니 미뉴에트



제3권


마르티니 가보트/바흐 미뉴에트/바흐 가보트 사 단조/드보르작 유모레스크/베커 가보트/바흐 가보트/바흐 부레



제4권


자이츠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5번 1악장, 3악장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1악장, 3악장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악장 제2 바이올린 파트



제5권


바흐 가보트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2악장, 사장조 전악장
베버 컨트리 댄스/독일 무곡/베라치니 지그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악장 제1 바이올린 파트



제6권


코렐리 라 폴리아/헨델 소나타 3번, 4번/피오코 알레그로/라무 가보트



제7권


모차르트 미뉴에트/코렐리 쿠랑트/헨델 바이올린 소나타 1번/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바흐 지그/바흐 쿠랑트/코렐리 알레그로




이제부터 시작하게 될 곡들. 모차르트의 ‘아델라이데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와 비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23번.’ 그런데 모차르트의 아델라이데 협주곡은,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고, 위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원도 거의 찾을 수 없다. 유투브에서 찾아보면 꼬마들이 연주한 영상은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얇디얇은 악보 두 권의 가격이 합계 4만 8천원! 그래도 폼은 난다.

_M#]

2 thoughts on “6월 2일, 스즈키 졸업, 바이올린 1400일

  1. 저도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지금 5년동안 지겹게 배우고있습니다..ㅎㅎ 진짜 저 얇디얇은 악보가 거의 보통 3만원이 넘는다죠…… 진짜 돈아까워 죽겠다만 선생님이 궂이 그걸 사오라네요.. ㅎㅎ 그리고 바이올린 소리가 아주 명품이다죠…ㅎㅎㅎ

    • 이제 악기를 시작한 지 만 7년이 다 되어가는데, 바이올린의 그 명품 소리는 언제쯤에나 들을 수 있는 건지, 기약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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