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일요일 오후의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반 만에 충주에 도착했다. 19비행단의 위치는 내비게이션에 표시되지 않아 길을 조금 헤매긴 했지만, 표지판에 의지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헌병들의 검문을 받았다.



“새로 부임하게 된 소위. 여기 신분증.”



방문 차량용 출입증을 받아 부대 안으로 들어섰다. 350만평 부지에 설립된 거대한 비행단. 그러나 그 대부분은 그저 벌판이다. 선임과 만나 숙소를 안내 받았다. 숙소의 첫 인상은 ‘시설이 꽤 좋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인상은 ‘청소가 필요하겠다.’였다. 청결도가, 여태껏 내가 겪었던 그 어떤 곳보다도 불량했다. 아파트 형 건물. 거실에 방이 두 개 있고, 화장실 하나, 다용도실과 발코니가 하나씩 있다. 청소만 깔끔하게 하면 완벽한 숙소가 될 것 같았다. 요즘같이 찌는 날씨에 에어컨이 없는 것은 좀 치명적이지만. 조만간 대청소를 해야겠다.



7월 26일 월요일. 생애 첫 출근일. 노동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아르바이트로라도 출근일랑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출근’을 하게 되다니. 6시에 기상해 미리 샤워를 하고 약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의 주요 일정은 비행단장님께 전입신고. 그리고 비행단 내 각 부처를 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



신고는 오전 9시 반쯤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너무 일찍 출근해버려서 이번에 19 비행단으로 근무 배속 받은 사관후보생 출신 장교 다섯 명이 인사처 사무실 책상에 둘러 앉아 시시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단장님 주관 신고식이 끝나고부터는 여기저기 인사차 떠돌아 다녔는데, 계획실, 정훈실, 행정실, 중대본부, 인사처, 감찰실, 관리처, 정보통신 대대, 각 비행대대(실제 전투기를 운용하는 대대) 등 하도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녀서 사람도, 건물도, 지리도 다 기억나지 않는다.



첫 출근이지만 이상하리만큼 긴장감이 없고 차분했다. 중위도 소령도 대령도 장군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이었을 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점점 두려움이 사라져간다. 그건 관심도 멀어져간다는 뜻일까.



첫 날인 만큼 야근은 없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되는데,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매일 야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방에 돌아오면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으니 세상과 단절을 느끼지는 않는다. 글쎄. 언제나 옆방으로 찾아가면 동기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때보다 홀로 방 안에 들어앉아 침묵 속에 컴퓨터로 웹 페이지 열어 재끼는 지금 더욱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는 가지고 있다. 성실한 사회인을 연기하는 것은, 내가 평생토록 해왔던 짓거리다. 언제고 연길랑 그만두고 싶어지는 때도 오겠지. 그렇다고 연기 없는 삶이 나의 본성에 충실한 솔직한 삶이라고 할 수만도 없을 거다. 애당초 나는 나의 본성이 무엇을 갈망하는지도 잘 알지 못 하니까. 삶을 지속하는 것에는 벌써 어느 정도 염증과 피로를 느끼고 있는데.



다행히 주말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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